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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순 Jan 17. 2022

7. 황금 물고기

백 년의 고독

   

사람들은 너무 행복한 이야기보다 힘들었던 이야기, 고통받은 이야기, 그를 극복한 이야기, 좌절을 뚫고 헤쳐 나온 이야기를 통해 이해받고 싶어 한다. 슬픔을 위로하는 것은 기쁨이 아니라 더 단단한 슬픈 이야기를 통해 바닥을 찍고 빛으로 올라오는지도 모른다. 어둠이 깊을수록 빛이 환한 것처럼.


북커버에 연필과 노란 색연필을 꽂고 시집 한 권을 넣어서 수목원에 갔다. 열대식물원을 돌아보고 쉼터에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사람들은 없고 공기는 적당히 따듯하다. 그야말로 독서하기에 최적화된 환경이다. 고민 없이 쓰인 글은 고민 없이 읽고 버려진다. 사유 없이 쓰인 글은 광고전단처럼 쉽게 기억에서 사라진다. 세상에 태어날 나의 두 번째 책을 생각하며 시집을 손바닥으로 쓸었다. 버려질 걸 알기에 안쓰러운 생각마저 든다. 그래도 계속 쓴다.


꿈은 행동하는 사람의 것이다. 추상은 추상일 뿐 아무것도 아니다. 나의 오랜 꿈을 향해 한 발 한 발 나아간다. 하루를 명상으로 시작하고 아침마다 내면에 고인 이야기를 글로 옮겨 적고, 책을 읽고 나의 이야기를 모은다. 모여진 이야기를 책으로 엮고 다시 책을 사서 읽고 나의 이야기를 쓰고...... 무한반복이다.


'백 년의 고독'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아울렐리아노 브렌디아 대령은 황금물고기를 만들어 판다. 황금물고기를 만들어 판 돈으로 더 많은 황금물고기를 만든다. 그러다 어느 날 황금물고기 파는 일을 그만둔다. 황금물고기는 열일곱 개가 되었고 그는 하루에 정확히 두 개의 황금물고기를 만든다. 정확히 하루 두 개. 그러다 스물다섯 개가 되면 다시 새롭게 만들기 위해 그것들을 도가니에 넣어 녹이곤 했다. 그는 아침 내내, 온 정신을 쏟으며 아무 생각도 없이 그 일을 했다. 빗줄기가 굵어졌으니 문을 닫으라며 소리치는 소리도 듣지 못한 채.  


언젠가 몰두라는 글을 썼다. 벼룩이 피를 빨 때, 목이 부러지는 것도 모르고 머리를 피부 깊숙이 박아 넣는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몰두. 그 후로 몰두는 내게 그림문자이며 상형문자가 되었다.      


10분 단위로 글을 읽어볼까? 활자를 먹어치우는 벌레처럼 글자의 무덤에 머리를 박아 넣는 것. 그 안에서 나조차 잊을 수 있다면 신선이 아니고 무엇이랴. 나에게 독서란 글자들의 무덤을 파헤쳐 보물을 캐는 일이다. 그 사이 나의 시력은 약해지고 몸은 조금씩 부서질지도 모른다. 여전히 내 책상엔 빌려온 책, 사 온 책, 선물 받은 책이 탑을 이룬다.


브렌디아 대령은 왜 다 만든 황금물고기를 도가니에 넣어 녹이는 걸까? 그걸 팔면 더 많은 황금물고기를 만들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무의미해 보이는 그 무한반복을 통해 대령이 얻고 싶은 건 황금물고기도 아니고 돈도 아닌 황금 물고기를 만드는 '시간'인 것이 분명하다. 몰두, 먹물 같은 어둠 속에 황금빛으로 빛나는 시간! 무아의 경지. 이보다 더 황홀한 순간이 있을까 싶다.


왜 오늘 아침 이 생각이 뿔처럼 돋아났을까? 나의 책 읽기가 브렌디아 대령의 황금물고기 만들기와 자꾸만 중첩되어 떠오른다. 수의를 밤이면 짜고 낮이면 풀어버리는 아마란따의 그것을 누가 감히 무의미하다고 할 것인가. 예술이 위대한 건 그 가치 없음에 기인한다던 말이 또 불쑥 떠오른다. 만들었다가 부수고 만들었다가는 또 부수는 그 무의미한 일의 무한반복.


아무래도 남은 시간들은 책과 더불어 활자에 묻혀 살 듯하다. 팔자려니 생각하고 살기로 했다. 브렌디아 대령이 황금 물고기를 만들고 녹이고를 반복했듯이, 아마란따가 낮에는 수의를 짓고 저녁에는 풀고를 반복했둣이 나는 읽다가 말다가 읽다가 말다가를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지속할 듯하다. (19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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