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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순 Jan 18. 2022

3. 고통은 비교 대상이 아니다

       따듯한 위로의 말

 ‘내 손톱 밑의 가시가 제일 아프다’라는 속담이 있다. 손톱 밑에 박힌 가시야 죽을 만큼 큰 고통이나 상처에 비하면 그렇게 큰일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 듣기에 따라서 이 말의 의미는 다르게 해석된다. 타인이 보기에는 엄살로 비칠 수도  있고 아픈 당사자는 모든 욕구를 잠재울 만큼 중차대한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러니 제삼자가 무조건 엄살로 치부해 버린다면 당사자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야속할밖에.


차곡차곡 나이를 먹으면서 그냥 주어지던 것들을 의심하고 비틀어보는 습관이 생겼다. ‘더’인지 ‘덜’인지는 모르지만 손톱 밑의 가시도 빼기 전까지는 아프다. 모래 한 톨이 신발에 들어가도 단지 걷기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온 신경이 그리로 쏠린다. 아는 사람만 안다. 이렇게 매사 세상을 비틀어 보는 습관은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다. 그중에서 오늘은 고통에 대해서, 아니 더 큰 의미로 감각에 관하여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려 한다.


우리 집도 다른 집들과 마찬가지로 한여름과 한겨울, 매해 같은 이유로 남편과 옥신각신 말씨름을 한다. 이유는 눈치챘겠지만 온도에 대한 감각의 차이다.

“너무 더워, 에어컨을 켜야겠어”

이렇게 말하면 구지가 냉큼 말을 받는다.

“뭐가 더워, 견딜 만 한데….”

‘뭐가 더워’까지만 듣고도 이미 부글부글 화가 올라오기 시작한다. 뒷 문장은 들으나마나 뻔하다. 이 두 문장이 30년간이나 매해 매번 무한 반복된다. 싸움의 내용 또한 무한 반복이다. 약간의 변주만 있을 뿐.  

“내가 덥다는데 뭐가 덥냐고 말하는 건 무슨 경우야! 내가 더우면 더운 거지, 더운 것도 물어봐야 알아?”

이런 말다툼 이후 에어컨을 켜고 안 켜고는 논외로 하자.

겨울에는 단어 하나만 바꾸면 된다.

‘더워’를 ‘추워’로.


이 대화에서 나는 맞고 구지는 틀린 걸까? 정답이 있는 문제라면 누군가 한 명은 거짓말을 한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우린 안다. 둘 다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다만 더위를 견디는 정도, 그러니까 고통을 버티는 힘이 다를 뿐이라는 것을. 그런데도 서로 우긴다. “뭐가 덥다고 그래~” , “내가 더우면 더운 거야.”


  ,  깜냥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많았다. 지인들을 붙잡고  징징거렸을 수도 있다.  딴에는 어렵게 힘든 이야기를 꺼냈는데 듣는 상대방은 그건 고통도 고민거리도 되지 않는다고 오히려 핀잔을 주었다. 위로는커녕, 잠자코 있으라는 엄명을 받았다. 구구절절 이야기를 듣고 보니  역시도 그래야만   같았다. 그렇다고 아프지 않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비해 작아 보이는  고통은 나의 밝은 표정 뒤에 숨어서 조금씩 자라났다 줄어들었다. 온전히 나의 몫이 되었다.


몇 년이 흘렀다. 흐르는 동안 내게도 내성이 생겼다. 그 정도 고통쯤은 감기 정도로 여기게 되었다. 하지만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온도에 민감한 정도가 사람마다 다르듯이 고통을 견디는 힘도 개인마다 다르다는 사실을 말이다. 극복하는 고통이 늘어날수록 고통에 덜 민감해질 수는 있지만, 고통의 경험도 개인마다 다르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처음부터 강하게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점점 강해지는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 아프다고 말하면 고통의 크기를 재지 말고 상처를 우선 어루만져 주자. 사람이 먼저다. 분석은 나중에 하자.


되돌아보면 부끄러운 일 투성이다.  

마음이 아픈 사람에게 얼마나 자주, 또 얼마나 많이 위로 아닌 위로를 했던가.

“그 정도 가지고 뭘 그래~~”

“말도 마! 내 경우는 말이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매사를 비교해서 가치를 정하다 보니 고통의 크기도 비교 분석해서 정량화한 건 아닌지. 세상엔 힘든 일들이 얼마나 많이 산재하는가.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고통은 비교하는 순간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 위로는커녕 면박부터 날아올지 모르니 차라리 입을 다물어버리는 게 수다. 진짜 위로가 흔하지 않게 된 이유다.      


이제는 그러지 말아야지.

누군가 아프다고 말하면 아픔의 강도를 따지기 전에 상처  마음부터 다독여줄 일이다. 고통은 비교대상이 아니란 것을 상기하자. 마음은 유리와 같아서 쉽게 깨진다. 보이지 않는 것일수록 조심조심 다뤄야 한다. 문득, 그날이 생각나서 적어본다. (21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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