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도도 속도도 다른 당신과 부질 없이 애만 쓰는건 아닐까?
남자의 어머님이 전화를 해왔다. 올 해 안으로 결혼을 하기로 해서 좋은 날짜를 철학관에서 받았다면서
그 날짜는 11월 12일. 세계를 휩쓸었던 코로나가 끝나가는 엔데믹 무드에서 2022년 정말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했다. 뉴스에서는 결혼 인구가 계속 감소된다는 브리핑이 매년 나오지만 왠걸 결혼 준비를 잠깐이라도
해 본 사람들은 안다. 정말 괜찮은 웨딩홀 예약이 하늘의 별 따기 라는 걸.
어머님의 이야기를 듣고 그때 예약이 아직 가능한 웨딩홀을 찾기는 너무 어려울 것이다. 말씀을 드리고 황급히 웨딩홀을 알아보았다. 원하는 지역과 조건이 맞는 오만군데 웨딩홀에 전화를 해보았는데
그럭저럭 인기도 있고 희망하는 시간과 비교적 가까운 시간대에 결혼식이 가능한 곳을 한 두 군데 찾았다.
다행이도!
이야기 속 진짜 결혼을 할 당사자인 남자와 통화를 한 것은 그 이후이다. 어쨌든 희망하는 11월에 결혼식을 할 수는 있는 상황이니 나머지 준비들도 서둘러야 한다고 일러드렸다. 그런데 그 남자의 다음 말이
' 사실 여자 친구가 결혼을 안하겠다는 것은 아닌데 준비를 적극적으로 하려고 하지 않아요. 올 해안에 하고 싶은 마음도 먹지를 못 한 상태라, 얘기가 계속 걷도는 것 같아요.'
결혼을 하고 싶어 절절 끓는 마음을 다 갖춘 채 출발 선상에 대기 중인줄 알았는데 의외였지만, 이런 커플들을 종종 만나본 내 입장에서는 아 그렇구나, 싶었다. 어쨌든 희망 날짜에 맞춰 하시려면 시간이 많지 않은게 맞지만 시간을 좀 더 미뤄서라도 결혼은 할 수 있으니까 지금 멈칫멈칫하고 있는 여자친구분과 잘 얘기해보시고
지금 바로 결혼 준비 시작하지 않더라도 결혼식 날짜를 대충이라도 정하면 어느 정도 일정을 두고 준비해야하고 예산은 어느 정도로 잡아야 하고 등등 결혼 준비 시작할 때 어찌할지 가볍게 코칭 받아보러 가보자고 하시고 상담을 오셔도 좋지 않겠냐고 말씀드렸다.
남자는 담 주 주말이라도 당장 오고 싶어하는 강렬한 의지를 계속 비쳤고, 나도 시간 맞춰 보자고 했다.
결혼을 하고 싶은 데일 것 같은 뜨거운 마음과 지금 멈칫하는 여자 친구가 혹여라도 '나 안해' 할까봐
불안한 마음이 오락가락하는 남자에게 마지막 인사로 그래도 결혼 하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결혼하자고는
두 분이 합의하셨다고 하니까 좋은 일이죠, 이런 모든 우여곡절이 있어도 어느 순간 정신 차리면 결혼식장
일꺼에요. 응원하는 맘으로 진짜 그런 커플들을 무한히 보아온 경험으로 덕담을 건넸다. 희망적인 끝맺음 인사를 듣고 남자는 한숨과 섞어 이렇게 말했다.
'모르겠어요, 진짜 이 결혼 할 수 있을까요?'
불현듯 그 날이 떠올랐다. 유난히 씩씩하고 텐션 높은 그녀는 드레스샵에서도 웨딩촬영 때도
안절부절한 순간이 없이 연승을 올리는 장군처럼 거침 없었다. 이거 할께요! 이게 좋아요! 이렇게 해주세요! 그냥 말을 하는데 말 끝마다 왠지 느낌표가 느껴진달까?
그런 그녀의 결혼식날. 신부로 단장을 하는 메이크업샵에서도 예외 없이 그 장군 같은 모습이었다.
나도 일요일 오후 강남권 가까운 웨딩홀에서 했던 그 결혼식을 보러 갔었다.
신부대기실에서도 수줍은 신부는 없었다.
마냥 행복하고 신나고 들뜬 신부, 그 신부로 인해서 하객들도 한 번, 두 번 더 웃게되는 시끌벅적한 대기실이었다. 진짜 해피바이러스 가득이다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웃느라 나도 볼언저리가 뻐근할 때 쯤,
웨딩홀 직원이 신부대기실로 와서 이제 곧 입장이라고 했다.
헬퍼이모님이 옷 매무새를 다시 만지는 동안 신부의 부케도 체크하고 화장 지워진 곳은 없는지도
한번 더 확인했다. 그리고 입장 직전, 짧은 대기를 하는 동안 웨딩홀 안 쪽에서는 식 시작을 알리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어머님들이 화촉점화를 하는 즈음 이었던 것 같다.
그때쯤 늦게 도착한 신부의 친구가 웨딩홀로 들어왔다.
멀찍이서 서있던 친구와 눈이 마주치고는 누가 뭐란 것도 아닌데 갑자기, 순식간에
장군 같은 신부의 코 뿐 아니고 얼굴이 새빨개지면서 눈에 넘칠 것 같은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너무 찰나였고 어떤 자극도 없었는데 (친구와 눈 마주친 거 말고는, 어쩜 그녀의 모든 우여곡절을 공유한 친구였을지도, 뭐 아닐수도.) 비상사태가 생긴 것 였다. 아직 입장도 하기 전이었고,
아니.. 입장 직 전이었는데 신부입장하는 신부가 울면서 들어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헬퍼이모님을 불러서 면봉이랑 티슈로 눈물이 못 터져 나오게 원천봉쇄하면서 '인조속눈썹 볼에 붙힌채로 검은 눈물을 흘리면서 입장할꺼냐' 협박도 하고 엄한 개그도 하면서 신부의 열기를 가라앉히느라고 애썼다.
사회자가 '신부입장' 이라고 외쳤고 헬퍼이모님이 마지막으로 얼굴 매무새 봐주시고
신부와 나는 다시금 화이팅을 외치고, 나는 그때 아마 신부 정신차리라고 등짝을 찰싹 때렸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잠깐의 멈칫 이 있었지만 신부는 다시 개선장군처럼 씩씩하게 더 활짝 웃으면서
감사해요 감사해요 되뇌이며 행복한 입장을 했다.
정말 1,2분? 짧은 순간 이었지만 너무 길게 느껴지고 긴박했던 그 때가 생생하다.
돌아오는 길에 울컥한 순간, 터져나온 그 신부의 말이 계속해서 머릿속에 맴돌았다.
빨개진 얼굴로 눈물을 참으며 본인도 모르게 터져나온 말은
'내가 이 결혼을 하려고(오열)'
뒷 말은 끓어오르는 울음 때문에 다 나오지 못했지만 완성되지 못 하고 생략된 문장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때 나는 싱글이었고 자주 실망스러운 연애를 하면서 나에게, 또 상대에게 좌절 할 때 였다.
물론 주변 친구들도 거의 싱글이고 결혼을 마주하고는
내 마음의 온도와 속도가 연인과는 달라 낑낑대는 경우도 꽤 있었다. 그런지라 알 수 있었다.
일일이 세세히 듣지는 않았지만 두 사람의 시간들에 연일 승리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구나,
패배도 있고 후퇴도 있고 진격도 있었겠구나,
그리고는 천신만고 끝에 그 신부는 어쨌든 개선장군이 된거구나.
신부 입장을 하는 그녀를 맞이한 신랑은 그들의 시간 속에서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긴장을 너무 해서 땀을 뻘뻘 흘리는 평범한 모습이었다. 방금 전 거의 오열을 할 뻔한
그녀는 완전 다른 사람이 되어서 신랑에게 긴장 말라고 다독였다.
식이 끝나고 친구들과 기념 사진을 찍는 순서가 되어 신랑의 친구들도 앞으로 나왔다.
그제서야 신랑은 해피바이러스 신부처럼 활짝 웃었다.
웃는 두 사람의 얼굴이 너무 닮아있었다.
신랑신부와 웨딩플래너란 결혼식이 끝나면 정리되는 인연이지만
카카오톡 때문에 인연이 끝난 후에도 프로필사진 바뀌는 것을 보면서 안부를 알 수 있다.
그때 그 씩씩한 신부도 커다란 미소에는 보이지 않는 지난한 역사가 신부입장 직전에 터져버릴 것 처럼
지금도 프로필사진에는 보이지 않는 여러 사건과 사고가 있겠지만. (누구나의 인생처럼.)
그래도 어쨌든 그들은 가족이 되어 적어도 프사에서는 똑닮은 함박웃음으로 잘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