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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Sep 16. 2020

메기가 묻는 질문 : 저급한 호기심과 쓴 결말

앰버 이야기 

지난 번에 이옥섭 감독의 영화 <메기>에 대한 글을 썼다. 그 이후 영화를 한 번 더 보며 생각했다. 영화 초반에 던져진 의문에 대해서.


(스포일러 있음)


병원에서 발견된, 방사선실에서의 성관계 장면을 담은 엑스레이 사진. 병원 사람들은 궁금해 한다. 저 엑스레이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과연 누가 방사선실에서 성관계를 갖는 대담한 일탈행위를 했을까? 대체 누가, 우리의 손가락질을 받아 마땅한 변태인가? 

그리고 그 때 <메기>는 아래의 대사를 통해 의문을 던진다. 


병원 사람들의 탐정놀이가 시작되었습니다.

누가 이 사진의 주인공인지.

엑스레이 버튼을 눌러 남의 사생활을 찍은 자에겐 관심도 없죠.

찍힌 게 누구인가. 

그것에만, 그것에만 관심을 보였어요.


선정적인 이미지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자극에 반응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늘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무언가를 받아들일 때에는 그 맥락과 배경을 고려해야 한다. 어떤 창작물도, 어떤 작품도 독립적으로 존재할 순 없다. 무언가를 볼 때, 우리는 만들어낸 이의 의도와 사상 등을 고려해야 한다.

그러니 당연히 불법촬영범의 창작물(표현이 맞을지 모르겠다)인 낯뜨거운 엑스레이 사진을 목격한 우리는-그러니까 병원 사람들은- 과연 누가 이런 범죄를 저질렀는지 생각하고 찾아 봤어야 했다. 사진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추측하며 저급한 호기심을 발휘하기 이전에 말이다.


이런 나의 생각을 듣는 누군가는 그런 말을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게 왜 방사선실에서 그 짓(…)을 해?”


‘당해도 싸다’는 의견을 내비치는 이런 식의 물음은 지겹다. 맞다. 방사선실은 성관계를 위해 마련된 장소가 아니다. 그러나 누군가의 사적인 순간을 동의 없이 촬영하기 위해 마련된 장소 또한 아니다. <메기>의 방사선사는 해서는 안 될 장소에서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했다. 그건 당연히 잘못된 일이다. 그러나 그 대가가 이런 식으로,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치러져서는 안된다. 적절한 기준과 규정(물론 모든 규정이 늘 맞진 않지만)에 따라야 한다. 그게 맞는 거다.


얘기가 잠깐 딴 길로 샜다. 다시 돌아와 이야기를 마무리 짓자면, 영화가 끝맺어질 때까지도 우리는 알 수 없다. 과연 누가 방사선실의 성관계 장면을 촬영하고, 병원 사람들 모두가 볼 수 있는 곳에 전시해 두었는지. 영화 내의 어떤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는(심지어 스스로를 사진의 주인공이라 믿는 윤영과 성원까지도 그다지 깊게 궁금해하지 않는) 촬영범의 정체는 끝끝내 밝혀지지 않는다.



전 애인을 때린 성원이 메기의 비상과 함께 싱크홀에 빠졌다는 점에서 판타지같았던 <메기>의 결말은, 이 사실을 깨달은 순간부터 내게 더없이 쓰게 느껴졌다. 결국, 그 누구도 악의 섞인 범죄를 저지른 자의 정체를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건 너무나 현실에 가깝다. 그 지점에서 나는 이 영화를 한 번 더 보고 싶어진다.



제작/ 2X9HD, 국가인권위원회

배급/ 엣나인필름, CGV아트하우스 

출처/다음영화 


   nadograe.com/stor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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