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나무 Mar 20. 2022

우리들에겐 삶의 성장이 필요하다

내면의 성장과 함께 삶에도 분명한 성장이 필요하다.

디자인을 배운 적은 없다. 그저 디자인을 해보고 싶다는 욕구를 채우기 위해 이것저것 공부를 했다. 손으로는 그림 하나 제대로 못 그리지만, 일러스트를 사용해 원하는 그래픽을 만드는 수준으로 올라왔다. 회사에서 작은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가벼운 그래픽 디자인이 필요했다. 디자이너에게 맡기기에는 민망한 크기의 프로젝트라 내게 맡겨졌다. 호기롭게 이것저것 만들기 시작했다. 주제가 정해진 프로젝트이기에 주제에 맞는, 주제와 결이 같은 그래픽을 만들어내면 되는 일이었다. 즐겁게 작업했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보다는 정말 재미로 일을 했다. 결과물도 나쁘지 않았다. 대표형이 좋아해 줬다. 친한 그래픽 디자이너도 잘 만들었다고 해줬다.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호기롭게 애인에게도 보여줬다. 나의 애인은 따뜻하지만 객관적인 사람이다. 무언가 결과물에 대해 객관적이고 분명한 원인으로 크리틱을 준다. 나는 칭찬을 받고 싶어서 보여주긴 했는데, 반응은 '별론데? 지하상가 티셔츠 같아'라는 피드백을 받았다. 이 피드백에 상처를 받진 않았다. 수긍했기 때문이다.


수긍의 원인이 곧바로 떠올랐다. 나의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리면 지하상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 가장 번화한 곳엔 거대한 지하상가가 있다. 그때의 영향으로 지금도 지하상가 길을 모두 알고 있다. 어린 시절 용돈을 조금 받으면 친구들과 지하상가로 향했다. 그때는 5000원짜리 티셔츠가 왜 그리 예뻐 보였는지. 돈 3만 원을 들고 가서 바지 하나에 티셔츠 두 개 양말까지 사 오곤 했다. 그럼 그다음 날은 풀착장을 하는 거다. 그게 내게 만족을 주었었다. 물론 항상 지하상가 옷을 입었던 것은 아니지만, 우리 동네에서는 지하상가 옷을 입는 것이 당연했다. 너도 나도 지하상가에서 파는 옷을 입었다. 그런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그곳의 디자인들이  무의식에 남아있다는 생각이 수긍으로 이어진 것이다. 5000원에 팔아도  만큼 값싸고 저퀄리티의 디자인이 무의식에 있는 거다. 당연히 디자인 공부본격적으로 했다면 달랐을 것이다. 위대한 디자인을 공부하며 영향을 받았을 테니까. 그런데 그런 과정이 없었으니 과거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지하상가 쇼핑을 그만둔 것은 중학생 때이다. 당시에 에이랜드가 굉장히 유행했다.  동네 백화점 1층에 에이랜드가 거대하게 있었고,  모르는 브랜드여도 에이랜드에 팔면 멋져 보였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지하상가에서 조금 올라가긴 했어도, 대단한 성장은 아니었던  같다. 지금은 이름도 기억 안나는 브랜드 옷을 좋다고 입었으니까. 에이랜드에서도 그래픽이 많은 옷을 골라 입었던  같다. 그때 이후론 그래픽이 많은 옷을 입지 않았다. 점점 과하지 않은 깔끔한 옷을 찾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유니클로, 자라  스파 브랜드 옷을 소비하기 시작했던  같다.


그러니까 정리해보면, 성장기에 경험한 지하상가 그래픽 그리고 에이랜드에 입점했던 중구난방의 브랜드들의 디자인이 지금 디자인에 영향을 준 것이다. 아찔하다. 그리고 다행이다. 내가 프로 디자이너가 아니라서 너무 다행이다. 어쩌면 최악의 디자이너가 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 시절 어떤 경험을 하느냐는 너무너무 중요하다. 경제적 독립을 이룩하기 전에는 부모님이 제공한 환경과 취향을 받게 되어있다. 스스로의 힘으로 환경과 취향을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가능하다면 치열하게 좋은 것을 보고 악착같이 세련된 것을 느껴봐야 한다. 지금 느낀 것들이 삶의 영향을 분명하게 주기 때문이다. 성인이 된 후 미술관에서 3년 정도 아르바이트를 했다. 매일 출근하진 않았지만, 꽤나 긴 시간 한 팀의 일원으로 일했다. 그 기간 동안 나는 매너를 배웠고 절제를 배웠다. 태도를 배웠고 방식을 배웠다. 미술관에서 일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들이 너무나 많다. 그때의 영향이 오늘 내게 분명히 존재한다. 남들보다 많이, 오랜 시간 전시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때의 경험으로 생각의 꼭지가 하나쯤은 늘었다고 자부한다.


환경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매일 잠을 자는 방만 보아도, 아버지의 취향으로 만들어진 것이 많다. 영화를 보면 벽에 가득 포스터를 붙이거나, 액자를 만들어 걸어두는 서양인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들이 그렇게 취향을 쌓는 이유는 자신의 색깔과 감을 만드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우리가 사는 세상을 잠시만 돌아보자. 내가 매일 접하는 핸드폰 배경화면은 무엇인가. 내가 자는 침대의 커버 색깔을 무엇인가. 방에 조명은 어떤 모양이고, 커피를 마시는 컵의 질감은 어떻고 무게는 얼마나 나가는가.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지점이 삶에 큰 영향으로 다가온다. 어린 시절 멋모르고 지나다니 지하상가가 십수 년이 지난 내게 영향을 주리라 생각 못했다. 오늘부터라도 내 삶을 채우는 것들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야겠다. 어떤 옷을 입는지, 어떤 음식을 즐겨 먹는지, 어떤 곳에서 살아가는지. 나는 보다 잘살고 싶다. 내면의 성장과 동시에 삶의 성장을 목격하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블로그에 다녀왔습니다 ㅎ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