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두체 실크는 특유의 리치한 질감 때문에 홀의 조명과 더 잘 어울릴 것입니다. 신부님 건강한 피부를 돋보이게 만들어줄 거예요”
신이 나서 액세서리도 고르고 하다 보면 뭐랄까 휴일 전 날 엄청 웃게 되는 좋아하는
예능프로 하나 보고 난 후처럼 개운하달까?
그런데 어떤 때는 드레스에 집중하기 좀 어려운 드레스투어도 있었다.
보통 드레스투어 때는 신랑 신부와 친정어머님, 아주 친한 절친 등이 오곤 하는데
(현재 2021년 코로나로 인해 신부 외 1인만 가능한 지경이지만) 단골 멤버가 친정엄마라고 할 수 있다.
신경 써서 머리를 하시고 단정하게 옷을 차려입은 우아한 친정어머님은 어색하신지 통 말씀이 없으셨다.
드레스투어에 온 사람이 신부님, 그리고 웨딩플래너인 나뿐인데 신부는 드레스를 피팅하기 위해 자리에 없고 친정어머님과 나 둘 뿐인 자리. 불편하실 어머님을 편하게 해 드리려 사소한 질문도 해보고
신부님 칭찬도 하면서 대화를 시작해본다.
“신부님이 이목구비가 워낙 또렷하고 키도 커서 드레스가 정말 잘 어울릴 거예요.
드레스는 서양 복식이다 보니까 작고 왜소한 체격보다는 키도 골격도 어느 정도는 있어야 더 예쁘거든요”
"별말씀을요, 살 한참 더 빼야지요. 쟤가 원래는 진짜 예뻤어요. 어릴 때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하나같이 인형 같다고 했다니까요.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 없었어요."
친정어머님께서는 조신하게 사양하는 겸손의 말을 하시려다가 어릴 때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블랙홀에 빠진 것처럼 어린 꼬마 시절의 신부님 팬클럽 덕후 모드가 되어서 이야기를 하신다. 많은 어머님들께서 그러신다. 아기 때 딸들이란, 아기 때 아들이란 정말 그 추억과 감정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대학교 교수님이건, 평생 식당을 하셨다는 장군 스타일의 어머님이시건 아가 시절의 신랑을, 꼬맹이 시절의
신부를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아무도 말릴 수가 없다.
세상에서 가장 황홀한 여행지를 즐기던 때를 회상하는 듯한 그 눈빛으로 들려주시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뭔지 모르게 쓸쓸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 꼬마는 이제 없는걸, 우리 모두 알고 있으니까.
“그때 애기 때 친정엄마가 미제(메이드 인 미국을 미제라 했다) 아동복을 많이 사주셨어. 미키마우스가 쫘악 박힌 노란색 원피스를 입혀놓으면 진짜 깜찍했거든요, 학교 갔다 오면 골목 입구부터 엄마하고 소리 지르면서 막 뛰어오는데 진짜 인형이 뛰어오는 것 같다고 동네 사람들이 다 그랬다니까요.”
영상을 찍어둔들 그렇게 디테일하게 찍어둘 수 있을까
그 엄마는 이제 어쩌면 미제 원피스를 사다 주던 친정어머니만큼 나이 들었고
인형 같던 딸은 웨딩드레스를 고르러 왔는데 어디 멋진 데라도 초대받아서 가시는 것처럼
잔뜩 꾸미고 온 친정어머님께 아가 시절 신부 이야기를 듣자니 재밌다가 쓸쓸한 기분이 오락가락했다.
"아 좀 그만 좀 해"
듣는 신부는 피팅룸 커튼 안 쪽에서 드레스를 입으면서 결국은 짜증을 내는 게 보통이다. 신부의 짜증 후, 어머님은 소곤소곤 귓속말 볼륨으로 몇 개의 에피소드를 더 전하고서도 그 꼬마(자라서 이젠 드레스를 입고 있는) 이야기는 쉬 마무리되지 않는다. 그 꼬마와 동일인이면서 동일인이 아닌 신부 귀에는 들리지 않게 꼬마 자랑을 하다 보니까 갑자기 어머님의 속마음이 튀어나온다.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반에서 남녀 통틀어 제일 컸어요. 지금도 여자 키로 작은 키는 아니지, 적당한데. 사위 자리가 너무 작아서 걱정이야. 아니 요새 애들은 외모 엄청 본다는데 왜 쟤는 안보나몰라. 사실 뭐 키만 작다면 그게 뭔 문제겠어요? 직장도 그래. 연봉은 얼마나 받을는지, (앗 어쩌지 어머님 목소리가 자꾸 커지는데, 분위기 살벌해지는데 그만 하세요 어머님!!)
드레스를 입은 신부는 화사한 미소 대신 분노의 표정을 하고는 피팅룸 커튼이 열렸다.
신부와 어머님은 쐐 하게 사나워진 표정으로 귀가했다. 아마도 둘만 남았을 때 거하게 한판 싸우지 않았을까 싶다. 자라면서 딸과 엄마는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가 진짜 절친처럼 막 싸우는 사이가 되곤 하니까.
그렇게 다투느라 어머님은 이제 절대로 만날 수 없는 그 꼬마만 더욱더 사무치게 그리워하게 되리라.
외근이 많은 날이라는 건 만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고 웨딩플래너가 말을 엄청 했다는 것인데
그런 날은 육체노동을 거하게 한 것처럼 녹초가 되어 퇴근했다. 결혼 전에는 엄마아부지랑 동네에서 자주 외식을 하곤 했는데 그날도 동네 입구 횟집에 엄마가 아부지랑 있을 테니 오라고 했다. 말을 너무 많이 해서 진이 빠졌었는데 우럭 쌈 크게 싸 먹으면서 보양 좀 해야겠다 생각을 하니 그래도 퇴근 발걸음에 기운이 좀 보태졌다.
타이밍 딱 맞게 회 한 접시가 푸짐하게 나오고 에너지가 보충되는 느낌. 두 점씩 싸서 한 입 가득 넣고 반찬들을 더 챙겨 가져다주시는 동네 횟집 사장님께 정말 너무 맛있다고 피로가 싹 가신다고 엄지 척을 해서 올려 보여드렸다.
언제 뵈어도 참 따님이 싹싹하세요.
아유, 얘가 아주 꼬마 때부터 동네에서 인사성 밝다고 뭔 애가 그렇게 존대를 꼬박꼬박 쓰면서 인사도 잘하고 싹싹하냐고 난리난리...
아! 엄마 쪼옴! 그 꼬마는 이제 없다고오
엄마에게 그 꼬마와의 찐한 기억, 추억 그건 내가 아무리 십수 년 전엔
그 꼬마였다고 하더라도 절대 채울 수 없는 그런 것이다. 그렇게 사라진 시절인 거다.
모든 엄마들에게 자식들의 아가 시절, 꼬마 시절은 그렇게 항상 곁에 있으면서 또 영영 사라져 버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