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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영 Jun 14. 2024

순례가 뭐예요?

순례자와 여행자와 관광자의 차이

 여섯 번의 순례를 경험하며, 나의 숨에 집중하여 중심을 내 안에 두기 위한 연습을 거듭했다. 시선이 풍경과 대화에 끌려가다가도 숨에 집중할 때면 중심이 돌아오는 것이 느껴지고는 했다. 참 다양한 이들과 걸음을 함께 했고, 어울려 살아가는 과정 속 때로는 웃고 때로는 다투며 함께 성장해 나갔다. 그중 첫 순례 경험인 경주 순례에서 배움터의 스승이신 ‘두더지’와의 대화가 인상 깊게 남아있다.

 순례란 무엇인지, 어떠한 질문을 품어야 하는지 고민이 되어 질문을 드리게 되었다. 두더지는 어떠한 생각도 대화도 불필요하며, 그저 온 마음을 자신의 걸음과 숨에 집중하는 것이 순례라고 이야기해 주셨다. 순례자는 자신의 한 걸음 한 걸음이 집이고 고향이다. 어디로 향하던 목적지는 지금의 한 걸음이 목적지일 뿐이다. 어떠한 욕구에 따라 어딘가로 향하고 무언가를 취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와 미래를 향한 기억 또는 상상 속에 머무르지 않고, 나의 숨과 걸음에 집중하여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연습을 행하는 일이 순례이다.

 순례와 삶의 방식은 연결되어 있다. 사람들은 대개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느냐에 집중하며 먹고사는 문제에 얽매여 살다 생을 마감한다. 하지만 꼭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지, 큰 집과 큰 차가 한 사람 사는 것에 진정 필요한지, 무엇이 인간다운 삶인지 청년의 시기에 질문해야만 한다. 어떠한 상황이 주어지더라도 끊임없이 질문하고 두드리며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단편적 욕구에 치중되어 살아가는 사회 속, 대개 내가 아닌 것이 묻은 채로 살아가고는 한다. 모두가 취하는 방식 그리고 학습된 욕망에 질문을 던지는 일은 나다움과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며 살아가는 일과 연결되어 있다. 계속해서 두드리고 질문하여 나의 시선을 정돈하고 싶다.



아래는 두더지와 나눈 순례에 관한 대화 전문이다,


지영: 두더지, 순례를 할 때 뭔가 생각하면서 걸어야 될 것 같은데 아무 생각이 안 들어요.


두더지: 생각하지 마, 순례의 원형을 그때 봤을까? 히말라야 갈 때 삼보일배하면서 가는 순례가 있어. 그게 순례의 원형이야. 그들은 그런 몸짓을 하는데, 우린 그런 몸짓을 않더라도 그런 마음과 태도는 갖고 가야 해. 그래야 우리가 어제 말했던, 그리고 지영이가 지금 말하는 순례 다운 순례를 할 수 있는 거지.

순례라고 하는 것은 인류가 우리에게 물려준 아주 아름다운 지혜의 유산이야. 왜 그들은 그렇게 갔을까? 어떻게 그 길을 갔을까? 우리가 하루를 하던, 며칠을 있던 그런 마음이 살아나야 되겠지. 그럼 우리 상황으로는 무엇을 할 수 있어야 하냐면 천천히 해야 돼. ‘뭔가 생각을 하면서 가야 되는 거 아니냐’ 이런 것도 서로 질문을 통해서, 순례라고 하는 본래 정신에 가까워져야 해. 그런 방법 중에 하나가 순례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서 순례의 원형, 정신을 우리가 좀 일깨울 필요가 있지. 그러려면 우선은 삼보일배라고 하는, 온 마음을 내 걸음에 집중하는 거야. 우리 일단 마음은 냈잖아 그 길은 신을 만나는 거고 나를 만나는 거라는 걸 이제는 알게 되었어. 그걸 위해서 하나의 몸짓을 그들의 문화에서 가져온 게 삼보일배야 삼보일배를 하면 그냥 오롯해지는 거야 그럴 수밖에 없겠지 다른 생각이 안 들어.


지영: (웃으며) 힘드니까요?


두더지: 힘들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하루 이틀 사흘 걸어가다 보면 그렇게 되는 거란 말이야. 우리가 말하는 무아의 경지에 이르게 돼 자연스럽게, 그런 것처럼 우리도 이 걸음에 집중해야 한다. 집중하려 한다면 천천히 가야 하고 홀로 가야 하고 침묵해야 돼 그래야 되는 거지. 삼보일배하면서 말하면서 삼보일배하고 그러진 않았을 거 아니야. (지영 두더지 함께 웃음) 그들은 왜 걸으면서 삼보일배를 하며 걸었을까? 이런 평탄한 길도 아니야. 험난한 히말라야 산을 넘는데도 그렇게 가는 거야 한 겨울도 마다하지 않고 그렇게 가는 거야 그게 자기들의 평생의 소원이야. 우리에게는 아직 그런 문화가 없고 그런 것을 보고 들은 적도 없기 때문에 이 길에서나마 그런 이야기들을 아침이나 저녁이나 쉴 때나 이야기가 되어야겠지, 그래서 그런 것 중에 한 방법이 틱낫한 스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천천히 그리고 스톱, 멈춰야 해. 우리가 이 길을 쭉 가는 게 아니야, 우리는 보통 1시간마다 쉰다는 생각을 하거든? 그거는 이제 ‘힘드니까 쉰다’ 이거니까 그거는 수준이 좀 떨어져. 우리는 목적이 다르잖아 순례잖아 순례. 그래서 잠시 거기서 숨을 고르고, 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면 순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그러면 쉼도 되고 정신이 일깨워지고 그러는데 우리는 한 시간 걷고 몸만 쉬어 그리고 막 수다를 떨어 또 걸어, 그럼 되겠어? 생각만 복잡해지는 거야. 똑같이 걷는 데도 이렇게 다른 거니까 순례를 하자고 했으면 순례하는 법을 배워야겠지 그건 어렵지 않다, 오랜 기간 우리에게 물려진 아름다운 지혜의 유산이 있다. 어제도 이야기했듯이 역사 공부를 하지 말자 이런 게 아니라 순례라고 하는 걸 중심에 두고 바탕에 두고 역사도 공부하고 어우러졌을 때 우리는 그걸 보고 아름답다고 하는 거지. 그런 게 잘 되고 깊어지면 즐겁고 기쁜 거지 그러지 않고는 관광하고 여행하고 그러면서 즐겁게 하자 그러면 매일 먹고 마시면서 세월을 보내게 돼 그니까 돌아가면 또 갈증이 생겨, 그러면 또 가야 해. 그런 것과는 전혀 다르다 순례는, 하루하루를 걷고 돌아가도 내가 있는 곳에서 그 힘으로 집중해서 즐겁게 신나게 기쁘게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관광자와 여행자와 순례자의 차이라고 봐, 순례자는 있는 곳 그곳이 내 집이고 고향이야 이 한 걸음이. 근데 관광자나 여행자는 끝없이 다음 관광을 해야 하고 또 어디 가고 싶고.. 이것 참.. 결과는 달라 그것이 가지고 있는 순례의 힘이고 인류의 앞선 사람들이 가진 놀라운 지혜다. 그들은 문밖을 나서지 않아도 천하를 알아보고 그곳에서 자기 삶을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인데, 관광하는 사람은 끝없이 어딘가를 가야만 해. 욕구와 욕망이 끝이 없지, 그럴 순 있다고 봐, 말은 순례인데 관광처럼 하면 그런 사람들과 별다르지 않게 되겠지? 그래서 방법은 천천히, 걷는 것만이 아니라 그동안 천천히의 삶이 내 몸에 습관이 되어야 해, 습관이 달라지는 거지 지영이는 이야기 들어보니까 쉼 없이 멈춤 없이 바쁘게 살아와서 그것에 대한 의문을 갖는 것이잖아. ‘이렇게 살아도 되나?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지?’ 천천히 때로는 게으르게 살아도 괜찮아, 그렇게 사는 것이 필요하다 그거잖아 저 사람들 템포에 갈 이유가 없어, 내 템포에, 내 숨에 맞게 그리고 지혜로운 어르신의 말씀에 맞춰 가다가 스톱해 왜 한 시간에 한 번만 쉬어야 해? 나는 여기 와서 걷기 위해서 온 게 아니다 이거야. 걷기는 나를 찾는데 가장 좋은 방법이니까 그렇게 하는 것뿐인데 걷는 것조차도 바쁘게 걸어. 또 어떤 힘이 드니까 한 시간씩 쉬어 이런… 그 사람은 걷기를 하는 것일 뿐이지 순례를 하는 것이라 보기 힘들어. 이런 생각에 의문을 갖고 이야기를 해야지. 그러면 좀 더 그 방법을 알게 되고 지혜를 갖게 되지 않을까 싶은데? 천천히 하는 것 중에 하나가 내가 들숨을 쉴 때 몇 발을 가나, 날숨을 쉴 때 몇 걸음을 걷나 그걸 내 중심으로 둬, 집중하는데 아주 좋아. 자기를 찾고 만나는 데에도 힘이 돼.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해야 할 일이나 들어야 할 이야기는 같이 하지만, 될 수 있으면 저렇게 뭉치지 말고, 홀로 걸어. 어차피 사람들은 숨을 들이쉬고 내쉬어야 하잖아, 거기에 집중해. 덕분에 집중력이 늘지. 거기 안에 생각이 끼어들 리가 없어. 처음엔 잘 안 되겠지만, 힘이 생기면 오로지 나의 숨에 집중할 수 있어. 그러면 이제 몸도 마음도 쉬게 되고 쉼 속에서 나를 만나게 되고 설령 다른 일을 하더라도 거기에 집중할 수 있는 힘이 저절로 생겨, 그럼 얼마나 좋아.


지영: 그럼 그렇게 해봐야겠어요.


두더지: 그럼 그럼, 나도 비슷한 질문을 갖고 수년 동안 지혜로운 어른들의 말씀, 방법을 찾고 실천해 왔으니, 누구든 할 수 있어. 어디서나 할 수 있고 쉬워, 그렇게 해보면 돼.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그 질문이 있을 때 이야기하는 게 가장 좋아. 질문이 오기 전까진 이런 이야기 굳이 하지 않지. 이렇게 질문 없이 그냥 걷는 게 습관이 되잖아. 그러면 이제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한 달 두 달이 지나고 나서는 뭐라 그러는지 알아? ‘왜 걸었는지 모르겠다' 이런 반응을 많이 해, 자기들이 그렇게 걸어 놓고, 이런 게 나는 좀 슬퍼 자기 인생 자기가 살아놓고. 그럼 그때 어떻게 걸어야 할지 물어보지, 기껏 자기들이 이렇게 해놓고 하루 마무리할 때 사람들이 대개 뭐라 그래, 뭐 먹어서 맛있었다 뭘 보니 좋았다. 그런데 순례라고 해놓고선 이야기하는 건 그냥 관광자나 여행자 이야기야, 우리는 많은 선물을 받았는데도, 기껏 이 정도의 이야기를 가지고 좋았다, 마음에 맞지 않는 일이 있으면 또 그것 가지고 왈가왈부하지. 하루 지냈는데 그 이야기밖에 못 하고 인생이 그러다가 가는 거야. 뭐가 맛이 있냐 맛이 없냐 하면서, 좀 인생이 그렇지 않아?

지영: 네 그러네요

두더지: 그런데 왜 그 사람들이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살까, 한 번도 그렇지 않은 삶을 안 살아보니까 그게 습관처럼 그렇게 살아버리는 거야 불행하고 참 안타깝고 슬픈 일인 거지, 대부분 그렇게 살다 간다는 거지, 우리가 이렇게 걷기 순례를 하는 것은 청소년 시기에 이런 것들을 좀 접하고 그게 또 자기 삶의 습관이 되면 정말 좋겠다는 바람에서야. 왜 나이 들어서, 죽을 때까지 그걸 모르고 뭐가 좋니 어쩌니 그렇게 막 하면서 인생을 그렇게 살까, 안타까움이 있어서 이런 장을 펼쳤고, 무엇보다 지영이가 그렇게 살아봐 그럼 된 거야.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도 하고.


지영: 그러면은 숨에 집중하고, 침묵하고, 혼자 있고, 멈추고


두더지: 그렇지 걸을 때는 그 길밖에 없어, 숨에 집중하려면 천천히 걷는 수밖에 없어 천천히 멈춤 슬로우, 스톱 이렇게 나는 들숨 할 때 네 걸음, 날숨엔 다섯 걸음. 이 숨의 흐름이 나에겐 맞더라고 그러면 경사진 그런 곳을 갈 때도 그렇게 힘들지 않게 갈 수 있는 거야 그렇게 가다가 적당히 잠시 쉬고 그런 거지, 우리가 뭐 동남산 가러 여기 온 게 아니다. 목적지는 내 한 걸음에, 여기가 내 목적지야 동남산이 내 목적지가 아니야 그러니까 그런 것도 우리가 좀 알고 있으면, 그런 이야기 속에서 점점 깊어지는 거지 대부분 사람들은 ‘오늘 어디 다녀왔어?’ ‘동남산 다녀왔어' 그런 이야기가 다가 되지만, 그렇지 않게 살 수 있지. 그게 다르게 생각하고, 새롭게 생각하는 거야 그러면 절로 생각이 깊어지지.


지영: 저는 여기 마을인생학교 온 계기는 되게 뚜렷한데 여기에 왜 있어야 하는지, 이유는 잘 못 찾았었거든요. 근데 혼자 시간을 보내다가 ‘좀 더 깊게 생각하고 다르게 생각하는 법을 배우고 싶어서 여기와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었어요.


두더지: 오케이 그럼 됐어, 사람들은 그런 정도로 살다 가는 거야 그러면서 얼마나 힘들게 살아 어린아이 때는 크기 위해선 먹어야 하니까 그렇지만 다 커서도 죽을 때까지 먹기 위해서 사는 사람이 있다 이 말이야 늘 먹고 입고 그런 이야기들을 일삼고 그러는 거지. TV에 나오는 드라마 이야기나 하면서 스무 살이 넘고 서른 살이 되어도 그렇게 살아 그런 사람은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사는 거야. 누가 무슨 옷을 입었니 뭘 먹었니 하면서 참 안타깝지, 대개 사람은 그렇게 살아.


지영: 그러면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두더지: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래서 옛날 지혜로운 어른이 그런 이야기를 했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아라 들의 백합화를 봐라 하늘 나는 새를 봐라 다 그들도 먹고살지 않냐 아무리 너희들이 화려한 옷을 입어도 들에 핀 백합화만 하겠냐’ 그런 겉모습, 뭔가 좋은 옷을 입고 싶을 때도 있고 맛있는 걸 먹고 싶을 때도 있고, 이럴 때가 있겠지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이어야지 죽을 때까지 그런단 말이야

나이가 40, 50 먹었는데도 드라마 보고 누가 뭘 입었네 저거 입고 싶다 그러고, 사람이 돈 벌어가지고 먹는 데다가 입는 데다가 다 쓰면 되겠냐, 그러면 안 되는데 대부분 그렇게 사는 거야. 아주 유치한 아기들 수준이지, 나이가 그 정도 먹었는데. 우리 어릴 때는 이렇게 세끼 밥을 먹고사는 사람들이 몇 명 안 됐어. 그럴 때는 필요해 먹고사는 게 다야, 내 자식 굶지 않도록 하는 게 부모의 일이지, 그런데 지금은 온갖 거 다 먹을 수 있고 심지어 골라서 먹잖아 아주 소수의 사람이 아니라면 한국에서는 다 배고프지 않게 살아 지금은 자기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가, 그런 시간과 돈을 어디에 써야 할지 그런 질문 지을 해야겠지, 근데 그런 문화가 없고 그렇게 살지도 않으니까 여전히 먹고사는 문제밖에 몰라 그러니까 돈 벌면 자기가 하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그게 다라고 자기의 영혼과 정신을 건강하게 만드는 데에는 생각을 못 해, 그렇지 않아? 그러니까 차도 큰 놈 사야 하고 집도 큰 거 사야 하고, 그런데 사람이 사는데 그렇게 큰 차와 큰 집이 필요해? 그런 질문을 해보는 거지 청년일 때, 저렇게 사는 게 맞나? 저렇게 살 수밖에 없나? 어떻게 사는 것이 사람으로서 인간답게 사는 거지? 그런 질문들을 해 봐, 청년일 때 했던 그런 질문들이 그것이 평생 가더라고, 그래서 이 시기가 가장 중요하다고 본 거지, 답은 이제 우리가 찾아가는 거야.


지영: 두더지, 그러면 사람다운 게 뭐예요?


두더지: 음 사람다운 것은 일단 그런 질문을 하는 거야. 사람 이외에는 질문할 수 있는 동물이 없어, 물론 동물도 소통의 방식이 있다지만 식물들도. 그런데 질문을 하는 거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거라고 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게 있어 (개가 짖는다)

지금 짖는 저 개가 ‘개답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을 한다고 밝혀진 건 없어, 짐승처럼 그냥 살아도 나는 별문제 없다고 봐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자기 돈 자기가 벌어서 남 해치지 않고 그냥 그렇게 산다고 해서 별로 큰 문제가 된다고 보진 않아.

그런데 방금 질문처럼 사람답게 산다는 건 뭐냐라고 하니까, 사람이니까 그 질문을 하는 거지 그런 질문을 적어도 청소년 시기에 들어야 해, 청소년에서 청년의 시기 때에는 질문을 이제 해야 되겠지 나는 어떻게 살고 싶냐 이런 질문을 해서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 혹은 그런 질문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어울려서 자기 길을 찾아야지, 누가 주는 건 아니라고 봐. 다만 질문할 수 있도록까지는 해 줘야 한다고 봐 그게 이제 교육의 본연이라고 보는데 한국 교육은 그런 질문들을 아예 할 수 없는 교육을 하는 거지. 우리가 아까 그 이야기했던, ‘왜 사람들이 죽을 때까지 뭘 입을까 뭘 먹을까에 전전긍긍해서 사는 걸까’는 교육이 그 정도 수준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지 우리가 그걸 알아야 하고, 왜 여기 왔느냐 하는 건 그런 현실이 있기에 지영이가 이곳에 왔어 그렇지 않았다면, 그럴 수 있는 다른 곳이 있었다면 그것이 그냥 일반 학교에 있다면, 또 모든 교육이 그것에 중심을 두고 있다면 굳이 여기까지 와서 생활할 이유가 없지 지영이 있는 그곳에서 하면 되는 건데, 그래서 우리는 조금이라도 그런 틈을 벌려보자, 우리라도 소리를 내보고자 거기에 생각이 있는 부모님들, 기성세대의 사람들 그리고 당사자들 이렇게 삼자가 모이면 뭔가 좀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한 거야. 사람다운 건 다르게 표현한다면 내가 누구인지를 묻고 있단 말이야 나는 누구인가 그것은 철학의 기초야, 철학의 두 가지 중 하나는 천지에 대한 이치를 아는 것이고 또 하나는 사람의 삶에 대한 이치를 아는 것, 두 가지야. 그런데 그 두 가지 핵심을 중심에 두고 교육을 하는 곳들이 사라졌다 이거지 그건 이유가 있겠지, 전쟁과 일제 식민지 이런 것들로 인해 비틀린 방향의 교육과 환경에서 우리가 자랐기에 정말 사람이라면 던져야 할 질문 자체를 하지 못하게 되었지 그런 요인이 있는 거야. 지금이라도 그걸 해야지 아주 단순한 이야기야, 어렵지 않은 일인데 그것이 어려운 환경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지. 그런 질문 없이 특히나 젊은 청년들이 당장 먹고살아야 하는 환경에 내몰린다는 이 현실이 부끄러운 거고, 어떻게 하면 그 시대에 맞게 그들의 삶을 누리며 살 수 있을까 질문을 하는 거지. 사람다움이라고 하는 거는 그런 거라고 봐 가축을 기르는 모습 하나만 봐도 주인의 의식의 수준에 따라 개와 닭의 모습이 다르잖아 그것과 비슷해 옛말에 그런 말이 있어, 그 집 개를 보면 집주인을 안다고 했어 주인 영향을 받은 거지. 같은 개라고 하더라도 어떤 주인을 만나느냐에 따라 개의 모습이 달라 사람도 별다르지 않다고 봐 그래서 한 생을 살면서 누구를 만나느냐, 누구와 동행하느냐 이런 게 엄청난 일이야 이렇게 순례를 간다 해도 누구와 함께 순례를 떠나느냐는 순례의 질을 판가름하게 돼 더 다르게 본다면 인생 자체도 그렇다 내가 좋은 사람과 만나서 좋은 사람과 일생을 보내려면 우선 내가 그런 안목과 통찰력을 갖고 있어야 그럴 수 있는 사람을 만나게 돼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내 의식만큼의 사람을 만나게 되어 있어 그래서 지금 이때 그런 힘을 가져야 해 그런 안목과 통찰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해.


지영: 그런 안목과 통찰력은 어떻게 기를 수 있나요?


두더지: 그걸 보고 우리는 공부라고 해, 그게 참 공부야 공부의 본연이고 바탕 공부고. 그걸 빠트리고 지식에 대한 공부를 하곤 하지,

그것이 밥벌이와 연결되기도 하고 그게 전부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그런 지식들은 다 컴퓨터에 다 있잖아 지식보다 중요한 건 지식을 다룰 수 있는 힘이야 그리고 그걸 지혜라고 해. 그게 없으면 갖고 있는 자기 앎을 악용하거나 좁은 바운더리 내에서만 사용될 수 있다는 거지

대부분 힘을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남을 해하는데 많이 쓰곤 하지 왜냐하면 그걸 다룰 힘이 없거나 약하기 때문에. 그래서 너희들은 지혜를 길러야 지식이 오더라도 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 거야 그러지 못하면 지식이 나를 삼키고 불행한 인간이 되고 남도 불행하게 만들어 그런 사람이 지도자가 된다면 아주 불행해지는 거야 아주 단순한 이야기야. 우리가 지혜를 찾아가는 방법이 세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대화하는 것, 수다와 이야기하는 것과는 다른 거야 수다도 자기가 갖고 있는 스트레스를 푸는 역할도 하지만 그런 데서 지혜가 나오기는 힘들고.


지영: 그럼 질문과 대화를 통해 지혜의 힘을 기를 수 있는 거네요.


두더지: 그렇지, 그래서 옛날에 소크라테스나 이런 사람들이 대화의 중요성을 이야기했어 이것도 참 아름다운 전통이야 순례도 마찬가지고, 순례를 통해서 자기 생각을 깊게 만들어줘 그리고 또 하나는 명상이야.

공자도 그런 말씀을 하셨더라고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 배웠는데 생각하지 않으면 얻은 게 없어 생각 없이 남이 말한 대로 살아가는 거지 자기가 주인인 삶을 살 수 없어. 근데 배우는 거 없이 생각만 해 그건 또 위태로운 거야. 이런 걸 이미 약 2000년 전에 지혜로운들이 이런 말들을 했어 그러니 우린 지혜로운 어른들의 말씀을 잘 듣고 생각해서 나의 삶을 살아가야지 홀로 자기가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지 그리고 그게 순례인 거야 생각 자체를 더 깊이 만드는 걷기 명상. 이렇게 자기 내면의 소리와 오래된 지혜, 이걸 바탕으로 나의 행위도 있어야지 이걸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칭해, 옛날 지혜로운 어른들의 말은 어려운 게 없어 잡다하지 않아 그런데 그걸 어렵고 잡다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그런 마음이 없거나 그런 배움이 없기 때문이지, 내가 처음부터 이런 고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막막하고 어렵지 그런데 인류 역사 수억 년 동안 이런 생각과 고민을 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어 적어도 우리가 인류의 3대 성인을 이야기하잖아 성인이라고 하는 건 자기의 질문을 갖고 그 길을 밝혀낸 사람, 인류의 스승인 거지 모두에게 다 있어. 그런 사람들의 생활의 공통적인 모습이 뭐냐, 다 걸었어 지금도 스승이라고 하는 그런 분들은 대부분 자동차 없어 스마트폰을 쓰더라도 꼭 필요한 용도로 쓰고 손에 달고 다니고 주머니 넣고 다니는 사람 없어 현대 문명을 활용해 다루는 힘을 갖고 있는 것이지 하루를 돌아보는 것, 지혜로운 말씀을 아침저녁으로 듣고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돌아보는 것, 그게 사람답게 사는 지혜자의 모습이지.


지영: 지혜를 기르는 힘인 거네요


두더지: 그럼, 우리 어릴 때 일기처럼 몇 시에 일어나고 밥 먹고 누구하고 놀고 이런 되돌아봄이 아니고 내가 얼마나 아침저녁으로 지혜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바탕으로 하루를 살았는지, 이것에 대한 되돌아 봄이 되어야겠지.


지영: 그렇게 살아봐야 되는 거네요


두더지: 그렇지 그런 하루여야 해


지영: 그렇게 살면 어떻게 되나요?


두더지: 그렇게 살면 방금 이야기했던 것처럼 사람답게 사는 거지 나도 모르게 사람이 되어 있는 거야 날마다 절로 지혜가 자라지.


지영: 명료하네요.


두더지: 우리들의 대화 안에 명료라는 말이 들어왔어 좋아, 배운다고 하는 것은 그렇게 단순 명료한 거야


지영: 복잡하면 아직 덜 배운 거예요?


두더지: 그럼, 염려할 게 없어 우리는 그 길을 향해 가고 있기 때문에, 복잡해지는 과정을 거쳐서 단순 명료해져 가는 것이야 그런 삶을 좀 살아보고 싶지 않으니?


지영: 네


두더지: 무엇을 하며 사는가 보다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가 더 중요한 거야 꿈이 있다 그랬잖아 그 정도의 바탕을 갖고 일을 하며 산다고 생각해 봐


지영: 그게 더 상위 개념인 거죠?


두더지: 그럼, 그게 사람이 사는 거야


지영: 본질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네요.


두더지: 그래서 여기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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