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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순 Feb 05. 2022

11. 불꽃같은 문장과의 해후

        박완서를 읽다

나는 어머니가 싫고 미웠다. 우선 어머니를 이루고 있는 그 부연 회색이 미웠다. 백발에 듬성듬성 검은 머리가 궁상맞게 섞여서 머리도 회색으로 보였고 입은 옷도 늘 찌든 행주처럼 지쳐 빠진 회색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견딜 수 없는 것은 그 회색빛 고집이었다. 마지못해, 죽지 못해 살고 있노라는 생활 태도에서 추호도 물러서려들지 않는 그 무섭도록 딴딴한 고집. 나의 내부에서 꿈틀대는, 사는 것을 재미나 하고픈, 다채로운 욕망들은 이 완강한 고집 앞에 지쳐 가고 있었다.  


나는 늙은이처럼 푸듯이 뇌까리듯 벽에 걸린 기타의 젤 굵은 줄을 엄지와 집게로 잡았다 놓으니 음산한 저음이 둔중하게 울렸다. 욱이 오빠 손에서 갖가지 재미나는 가락을 내던 것…기타 소리뿐이었을까. 그때의 생활은 온통 소란스럽고도 신나는 음향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 같다. 음향뿐이 아니다. 여러 가지 색채, 위태롭도록 다채롭고 현란한 색채가 있었던 것 같다. (나목 / 박완서)


며칠 전이었다. 해가 이울기 시작할 무렵, 산책하다가 우연히 유리창이 내쏘는 불빛에 가슴을 데었다.  몸을 통과한 어떤 문장이 떠올랐다. 왈칵 그리움이 단단한 표피를 뚫고 쏟아져 나왔다. 그녀가 박적골에서  개의 고개를 넘어 바라다본 대처, 개성의 첫인상이 거기에 있었다. 해가 떨어져 박살이 났다고 했던가. 불꽃 없는 불놀이,  뜨거움에도 유리창은 깨져 떨어지지 않았고,  또한 질세라 활활 타올랐다.


내 몸에 화인처럼 찍힌 문장이 보고 싶었다. 내 기억에 의지한 감상이 아닌 진짜 그녀가 쓴 그 순간의 기록이. ‘나목에서 읽었던가?’, ‘그 해 겨울은 따듯했네’ 였던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아니지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모르겠다. 그의 작품을 한 작품도 빠뜨리지 않고 촘촘히 다 읽었는데 그래서 모든 기억이 뒤죽박죽 뒤섞여버렸다. 도무지 감이 오질 않았다. 막막했다.  


그 잊힌 문장이 내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그리움에 이끌려 끝내 도서관에 갔다. 가볍게 읽을 요량으로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산문집을 빌렸다. 읽을 책들이 탑처럼 쌓여있는데 또 빌려다가 몇 층을 더 쌓았다. 조금 더 쌓았다가는 피사의 사탑이 될 지경이다. 들쭉날쭉 비스듬히 쌓인 책 탑은 내게 해거름의 감은사탑 이상으로 아름답다.


한 줄 한 줄 읽어 가는데 문장이 너무나 아름답다. 아름다운 문장을 눈으로 밟고 지나간다. 김애란 작가는 밑줄 긋기가 문장과의 스킨십이라 했지. 내게 있어 문장을 읽는 것은 산책이고 애무다. 문장과 문장을 징검다리 삼아 이야기의 늪에 빠져든다. 그것만으로도 황홀한데 어머나, 세상에! 그 사무치게 그립던 문장을 발견했다. 소설이 아닌 산문집에서. 몇십 년 만에 잃어버린 가족을 만난 것처럼 소름이 돋았다. 간절히 원하던 그 문장이 이렇게 우연히 나타나다니. ‘운명이다!’ 외치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녀를 한 줄 한 줄 애무하듯 다시 읽고 싶어졌다. 그리하여 두 권을 더 주문했다. 우리 집 책 탑은 공든 탑이 무너지듯 와르르 쓰러질지도 모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 소비의 대부분은 책값으로 나간다. 미장원도 거의 안 가고, 옷도 잘 사지 않는다. 책조차 소유하지 않기로 다짐했건만 이렇게 한 권 두 권 새로운 책들이  야금야금 내 공간을 잠식해 들어온다. 지금은 못 본채 넘어가 주는데, 언젠가 변덕이 나면 우르르 현관 밖으로 내몰아 버리겠지. 그래도 살아남는다면 내 마지막 동반자가 될 것이다.


이러해서 나는 ‘박완서’를 다시 읽기로 했다. 얼마나 오래 걸릴지는 모르지만 그의 모든 작품을 다시 읽기로. 처음엔 낯설겠지만 한 권 한 권 읽어가면서 그 책을 읽던 젊은 날로 다시 돌아가 볼 수 있을 것 같다. 지금보다 젊었고, 육아다 살림이다 정신없었으며, 결코 내가 글을 쓰리라는 것은 꿈도 꾸지 않았으며, 동화 읽는 할머니로 늙어가길 소망하던 시절의 이야기가 그의 작품을 읽는 동안 내게 다녀갈지도 모르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시간에 쫓기면서 읽었던 책들이, 넘치는 건 시간뿐인 지금의 내게 어떤 감동을 안겨 줄지 자못 궁금하고 설렌다.


오래 기억하고 싶은 문장을 타이핑 할랬더니 나의 서피스가 고장 났다. 잘 쓰던 건데 갑자기 자판이 먹히질 않는다. 요즘엔 글을 잘 안 써서 한쪽에 치워뒀더니 항의라도 하는 모양이다. 인터넷도 되고 마우스도 되는데 글자만 고집 센 황소처럼 요지부동이다. 이처럼 나를 불편하게 해야 겨우 중요성을, 고마움을 깨닫게 된다는 거, 사람일도 마찬가지다. 이것 참 아이러니다.


다시 쓰고 싶어졌다. 한 자 한 자 정성 들여 필사를 했다. (21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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