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 공부하고 있는 동생이 몇 번이나 놀러 오라고 메시지가 왔다. 가고 싶었고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할 일들에 휩쓸려 시간만 속절없이 흘러갔다.
'왜 이렇게 일상을 잠시만 벗어나는 것이 힘든 것일까?'
뭔가 발목이 묶여있는 것처럼 그 자리에서만 맴돌고 있는 내가 보였다. 안 되겠다 싶어서 밥을 사주겠다고 서울로 갔다. 비가 내리던 아침, 버스에 몸을 싣고 동생을 보러 가는 길. 그 시간이 마치 나의 평소의 경로를 이탈한 시간 같아서 마음이 자유로웠다.
대학교에서 오래도록 공부를 하고 있는 동생은 내가 결혼하기 전에 근무했던 그곳에서 실험을 하고 있는 식물학도로 지내고 있다.
나의 20대의 시절, 평택에서 서울로 출근하기 위해서 새벽 5시면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하던 때가 떠올랐다.
그런 나를 보던 직장 동료들은 대단하게 생각했다. 출퇴근 시간만 4시간이 훌쩍 넘는 곳을 매일 왔다 갔다 하는 나를 신기한 사람처럼 바라봤다. 왜 그렇게 다니냐고 묻는 질문에 나도 생각해봤다. 그때마다 내 대답은 동일했다.
'결혼하면 어차피 부모님 곁에서 떨어져서 살게 될 텐데 그때까지는 같이 있고 싶어요."
물리적 거리는 몸을 피곤하게 했지만, 마음은 즐거워서 힘든 줄도 몰랐다. 더군다나 첫 직장에서 호된 사회생활을 시작했기에 그 뒤에 어떤 일도 그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편한 것이 제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의 흘러간 날을 상기시켜준 동생이 저 멀리서 걸어오고 있었다. 학교에서는 박사님이라고 불려도 나에겐 그냥 막냇동생. 그 모습을 보니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고, 소박한 밥을 먹는 그 시간이 넉넉하게 감사했다. 일상을 숙제처럼 살지 말고 축제처럼 살라는 문장도 있는데, 축제까지는 아니어도 소풍처럼은 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오며 가며 그렇게 하루가 기울었다. 그래도 뭔가 동생과 추억이 생긴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 뿌듯했다.
그날 동생과 먹은 밥집은 내가 남편과 처음 만나서 밥을 먹었던 학교 식당.
그렇게 오래된 추억과 새로운 추억이 더해지고 더해지던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