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시간의 역사', '바다 세계사'를 읽고
서구 문명에서 다루는 역사는 미지로부터의 탐험과 발견을 기반으로 한다. 그래서 현대 과학과 이론으로 흐트러짐 없이 발달해왔을 것 같은 서구의 역사는 알고보면 엉뚱하면서 호기심을 자극하는 일화들로 가득하다.
거의 모든 시간의 역사에서는 시간이란 개념이 통념이 되지 않았던 시기에 개개인이 시간이란 개념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몸부림을 담고 있다. 그중 대부분은 남들과는 다른 모습으로 돌발적으로 나타난 기행들인데 어디까지 해볼 수 있는지를 몸소 실천해본 경험담이기에 내게는 흥미로웠다. 지금 시대에 통념이라 일컫어지는 무언가에 대해 이토록 집착하며, 극심한 갈증을 갖고 실천해볼 사람들이 있는지 그리고 그들을 색안경을 끼지 않고 바라볼 자신이 있는지, 생각해보기 좋을 책이다.
바다 세계사를 읽다보면 인류가 각 시대에 따라 어떤 시각으로 바다를 생각해왔는지에 대하여 생각해볼 수 있다.
각 시대별로 바다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이동해왔는지를 설명하는데 흥미롭다. 특히 서구권의 지도에서 나타나는, 서구권이 아직 가보지 못한 지역에는 존재할걸로 그려진 바다뱀과 같은 미지 생물은 마치 또 다른 탐험가를 탄생시키고자 이들의 상상력과 원동력을 나타내는 징표로 느껴진다. 이처럼 인류 탄생부터 지금까지 다 알려지지 않은 바다를 기준으로 한 역사라 꽤나 흥미롭다. 그럼에도 다 읽고 나서 나는 냉소라는 감정도 느꼈다.
책의 말미에서 서구권(특히 영국)의 바다 탐험을 쫓아가는 내용을 위주로 소개하고 이를 통해 바다 생물이 하나 둘 사라져 가는 내용이 나온다. 인류가 존재하기 전부터 존재했던 바다 세계가 현재 인류와의 접촉을 통해 어떤 상태가 되고 있는지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데 마치 현재 서구권이 강요하는듯한 "모두의 책임"처럼 느껴진다. 정작 서구가 항해술의 발달로 바다를 건너 다른 세계와의 접촉, 그리고 바다를 건너 온 이들을 통해 무너져 간 인류가 있었다는 사실이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바다 세계를 그려낸 작가의 서술을 통해 책 중반까지 깊은 심연 속으로 떠나는 기분이 든다. 그러나 말미에는 강압과 무력으로 바다 속 모래에 묻혀진 잔해를 작가가 들여다 볼 모습을 보이지 않음에 잠시나마 느꼈던 바다 속 신비로움도 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