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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음 Apr 24. 2016

시계 초침 소리가 사라진 세계

16년 4월 24일 새벽 3시. 라디오 방송과 함께 써 내려간 글


언제부턴가 지구 상의 시계에선 초침 소리가 사라졌다. 그것을 자각한 날, 우리는 시간을 잃어버렸고 맹목적인 질주를 시작했다. 절벽 위의 나그네쥐처럼. 또한 시간을 케이크처럼 썰어주던 자오선(子午線)도 사라졌다. 나는 낮과 밤의 구분이 혼미해졌고, 노상 분주해졌으며, 206개의 이음새마다 뿌리내린, 고단함의 균사체(菌絲體)로 혼탁해졌다. 심장은 영속된 자맥질에 지쳐, 뭍에 기어나온 바다거북처럼 한숨을 게워냈다.


잠들지 못한 정신은 인공위성처럼 달의 궤도를 가없이 헛돌았다. 우주에도 어둠이 문진처럼 짓누르는 시간이면, 어김없이 음습한 달의 뒷면에 고립되었다. 그곳은 상념과 번뇌로 충일(充溢)된 곳. 더러 익숙한 세계와 모서리가 닳은 나를 이어주는 것은 주파수처럼 깜빡이는 맥박뿐. 그마저도 넙치 같은 그림자에 온전히 잠식당하자, 광막한 고요만이 흘렀다. 그래서 NASA 영상 속 우주인들은 항상 카세트테이프를 틀어놓고 몸부림치는 것인지 모른다. 그들은 우주를 떠도는 운석의 외로움을 알고 있다. 나는 눈을 감은 채 희미해진 궤도를 점자처럼 더듬으며, 망막한 우주를 유영하곤 했다. "제대로 길을 가고 있을까", "내일 아침 닐 암스트롱의 우주선이 부표(浮漂)했다던 고요의 바다에서, 광휘로운 태양을 다시 목도할 수 있을까" 매일 밤 같은 번민을 되풀이했다. 언젠가는 궤도를 잃고, 먼지처럼 영원을 떠돌거나 종언을 고하겠지만.


이처럼 나의 20대는 잠들지 못한 나날로 점철된 밤을 보냈다. 간혹 '밤도깨비', 또는 '언제나 깨어 있는 요괴'라 불리곤 했다. 깜깜했던 청춘의 밤에 내가 아로새긴 하얀 글자는, 밤하늘의 무구한 성좌만큼 빼곡할 터이다. 게다가 편입, 외국어, 시험, 과제, 자격증, 아침 수영, 고뇌, 가치관 등 1에서 12에 이르는 역까지. 열차 꼬리는 종착역과 밤낮의 구분 없이, 지하철 2호선처럼 둥근 노선을 유랑했다. 영혼은 소진되었지만, 바짝 쫓고 있는 목표에는 '그것을 성취한 이후엔?'이라는 물음표가 누락되었다. 이를테면 단순히 '작가'가 아닌, '타인에게 감동을 주는 작가'라는 말과 같이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할 형용사가 하나쯤 필요했다. 그래서 원하던 명사를 취하고도, 행복하지 않았다. 나의 청춘은, 청춘이라는 말 그대로 설익었던 것이다. 나도 칠흑 같은 암흑 속 우주인처럼 고통에 몸부림쳤다.


2016년 4월 24일. 또 하나의 달이 소멸을 향해 기우는 새벽 3시.  눈밑에 검은 구름이 도사리는 시간이다. 소슬한 북풍마저 잠잠하고, 꼬리를 단 음표만이 헐거워진 시간 틈을 면면히 헤엄친다. 간혹 희뜩한 가로등 불빛은 작은 창 덧문 틈을 습격하려다, 환히 켜진 스탠드 앞에서 우그러지고 만다. 나는 글쓰기를 이유로, 묵은 습관을 반복하고 있다. 그리곤 방송국이 우주로 쏘아 보낸, '심야 라디오 DJ를 부탁해'에 라디오 주파수를 맞췄다. 매일 생의 울음과 임종의 눈물을 되풀이하는 달처럼, 단 하루만 허락된 자리에 DJ가 앉았다. 그는 마이크에 한 줌의 중저음 목소리를 불어넣는다. 다소 긴장한 입술은 마른 장미처럼 크게 벌리지도 않는다. 내가 채워간 글처럼, 부족하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밤. 오늘의 일반인 DJ 오시원 님은 어떤 유성을 쫓고 있길래, 잠 못 들고 있을까.


그는 사람 사이의 주파수 이야기를 꺼내며, 담담한 입술에 미소를 머금었다. 미지의 암흑으로 쏘아 올린 희뿌연 전파처럼, 자신의 목소리가 누군가에게 당도하길 바란다고 했다. 같은 시각. 나는 무딘 활자에 평생 모은 숨결을 눌러 담고 있으며, 필경엔 달의 구덩이 같은 음각과, 분화구 같은 양각으로 쓰인 글을 촘촘히 엮고 있다. 그리고 독자의 내밀한 곳에 이르러, 잊혀진 심상을 살짝 건드리길 꿈꾸고 있다. 비록 DJ와 나는 서로를 모르지만, 같은 흉금(胸襟)을 털어놓고 있는 것은 아닐까. 둘의 전파는 실핏줄처럼 가냘프지만, 물어름 지점에서 동일한 주파수가 하나의 강으로 합쳐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새벽이다. 이제 내가 탑승한 열차는 노선을 서른 바퀴째 순회하고 있다. 어머니는 서른이라는 내 나이를 듣곤 자못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내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가 서른이었고 어머니는 그보다 한 살 아래였으니. 어머니의 반응도 무리는 아니다. 나는 더러 지난 일들을 묵상하곤 한다. 분명 이제는 방향을 잡았고, 영민하되 조금은 원숙해졌다고 생각한다. 반면 몇 년 전과 비교하여, 도리어 시간을 역류한 부분도 상당수 공존한다. 결국 절댓값으로 타인은 물론 본인의 내면조차 가늠하긴 어려운 일이며, 밀어내는 척력과 당기는 중력의 크기에 따라 좌우될 터이다.


영롱하고 아련한 새벽. 귀를 공유하는 청취자들은 라디오 게시판에 활자를 빼곡히 수놓고 있다. 나도 그곳에 문장 조각 하나를 쏘아 올린다. 그들이 올올이 수놓은 문장과 DJ가 선곡한 재즈 음악은, 청신한 은하수 되어 머리 위로 폭포처럼 쏟아져 내린다. 지금 깨어있는 우리는 같은 심상을 공유하는, 유래 없이 포근한 새벽이다. 행여 혼미한 정신의 착란이든, 아니든.


2016년 4월 24일 오전 3시 55분, DJ가 마지막 말을 전한다. 나도 5초의 숫자를 세고 '글'을 쏘아 올리려고 한다. 5. 4. 3. 2. 1. 누군가에게 필시 가닿기를 희망하면서.


라디오에 흐르던 음악♪ (가수-음악)

* Zero 7 - In The Waiting 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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