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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입문 Jan 25. 2022

2021 양주입문자 골든글러브 시상식

#양주에게도 골든글러브를 줄 수 있다면 #양주추천 #위스키추천

    양주를 마시고 싶어서, 무작정 가게를 찾아갔다. 마치 고기를 먹고 싶어서, 고깃집에 가듯이. 그리고 의례 새로운 가게에선 이런 열린 질문을 하곤 한다. 특별히 답이 정해져 있다기보다는, 표준편차 범위 80% 이내에 성공 확률이 80% 이상이 되는 안정적인 선택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새로운 곳을 간다는 건 상당한 노력이 든다. 게다가 모르는 것을 마시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 여기까지 최선의 노력을 다한 나로서는 이 질문을 꼭 해야 한다.


"양주를 하나 마셔보고 싶은데, 추천 좀 해주세요."


    하지만 양주를 추천한다는 건 참으로 막막하다. 이 열린 질문은 넓이로 따지만 태평양 같고, 막막함으로 따지자면 망망대해 같다. 전문가인 사장님에게도 이 질문이 막막하다. 사장님은 이 망망대해 같은 질문을 해결하기 위해 내가 이전에 마셨던 술의 이력과, 좋아하는 맛과 향을 물어보시더니 본인 만의 감으로 망망대해를 탐험할만한 술을 추천해주셨다. 나에게는 그의 몇십 년 동안의 내공이 없기에  '양주 추천'이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양주 안에서 위스키라면 (추천은 여전히 어렵지만) 마시면서 뭐가 좋았는지 말할 수 있다. 


    우연과 취향이 겹쳐져 골라마셨던 술은 함께하는 시간 동안 참 즐거웠다. 남들은 별로라는 술도 마시는 방법을 달리 하면 의외로 괜찮기도 했다. 자그마한 도전으로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어서 (무생물에게) 고맙기까지 했다. 이런 고마움을 담아 야구에서 매년 골든 글러브를 시상하듯, 나도 그들에게 상을 줘볼까 싶다. -개 중엔 의외의 수상자도 있겠지만- 이 상은 시장조사를 바탕으로 한 결과가 아니기에, 상당히 주관적이고 편파적으로 선정되었음을 미리 알린다. 


    비록 객관적이지도, 정보성을 지니지도 못했지만 이 상은 나에게 나름의 의미가 있다. 올해는 이런 술을 좋아했구나- 하고 기억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내년에는 또 다른 술들로 채워질 것이다. 그렇게 시간을 겹겹이 쌓아 만들어진 '00년 골든 글러브 수상자' 리스트는 아마 재미있을게 분명하다. 야구의 과거 10년 골든글러브 수상자 리스트가 너무 재밌기 때문이다. 그 이름들을 보기만 해도 그 해에 어떤 일이 있었는데 슉 지나간다. 즐겁게 마신 술은 빈 병도 기억으로 채워놔서 버리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그 술 병을 다 모아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써놓고 그려보기라도 할까 싶다. 시간이 지나다 보면 꽤 훌륭한 술을 추천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주관적이고 편파적으로.




투/포수 : 발베니12-더블우드, 하이랜드파크12


발베니12 는 나에게 선발투수였다. 무서운 강속구를 던지지는 않지만, 확실하게 경기를 책임져 준다. 부드럽고 향긋함. 적절한 무게감. 캐러멜과 오크향이 난다. 혼자 무언가 고민하는 밤이나, 친구가 반가운 저녁에 두려워하지 않고 꺼내볼 수 있는 위스키가 되었다. 


마운드를 지키는 선발투수 같았던 발베니12


하이랜드파크12 반 정도 남은 술을 뺏어와 마셨다. 덕분에 에어링이 잘 되어있어서 '바이킹'의 거친 느낌이 부드러워졌다. 얻어 마시는 술이라 편했다. 처음 느껴보다는 묵직함, 오랫동안 남는 여운. 향을 맡고, 내쉬며 즐기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이 묵직함은 팀의 중심을 잡아주는 포수의 느낌과 닮았다. 

포수 같은 하이랜드파크12


내야수(니트) : 라가불린12,  아드벡10, 보모어12, 글렌피딕15
오른쪽부터 내야수 : 1루수(글렌피딕), 2루수(보모어), 유격수(아드벡), 3루수(라가불린)


    "나는 물도 타지 않고, 얼음도 없이 위스키를 마신다." 만약에 지금처럼 위스키를 마시기 전에 이런 문장을 들었다면, 술이 센 주당을 떠올렸을 것 같다. 그리고 예전에 그냥 마셨을 때 상당히 독하고 맛을 알기 어려웠던 기억도 난다. 여전히 나는 많이 못 마시지만, 한 잔을 니트로 마시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향도 맡고, 입안에서 굴려도 보고 숨을 뱉어보기도 한다. 아일라 섬의 술들은 처음엔 독하게 느껴지지만,  든든하게 내야를 지켜 줄 만한 술이다. 향이 복합적이고, 여운도 남아 마실 때마다 다른 느낌을 받는다. 처음엔 약국 같다가 두 번째엔 불바다 같았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자 바다의 향 같기도, 깊은 오크향이 나기도 했다. 


    타자가 치는 가장 빠른 공이 총알처럼 날아오는 3루는 그 강렬함 만큼이나 라가불린12가 잘 어울린다. 강한 어깨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 유격수는 이 술이 떠올랐다. 강렬함을 가진 바이킹의 술, 아드벡10이다. 처음에 열면 아일라의 술이 쉽지 않다는 걸 소독약 냄새 같은 첫 향으로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잊히지 않는 술이 되었다. 부드럽고 센스가 필요한 2루에는 젠틀한 맛이 있는 보모어12가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내야의 왼쪽 3개의 술이 다 아일라의 술이라 1루는 뭔가 다른 지역의 술이 필요했다. 견제구를 잡다가 공을 빠뜨리는 일이 없어야 하는 안정적인 존재. 글렌피딕 15년 솔레라가 괜찮지 않을까?



외야수(하이볼) : 잭 다니엘, 조니워커 레드, 가쿠빈 
왼쪽부터 외야수 - 좌익수(잭 다니엘), 중견수(조니워커 레드), 우익수(가쿠빈)

    하이볼은 여유롭게 마시기 좋다. 친구들과 오랜만에 모여 배부르지는 않지만, 맛있고 시원하면서 계속해서 마실 수 있는 '적절한 술'은 하이볼이었다. 맥주는 금방 배가 부르니까. 하이볼엔 대체로 여러 가지 몰트가 섞여있는 저렴한 '블렌디드 위스키'를 많이 쓴다. 싱글몰트 위스키도 상성만 잘 맞으면 맛있는 하이볼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나에게 잘 맞는 하이볼은 저 세 위스키였다.


    좌익수 잭 다니엘은 까만 라벨이 보여주듯- 독특한 공법으로 만든 '테네시 위스키'이다. 미국에서 와서 그런가 콜라랑 잘 어울린다. 잭 다니엘과 콜라를 섞은 '잭 콕'은 여행을 가면 어느 게스트 하우스에서든 시도해볼 수 있는 편한 술이었다. 잭콕을 마시면, 어디에 있건 간에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 


    중견수 조니워커 레드는 가까이 있어서, 업신여겨지기도 한다. 조니워커 라벨 중에 가장 저렴하고, 어디서든 구할 수 있다. 편의점에도 하나씩은 있어서 그냥 지나치기 쉽다. 확실히 이 술을 열어서 바로 마시려고 하면 쉽지 않다. 쏘는 느낌이 강력하고, 여운은 짧아서 어딘가 불편하다. 하지만 얼음에 마셔도 좋고, 어떤 종류의 토닉과도 적절하게 매칭이 된다. 그냥 마시면 작고 가벼워서 우습게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술이지만, 얼음 하나로 어떤 토닉도 받아내는 팀에서 가장 수비 범위 넓은 중견수가 된다. 


    우익수는 산토리의 가쿠빈이다. 사각형으로 각이 져있고, 거북이 등껍질 모양을 한 이 고전적인 위스키는 일본과 가깝다는 이유로 한국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보통  하이볼을 시키면 이 하이볼이 가장 많이 나오니까. 가라아게랑 하이볼을 보면 어쩐지 일이 끝난 기분이 든다.



지명타자(럼)  : 하바나 클럽

    지명타자(DH)로는 위스키가 아니라 럼 -하바나 클럽3-을 데려왔다. 위스키와 다른 술을 가져와보고 싶었는데 지타라니! 좋은 구실이다. 이번 여름을 모히또, 럼 토닉 중독자로 만들 뻔한 무서운 강타자다. 어쩐지 여름이 생각나서, 추운 겨울에도 맥주 대신 생각이 난다.   


2021 양주 입문자의 골든글러브 투표 결과
투/포수 : 발베니12-더블우드, 하이랜드파크12
내야수(니트) : 라가불린12, 보모어12, 아드벡10, 글렌피딕15
외야수(하이볼) : 가쿠빈, 조니워커 레드, 잭 다니엘
지명타자(럼)  : 하바나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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