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번째 편지 _ 2022. 다시 새해에
마롱님께
마롱님께, 라고 쓰지 못한 지 한 달이 지났네요. 마롱님께뿐만 아니라 통 무엇도 쓰지 못한 날들이 1월 내 이어졌습니다. 왜 그럴까. 이유를 찾아 두리번거리느라 한 달이 흘렀어요. 고맙게도 몇 번의 눈이 내렸고, 내린 눈이 쌓이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사이 소한도 대한도 다 지나버렸네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달력 앞에서 멍하니, 지금 내 안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들여다보는 날들이었고요. 마음속 소용돌이가 조금 가라앉으면 차차 이야기할 수 있겠지요. 저는 더딘 사람이니까요.
리스본 글쓰기 클럽에 매일 올려주신 ‘통영일기’ 잘 읽었어요. 고백하자면 요 며칠 저를 돌봐준 많은 힘이 통영일기에 있었답니다. 매일 아침 통영 바다와 책방과 그곳에서 만난 책과 추억이 될 게 뻔한 음식 이야기를 읽은 덕분에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는 마음을 데려와 출근을 하고 점심을 챙겨 먹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시시콜콜해 보이지만 결코 시시콜콜하지 않은 통영일기를, 마치 제게 보내는 응원인 것마냥 마음으로 꼭 쥐고 다녔지요. 편지를 빌려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글을 쓰지 못하는 대신 눈에, 마음에 많은 걸 담았어요. 코로나 확진자가 2만 명을 넘보는 때라 쫄보로 치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저로서는 큰 용기가 필요했는데요. 누군가 카톡으로 띄워준 ‘courage’에 걸음을 뗄 수 있었답니다. courage. 저에게 필요했던, 알고 있었으나 내지 못했던 마음이요.
지난 주말, 사울 레이터 사진전에 다녀왔어요. 남산은 무척이나 오랜만이었고 피크닉은 처음이었어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은 기우였네요. 관람객이 많아 시간을 오래 들여 보지 못했던 걸 빼면 아쉬운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몇몇 사진은 이미 유명해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직접 보니 처음 보는 것 같았어요. 너무 당연한 말인가요.
음악이든, 사진이든, 그림이든, 혹은 사람이든, 저는 제게 말을 걸어오는 것들을 편애하는데요. 사울 레이터의 사진들은 수다스럽지 않게 말을 건네왔어요. 슬라이드 필름을 만난 시간이 특히 좋았습니다. 그 어떤 영화보다 근사했어요. 좋다, 참 좋다. 속으로 얼마나 되뇌었는지 몰라요. 조명이 거의 없는 전시장 벽에 하나씩 둘씩 나타났다 사라지는 이야기들. 많이 걷고 많이 웃고. 분명 겨울바람이 불었는데 마음은 봄 같았던 토요일. 돌아오는 길 내내 마음이 좋았던 걸 보면 용기 내길 잘했지 싶습니다.
1월 22일은 박완서 작가님의 11주기였지요. 꼭 그래서는 아니었지만 덕수궁 현대미술관에서 <박수근 : 봄을 기다리는 나목>을 보았습니다. 거칠지만 분명 온기를 품은 그림들을 만나고 나오니 전시장 밖은 온통 환했어요. 봄이 지척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는데, 어쩐지 조금 눈물이 날 것도 같았지요. 좋은 건 늘 얼마간은 슬픈 것인가 생각하며 궁 안을 조금 걸었습니다. “나목에겐 아직 멀지만 봄에의 믿음이 있다.” <나목>(박완서)의 한 문장입니다. “봄에의 믿음”을 품고 남은 날들을 또 걸어보자고, 발끝에 힘을 줍니다. 멀어 보여도, 봄은 분명 올테니까요.
편지를 쓰는데 창 너머로 까치가 우네요. 오늘은 까치 설날. 늘 반가운 까치 소리가 유독 명랑합니다. 새해를 한 번 더 맞이하는 기분으로, 인사를 또 전해요. 새해 복 담뿍 받으세요, 마롱님. 무엇보다, 건강해요 우리.
2022년 다시 새해에, 물속깊이 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