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 농사는 개뿔
#텃밭에 밀을 심었다
아침, 창 밖으로 들리는 참새 소리가 요란하다.
'비가 내려 하늘이 깨끗하고 공기도 맑으니 새들도 신이 났구나' 하며 룰루루 참새를 보러 나가본다.
작은 텃밭에 밀알을 조금 뿌려두었는데 그것이 자라 어느새 알알이 열매를 맺고 있었다.
참새들의 소리가 매우 신나게 들렸던 건 이 때문이었다.
얼마 안 되는 나의 밀을 두고 참새들이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가까이 다가가 본다.
내 발걸음에 놀라 후두둑 날아가는 녀석도 있고, 미련이 남았는지 멀리 가지 못하고 주위를 계속 맴도는 녀석도 있었다.
밀꽃이 피었고, 알곡이 단단히 여물겠구나 하며 들여다보았던 게 며칠 안된 것 같은데
그새 잘 여물어 맛이 알맞게 들었었나 보다.
참새들이 맛있게 다 먹었네.
내 것도 조금만 남겨주지.
우리밀로 천연발효빵을 만드는 나는
직접 밀을 키워 빵 한 덩이 구워보고 싶은 로망이 있었다.
타샤 튜터님의 안온하고 여유로운 손놀림 같은 로망.
# 또 다른 로망
역시 로망은 이루어지지 않아야 로망인 것이다.
밀알이 모두 사라진 밀 줄기를 잡고는 참새들과 함께 허허 짹짹 웃는다.
내 로망이 무슨 대수라고, 너희가 배불리 먹고 나의 텃밭정원에 영양 가득한 똥 잔뜩 남겨주면 그것도 충분히 아름다운 일이지.
뿌리를 길게 내리는 밀 덕분에 나의 작은 텃밭은 많이 비옥 해졌을 것이고, 행복했을 것이다.
인간의 로망 따위가 우선 될 일이 아니다.
작은 실험실처럼 조금씩 심고 관찰하며 이런저런 생각들을 구현해 보는 텃밭이다 보니 밀을 다 먹어버린 참새에게도 마음을 넓게 쓰게 된다.
밀을 수확하고 제분하여 판매해야 하는 농부에게는, 이런 새의 방문이 참으로 불편한 일일 것이다.
누군가에겐 꼭 쫓아내야 할 중요한 일일 텐데 나에겐 허허 웃어넘기는 일이라는 게, 괜히 혼자 미안해진다.
농사의 모습도 여러 가지여서 각자의 상황이 다를진대, 나는 감사하게도 생계형 농사를 짓지 않으니 이런 마음을 품을 수 있다.
생각해 보니 어쩌면 이렇게 참새에게 허허 웃어줄 수 있는 가벼운 텃밭이 누군가에겐 로망이겠구나 싶어 진다.
참새 때문에 로망을 잃은 줄 알았는데, 참새 덕분에 로망을 이루었음을 알게 된다.
나는 누군가의 로망일지 모른다.
그러니 밀알이 남지 않은 것에 좌절하지 않고, 참새에게 맛있는 밀을 제공할 수 있는 텃밭을 가꾼 것에 대해 뿌듯하게 여길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