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주희 Oct 28. 2021

덜 완벽해서 더 행복했던 그날

기와는 깨지지 않았지만 사람들 사이 어색한 벽은 깔깔대느라 다 녹아버렸다

난리도 아니다. 

한국말을 꽤 잘하는 일본인 신랑은 처음부터 극장식 공연이 가능한 예식장을 원했다. 

그때부터 이런 우당탕탕 결혼식이 계획에 쫘악! 세워져 있던 것이 분명하다. 

두껍고 시커먼 눈썹과 선명한 쌍꺼풀까지 있는 진하게 생긴 신랑님은 시종일관 진지했다. 

‘결혼식을 공연처럼 하고 싶스미다.’

국제결혼을 하는 많은 외국인들이 그렇듯 이 일본인 신랑도 한국의 전통미가 있는 공간이면 좋겠다는 바람과 공연이 가능한 곳! 이것이 조건이었다.     

넓은 잔디가 최악 펼쳐진 교외의 레스토랑, 바로 옆으로 한강이 흐르는 공간도 추천드려봤지만 

신랑님은 단호했다. 


‘전혀 높지 않은 잔디는 무대가 아님미다’

‘모르시는 말씀! 마당극을 모르시는 겁니까?!!’라고 되묻지는 않았다. 

그렇지, 역시 무대는 높아야지요 암! 웨딩홀은 싫으시고 교외 레스토랑도 안되고 무대는 있어야 하고 

식사메뉴는 한식이면 좋겠고 접근도 좋고 주차도 편하고 나원참!    

 

그렇지만 찾아냈다. 두둥, 그 어려운 걸 내가 해냈다!

충무로역 바로 뒤편 남산 한국의 집, 그 안의 무려 극장! 진짜 극장이다. 

막을 열고 극이 시작되고 끝나면 막을 치는, 천장에는 조명이 매달려 있는 진짜 리얼 극장 말이다. 

신랑님은? 물론 대단히 만족하셨다.

      

기획도 준비도 필요한 사람들 섭외도 모두 직접 다 하신다고 절대 신경 쓰지 말라던 

신랑님이 결혼식이 코 앞으로 다가왔을 때 예고편처럼 결혼식의 이벤트? 에 대해 귀띔해주셨다. 

유명한 아카펠라 그룹의 축하공연과 가라데 공연이 있을 예정이라고 했다. 

.................가라데? 가라데요? 결혼식에서요? 직접, 격파를 준비했다고 하셨는데 

동방예의지국에서 한 평생을 살아온 나로선 너무도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렇지만 어쩐지 기대 보단 걱정이 앞섰다


      

결혼식 당일. 신랑님은 정신없고 분주했다. 

가라데 공연 준비를 묻자 완벽히 준비되어 있다고 대답하는 신랑님이 더 불안했다. 

불안했지만 신랑님을 믿고 그냥 신부대기실로 도피했다. 신부는 아름다웠고 사람들은 흥겨웠다. 

화창한 봄날, 한국의 집 마당은 사방이 포토월이었다. 삼삼오오 사진을 찍고 찍히고. 일본인 하객분들은 

연신 감탄을 하며 한국의 집 곳곳의 한국의 미를 잔뜩 웅축시킨 공간에 감탄했다. 왠지 어깨가 으쓱 해졌다. 

이제 1시간 남짓 결혼식만 제대로 끝나면 모든 게 평화롭게 마무리된다. 다 잘 되겠지, 잘 될 거야. 


    

사회자가 곧 식이 시작될 테니까 하객들은 모두 식장으로 들어오라고 안내방송을 했다. 

한국말로 한번, 일본말로 한번. 사회자 목소리가 어쩐지 아는 목소리 같았다. 

설마 하면서 극장으로 들어가니 사회자는 신랑님이었다. 아니 사회자도 신랑님이었다. 

신랑 역도 사회자 역도 가라데 공연 퍼포먼스도 모두 오늘 신랑님의 역할인 것이다. 

‘이제 곧 식 시작이니까 안에 들어갑니까. 이제 곧 시작이니까 안에 들어갑니까’

한국 하객들은 모두 빵 터졌고 그 웃음의 이유를 모르는 일본인 하객분들은 갸우뚱거렸다. 

하지만 정상참작 하에 모두 이해할 수 있으니 자리에 하나 둘 착석했고 그렇게 웃고 시작하는 예식이라 

장내에는 흥겨운 분위기가 번졌다. 서약도 하고 사회도 보고 정신없이 

성혼선언까지 끝나고 이제 축가 순서다. 


네 명의 아카펠라 혼성 그룹이 나왔다. 그 당시 유행하던 광고 속 아카펠라 곡을 노래하자 

하객 남녀노소 모두 아~~ 하면서 따라 불렀다. 실력도 재치도 있는 아카펠라 공연이 끝나고 

뮤지컬 배우의 재즈곡 축가를 하는 중에 신랑님이 신부의 손을 뿌리치고 무대 뒤로 들어갔다. 

이 모든 공연을 직접 기획하고 가수를 직접 섭외한 신랑님은 분명히 

축가를 듣느라 정신이 팔린 틈을 타서 옷을 갈아입고 온다!.. 가 계획이었는데 

신부는 즐겁게 축가를 들으면서도 신랑님의 손을 놓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신랑님은 포기하지 않고 너무 티 나게 꼭 잡은 신부의 손을 내팽개치듯이 뿌리치고 

과감히 무대 뒤로 사라졌다. 극장 하객들은 어찌 된 일이지? 하면서 어리둥절했다. 


노래가 끝나고 잠깐 정적이 흐른 뒤 가라데 도복을 입은 몇몇 사람이 우렁찬 기합을 외치며 

결혼식 무대로 나타났다. 기합과 함께 짧은 기본 동작을 하면서 분위기를 잡자 

신랑님께서 주인공처럼 등장했다. 기합 소리를 내면서. 

음, 앞의 가라데 선수들과는 뭔가 조금 다른 느낌의 기합 소리를 내면서 말이다. 

도복 안에는 아무것도 안 입던데 턱시도 안에 입었던 드레스 셔츠를 벗지 않고 

단추를 많이 풀어 안쪽으로 접어서 구깃구깃 넣어서 뭔가 더 어설퍼 보였다. 

셔츠 벗었다 입는데 그렇게 오래 걸리지도 않는데 왜 그러셨나 싶은데 신랑님이 기본 동작을 하기 시작했다.


태퀀도로 치면 태! 권! 도! 하는 팔 찌르고 다르 찌르고 하는 그런 동작 들일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은 어릴 때부터 동네마다 태권도 도장이 있고 친구들 중에는 꼭 검은띠도 있지 않나? 

그래서 난 태권도 도장에 한 번도 가보지는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아... 신랑님 완전 초급반이구나.      


난 박수도 더 세게 치고 나를 선두로 스텝들이 더 세게 박수를 치면서 환호성도 지르고 그렇게 호응했다. 

어쩌지 이거 분위기 어쩌나, 하기가 무섭게 연이어 먼저 나왔던 가라데 선수 아니 못 믿겠다. 

가라데 도복 입은 청년들이 기왓장 깨기 세팅을 했다. 진짜 용감한 신랑님 어설픈 기합을 악 지르더니 기와를 내려쳤다. 기와를 깼으나 기와는 깨지지 않았다. 당연 하지모. 신랑님은 온 얼굴로 아파하면서 아파하지 않았다. 스텝들끼리 북한 인민들이 김정은 위원장을 환영이라도 할 때처럼 열렬히 박수와 환호성을 뿜었는데 우리의 박수와 환호성 소리를 넘어서 하객들의 웃음소리와 박수소리가 열렬했다. 하객들은 개그콘서트라도 보러 온 사람들처럼 다들 박장대소를 했고 손뼉 치고 간혹 어떤 하객들은 멋있다! 갓고이! 등이 팬심 넘치는 외침도 더했다. 기와는 단단히 그대로 있었지만 국적도 다른 처음 만난 사람들 사이의 어색한 벽은 깔깔대느라

다 녹아버렸다.  웃음이란게 이렇게 대단한 거다.


오늘 종일 너무 긴장 넘치는 표정만 보였던 그 신랑님은 가라데 하느라 도복 안에 감춰둔 셔츠가 다 나와버려서 셔츠 위에 가라데 도복을 입은 모습이 더 우스꽝스러웠는데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가장 환하고 행복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웃으며 신부를 보고 있었다. 

신부에게 다가가서 손을 잡고 하객들에게 인사를 하는데 

그 순간 그 극장 안에는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날, 결혼식이 끝나고 한참이 지났는데도 자꾸 피식피식 웃음이 났다. 

괜히 친구들한테 전화를 걸어 그날 이야기를 들려주고 사진을 보여주는 등 여운이 오래갔다. 

내 결혼식도 아니고 사실 내 친구도 내 가족도 아니지만 나도 그날 행복했던 것 같다. 뭔가를 멋지게 잘하고 아니고 가 뭐가 중요한가, 진짜 가수가 나오고 유명인이 주례를 서고 연예인이 사회를 보고 그런 결혼식 백 개를 견주어도 지지 않을 최고의 해피웨딩이었다. 진한 이목구비의 그 신랑님 가라데는 좀 늘었을까? 

가끔 안부가 궁금하다. 


폭우때문에 완벽하지 않아 행복한 결혼식의 아이콘 어바웃타임 ㅎ


매거진의 이전글 슬의2가 남긴 추추 마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