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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즈 Feb 21. 2020

[뮤즈 모임] '너를 만났다'에 대한 첫 번째 이야기

소재는 '너를 만났다'

<출처: unsplash.com>




[뮤즈: Bee 작가]


<손에 대한 시론>

사람들이 한 명 있다
배운 적 없는 춤을 추는 사람들이다
넘어진다 떨어지지 못하니까

너와 나는 하늘로 올라간다
너만 하늘로 올라가서 나만 하늘로 갈 수 있다

그러니까 그곳에는 나무가 있어야 한다
나무가 있지만 꽃이 있고 집이 있어야 한다
밖에는 내비게이션에서 보인
산이 있고 아파트가 있어야 한다

날아가는 장면도 넣어야 한다 하늘을 나는 기분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은 하늘을 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붕은 나무로 되어 있어야 한다
타르칠을 한 빌라 옥상 색깔의 나무 지붕이어야 한다

이것은 오로지 풍선의 탓이다
은박 풍선이어서는 안 된다 고무풍선이어야 한다
하늘에서 넘어진 너의 발에서 슬리퍼가 떨어진다




[뮤즈: 김샴 작가]


<예감>

백무동 물줄기 따라
산 그림자가 흘러내리고 있다
한 방울 두 방울
역사를 벗어난 눈물이
생인손처럼 붉게 더해지고 있다
산에서 잠든 산사람들의
뜨거운 노래는 아직 식지 않는데
어머니의 산이 솟아올라
내 각막을 뚫고 아프게 들어왔다
내 몸을 닦아 주던 수건은
깃발처럼 찢어진 지 오래인데
아직도 산에 묻은 피를
닦고 있는 이는 누구인가
뼈만 남은 어머니의 손은
너덜겅 같은 약손이었기에
내 심장은 더
편히 잠들지 못한다
산 앞이서 내 운명은
예감으로 붉게 물들어지는데
산은, 지리산은
또 무슨 예감으로 흔들리며
정수리부터 저리 붉어지는가




[뮤즈: Estela 작가]


<집안 내력>

강원도는 감자도 옥수수도 잘 난다
엄마의 엄마는 슬픈 사람이었다
혼자 감자며 옥수수를 키우고
그녀의 남편은 어디를 갔던 걸까
금슬은 좋았나 보다 아이를 열인가 낳았대니
그중 생존자는 셋 뿐이지만

엄마도 본인 엄마를 닮아 슬퍼했다
강원도에 살 적 매일 산에 올라가
동그랗게 몸을 말아 펑펑 울었다 했다
서울로 도망 오고 결혼으로 피신했지만
서울도 강원도와 크게 다를 바는 없었다

그녀들이 낳아온 나도 슬픔을 유전받았다
의사들은 진단 내리기를 좋아하니 우울증이라는 가벼운 세 글자로 단정 지었다
집안 대대로 유전자에 세로토닌이 결핍되어 있을 뿐이었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랍니다
저기요, 감기치고는 너무 오래 아픈데요
그럼 폐렴인가 보지요



<너무 아픈 사랑도 사랑임을>


다섯 살의 너는 발레리나가 되고 싶어 했어
채 익지 못한 여린 발가락을 어설피 세우며
방 안을 돌고는 정중히 인사했지
나는 너의 덜 익은 턴을 감상하고
너의 수줍어하는 통통한 볼 위에 오르는, 보조개

내가 널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어
너는 환하게 웃었다
어떤 꽃으로도 비유할 수 없을 만큼 눈이 부셨고

그래서 이제 나는 부수어지는 것 같구나

우리는 우리란다
세상의 어떤 선과 악과 도덕들, 법률들도
우리가 우리라는 것을 지울 수는 없어

나는 이제 사랑을 알 수 없단다
널 너무 사랑해서 누구도 너만큼 사랑할 수가 없어

너에겐 어느 이름도 붙일 수가 없다
어떤 단어도 너를 표현하기에 부족해
너는 사랑이고 감동이고 나의 눈물이다

그러니 사랑아, 슬픔도 아픔도 나에게 주렴
나는 더 산산조각이 나도 좋으니
길바닥의 유리조각이 되려 한다
거리의 전단지, 담배꽁초 따위가 되겠다




[뮤즈: 장윤재 작가]


<무제>


눈조차 빛 바래는

표정 없는 사내의 고독

등 뒤 발걸음 소리 매우 낯설다.


눈송이 떨어진 자리

꽃송이 피워낼 때

바야흐로 만개한 세상의 미소 속에서

얇게 퍼져 나오는 쓴웃음


구태여 의연한 채

발걸음 빠르게 옮기면

서늘한 바람에 

비로소 여우비 내린다


꽃이 피었었기에

앙상한 나뭇가지에 

그리움이 소복히 쌓인다



<무제>


우리가 봄꽃을 사랑하는 이유는,

겨울 나뭇가지의 앙상함을 알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꽃이 피었던 자리에 남아있는 쓸쓸한 가지를 보면서

따듯한 봄을 그리워했기 때문이다.


결국, 무언가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존재의 결핍을 알기 때문이다.




[뮤즈: 권호 작가]


<IF.. ONLY>

자고 일어나니,

내 품에 네가 있네


그건

꿈이었을까.


평소와 같은,

하루


자고 일어나니,

내 품에 네가 없네


그렇게

하루가 반복되네




[뮤즈: 송진우 작가]


<너의 흔적에...>

처음 내 가슴에 스며든 당신의 체온이
작은 흔적 하나 깊이 새겼고

처음 내 가슴에 와닿던 당신의 숨결에
따뜻한 영혼 하나 지펴졌어

그렇게 내 안에
그 무엇보다 소중한 무엇 하나
그 어떤 것도 대신할 수 없었지

나와 포개지던 손끝 한 번마다
내 안의 너 살아 숨 쉬었고

나를 향하던 눈길 한 번마다
우리의 추억 펼쳐졌어

그렇게 너와 나
그 무엇보다 소중한 기억들
그 어떤 것도 대신할 수 없었지

어느 날 찾아온 너의 빈자리
나만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음에

그 무엇보다 소중한 너를 잃고
멈춰버린 내 안의 너만 하염없이 맴돌지

오랜 시간 너가 남긴
내 안의 흔적을 지우지 못해
붙잡고만 있었어

그런 내가 안쓰러웠는지
그토록 바라던 너와 만날 기회를 받았어

아무런 생각도 겨를 수 없이
너를 안고 한바탕 울음을 쏟았지

하지만 이건 분명히 너와는 다른

그 무엇보다 소중한 무엇 하나
그 어떤 것도 대신할 수 없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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