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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복 Nov 12. 2023

# 엄마 밥상의 좋은 기억은

엄마일기


엄마의 계절은 이렇게 책상 앞에서 창밖을 볼 때와 너희들의 변화에 따라 시간을 실감한다.

초등학교 6학년인 YW은 엄마와 시간 보내는 것이 그래도 있지만, 중2인 CW은 오로지 학원과 학교 숙제로 온 시간을 보내는구나. 엄마도 다 지나간 시간들인데, 너희들을 보면 딸이라도 내 맘대로 움직일 수 없는 고유의 뭔가가 점점 만들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런데 말이야. 엄마는 너희들의 마음을 엄마에게 집중하게 하는 것을 알고 있어. 

그건 밥이야. 

태어나서는 모유 수유, 자라서는 엄마 밥을 먹고 자라는 너희들은 어느 하루도 먹는 거에 관심이 없었던 적이 없었어. 엄마가 해주는 밥에 행복의 수치가 얼마나 차지하는지도 알고 있지. 

엄마가 바쁘면 밥도 반찬도 허술해지고, 엄마의 여유가 생기면 정성도 생겨서 음식을 준비하는 것을 보며 엄마의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자연스레 터득하게 된다.

주방에서 밥을 준비하다가 엄마의 어렸을 적 모습이 생각났어. 

자고 있으면 주방에서 할머니가 식사를 준비하는 소리가 포근했어. 할머니한테 혼나면 우리 엄마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미웠던 적도 있었는데, 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면 할머니는 언제나 한결같이 따뜻한 밥상을 차리고 계셨다는 걸 보았어. 농사일, 휴게소 일에 지쳐도 지치셨을 텐데, 할머니 밥상은 대충이 없었다. 

가스레인지 밑에 있던 고등어조림, 뚝배기 안에 계란찜. 새벽같이 일어나서 말아주셨던 김밥. 밀가루에 묻힌 고추, 한 숟가락만 먹어도 입맛이 돌았던 고추장 닭볶음탕. 그때는 그것이 당연하다고 느꼈는데 지금은 그 시절이 그립고 할머니께 고마워. 


"엄마 오늘 메뉴는 뭐예요?"

이 말을 달고 사는 YW으로 인해 뭘 차려주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며 불평이 올라오다가도 다시 생각을 고쳐먹은 건 할머니의 말이었다.

"김치찌개 하나를 끓여서라도 차려서 먹도록 해."

문득, 밥상엔 늘 많은 반찬이 있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는데, 할머니 말을 곱씹으며 밥상에 대한 생각을 단순하게 하기로 했다. 가족들이 좋아하는 메뉴들로, 하나를 하더라도 가족들을 생각하며 기쁘게. 

너희도 나중에 결혼해서 밥상이 일로 느껴지거든, 밥상을 단순하게 생각해 보면 좋겠다. 

한 가지 음식을 차리더라도 정성스럽게. 

엄마가 기억하는 밥상의 좋은 기억은 할머니 밥상은 반찬의 개수가 아니라 음식을 준비하는 할머니 뒷모습이었다는 걸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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