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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희 Sep 27. 2021

발리의 숲, 커다란 위로

어떤 여행은 다녀와서 그때를 그리워하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아침이다. 별일 없는 아침. 별일이라면 알람도 울리기 전에 깼다는 거 정도.

창문을 열고 5분이라도 명상을 하고 요가를 할까? 가볍게 동네 산책을 돌고 올까?

아님 러닝화를 신고 조금 뛰어볼까?


     



바람이 향긋하다.

눈앞엔 웅장하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숲이 빼곡하고 자연의 향기, 신들의 향기를 잔뜩 실은 바람이 불어와서 머리카락을 살랑살랑 건드린다. 불과 몇 시간 뒤에는 온통 축축하고 뜨거울 것이란 게 믿어지지 않았다.

바람 속 어딘가에서는 향 냄새가 살짝 섞여 있기도 했다.

나무가 얼마나 키가 큰지 숲이 얼마나 거대한지 숲과 바람에 휩싸여 있노라면

나라는 인간은 지구 위 숱한 생명체들 중 한 점일 뿐 인 게 느껴졌다.

그렇다는 게 눈물 나게 위안이 되는 그런 기분을 알까?

괜찮아 괜찮아 멋지지 않아도 돼. 대단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냥 이렇게 던져진 이번 생을 아프지 않게 열 살, 스무 살, 서른 살 게임 스테이지 깨듯이

이렇게 살아내고 있으면 그걸로 괜찮아. 너라는 ‘점’에게 주어진 소명은 그런 거야.

네 자리에서 건강하면 되는 거다. 뭐 이렇게 얘기해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저는 더 멋지게 살고 싶은데요? 성공하고 싶고 부자도 되고 싶은데요?”   


  

발리의 숲은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그냥 다시 한번 휘파람이라도 불어주듯이 바람을 훅~ 불어서

나를 씻겨 주었다. 울컥 눈물이 나버렸다. 위로라는 게 그런 게 아닌가? ‘진짜 위로’는 고름을 짜준다.

잠깐 서서 애처럼 울다가 그런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한가롭기 그지없는 소랑 눈이 마주치고

너무 부끄러워 눈물이 쏙 들어갔다. 운 거 아니야! 비염이라 그래 비염이라 재채기한 거야!

중얼중얼거리고는 마저 걸었다. 걷다가 리조트의 가든에서 요가 수업을 준비하는 요기를 만났다.

그는 행복한 발리의 요가를 하러 오라고 인사를 건넸다. 나를 전혀 모르는 이국인과 사사로운 관계없이

친근한 마음으로 인사를 나누는 순간, 그것만으로 도닥여지는 그런 날이었다.

발리는 숲이, 바람이, 무심한 소가, 친절한 요기까지 모두 괜찮다고 말해주는 그런 곳이었다.

    

발리에는 여행사와 함께 교육 차 왔는데 우린 허니문으로 올만한 리조트들을 하루에도 대 여섯 군데씩 투어하고 특징을 정리하느라 훈련 같은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었다. 공항에서의 설렜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피곤한 일정이 계속되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틈을 쪼개고 짬을 내어서 최대한 즐겼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는 가족 단위로 묵을 수 있는 풀빌라였는데 그래서 작지 않은 수영장이 숙소 안에 있었다. 잠들기 전 함께 온 동료들과 다 같이 밤수영을 했다. 고등학교 동창생들끼리 함께 수학여행이라도 온 것처럼 웃고 떠들던 그런 잠깐의 순간들, 그런 장면은 평생 가는 법이다.  

    

“무서워하지 말고 머리를 더 담 궈, 머리에 힘을 쭉 빼버리고 물속에 몸을 담그면 몸이 둥실 뜨게 돼있어.”     

오오와 진짜 뜬다 뜬다.     

수영을 못 하는 동료들도 난생처음 물에서 둥둥 떠 본 거라고 엄청 즐거워했다. 난 그때 동료들에게 야매 수영강사로 불렸다. 열심히 지도편달 중인데 알람이 울린다. 알람? 왜 한 밤 중에? 알람?!


    

세상에나 지각이다!  

모처럼 일찍 깬 아침에 요가를 할까 산책을 할까 하다가 발리 꿈을 꾸면서 발리를 꼭 닮은 꿀잠을 자버린 것이다. 어떤 여행은 할 때뿐 아니고 다녀와서 그때를 그리워하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곤 한다. 이룬 거 없고 정해진 거 없이 나이를 먹어 가던 그 불안의 시기엔 자주 발리 꿈을 꿨더랬다.

쭈욱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타야 할 것 같은데 순환노선으로 뱅글뱅글 돌고 있는 마을버스에서

내리지 못할 것 같은 그 기분이 정말 더러웠다. 주로 아침에 깰 때 그런 불안이 엄습해왔고

그러면 내 맘은 곧장 발리로 갔다. 발리의 숲으로 발리의 느긋한 산으로.  


   

그때는 인생에 ‘답’이, ‘목적지’가 있다고 여겼다. 그런데 나만 그 답과 목적지를 못 찾고 헤매는 것 같았다. [여기까지가 청년입니다] 표지판이 서 있는 벼랑 끝에서 이쪽으로도 저쪽으로 가지 못하고 하루하루 늙어가는 것 같았다. 그토록 두려워했던 현재 40대에는 오히려 나는 아직 젊다고 느끼고 있다는 게 재밌다.

역시 서른다섯은 애송이다. 결혼도 하고 아줌마로 좀 더 살아내면서 성급한 성과주의식 사고방식은 내다 버렸다. 살아있기만 해도 얼마나 대견한 일인지 미국 드라마 워킹데드를 보면서 생존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는데, 드라마엔 좀비가 있고 현실에는 좀비는 없지만 좀비의 형상이 아닐 뿐 우리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좀비 같은 존재들은 얼마든지 있다. 그런 중에 건강하고 심지어 가족과 이웃에게 다정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다면 박수받아 마땅하다. 특히 2020년 코로나를 겪으면서는 정말 ‘살아낸다는 것’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아름다운 것인지를 생각한다. 타고 있는 것이 마을버스라면 또 어떠랴.     


상승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아도 먼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일 없이 평범하게 살아내는 ‘일상’ 도 쉽지 않다는 걸, 안간힘 써서 지킬 가치가 있다는 걸 서른다섯 살 때는 알지 못했고, ‘40대의 내’가 ‘그때의 나’에게 나타나 이 이야기를 들려준대도 애송이 시절의 나는 믿지 못한 채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했다는 절망과 불안에서 헤매다 정 힘들면 꿈속의 발리로 도망이나 갔을 것이다. 그러니 그런 불만족의 계절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막막해하는 다른 누군가를 만난다 해도 충고는 금물이다. 그런 시간들은 온몸으로 뒹굴며 스스로 통과해야만 하는 터널 같은 것이다. 돌이켜보면 세상만사가 다 그렇듯 절절함이 애잔하고 그래서 아름다운 그런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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