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점 리스본 Jul 04. 2022

우정편지] 물속깊이에게 마롱으로부터

2022. 5. 12 


잘 놀고 계시나요. 초록이 진해졌습니다. 어제, 글쓰기 클럽 줌에서 읽은 물속깊이님 글 ‘초록 응원’이 아직도 생각나요. 꽤 오래전이지만, 물속깊이님 글 ‘쇄빙선’도 생각나는 밤이었어요. 시간이 아주 오래 흘러도 ‘쇄빙선’과 ‘초록 응원’은 기억할 것 같습니다. 다른 글도 좋은 글이 많지만요. 마음에 들어오는 글, 감사드립니다. 


글 이야기로 편지를 시작하는 이유는 “제게 글쓰기란 대체 뭘까요.”라는 문장 때문입니다. 지난 편지에서는 <딸기 따러 가자> 책 이야기와 청명 무렵, 폐교에서, 홀로, 환한 목련꽃 이야기도 인상 깊었지만, 글쓰기란 뭘까요 하는 물음은 저를 따라다녔어요. 그러게요, 글쓰기는 대체 뭐길래 우리를 애타게 하고 웃게 하고 종종거리게 할까요. 그래서 질문을 품고 <반 고흐, 영혼의 편지>를 읽고 있답니다. 글쓰기 클럽 숙제는 미뤄둔 채 말이죠. 도서관에 책 반납하러 가서는 미술 책장을 지나다가 우연히 <반 고흐의 정원>을 만난 것이 시작이었어요. 책을 빌려 와서 단박에 읽고는 고흐의 다른 책을 기웃거리다가 오래전에 읽고 판 <영혼의 편지>가 세트로 나온 것을 봤답니다. 어찌나 예쁘던지요. 읽고 싶은 마음보다 갖고 싶은 마음이 커서 당분간 책은 사지 않겠다는 다짐을 잊고 주문했어요. 아, 무언가를 끊는다는 것은 예를 들면 카페라테 같은 거요, 불가능한가 봅니다. 각각 초콜릿색과 남파랑 양장본 표지는 ‘VINCENT VAN GOGH’ 이름은 음각으로 쓰고 한쪽 면에 직사각형 창문을 내서 고흐 자화상과 해바라기 그림이 보이게 만들었어요. 책상과 마주하는 책장 제일 위는 김연수 작가님 칸인데, 그 아래 세 번째 칸에 앞면이 보이게 두었더니 책상에 앉을 때면 기분이 좋습니다. 그중 초콜릿색 책은 아침마다 데리고 나가요. 요가나 수영 끝나면, 체육관 뒤에 있는 공원 나무 그늘에서 고흐 편지를 읽어요. 아카시아 꽃향기, 단풍나무 씨방, 개구리 울음소리, 까치를 비롯한 새소리, 바람과 햇빛, 어린이집 어린이들, 참 크래커와 라테도 함께. 


고흐는 온종일 그림을 그리고 식사도 제대로 안 하면서 또 온종일 그림을 생각해요. 그에게 그림은 뭐였을까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답니다. 그런데, 편지를 참 잘 써요. 그가 훌륭한 화가가 된 것은 노력과 재능과 행운, 테오와 테오 부인 덕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편지 쓰기가 그러니까 글쓰기도 큰 역할을 했구나 싶습니다. 글을 쓰면서 자기 마음도 달래고 그림 그리는 과정도 돌아보고 자기 그림은 분명 좋은 그림이 될 거라는 희망도 품고 그러거든요. 글쓰기는 제게도 그래요. 글을 잘 쓰고 싶다는 바람은 별로 없어요. 제 마음을 살피고 또는 보듬고, 저와 주변을 받아들이는 힘이 생기기를 바랄 뿐이에요. 


물속깊이님이 <나는 첫 문장을 기다렸다>의 “홀로 단순한 시간에 오두막처럼 앉고” 문장 아래 썼다는 “나뭇가지에 걸린 독수리 연”과 “산책 나온 강아지 춉춉춉 신난 발소리”에서 머물렀어요. 지난겨울, 한강에 산책하러 나갔을 때 하늘과 강 사이를 오가며 회전을 두세 바퀴나 하는 연을 구경하고는 봄이 되면 한강에서 연날리기를 해야지 했거든요. 뭐, 코로나 때문에 까맣게 잊었지만요. 춉춉춉, 강아지 발소리는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니 저도 한번 귀 기울여보겠습니다. 


제 책에는 뭘 써놓았나 찾았더니 밑줄 친 곳은 많지만, 글은 딱 하나. 고흐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가족이나 조국은 현실보다 상상 속에서 더 매력적인지 모른다.” 옆에 있네요. “우리가 꾸리는 집구석은 우리가 나온 집구석이랑 같을까?”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큰딸이 건널목에서 친구에게 하는 말입니다. 좋은 대사도 많았는데, 듣자마자 마음이 철렁하며 쑥 들어왔어요. 집구석이라는 말, 참 함축적이지 않나요. 쓸쓸하기도 하지만요. 다음에는 좀 명랑한 문장을 써보겠습니다. 


오월 한가운데, 아카시아 향기는 여전히 동네에 가득해요. 조금 전 산책길에서는 화살나무 꽃을 만났어요. 가을에 붉은 단풍이 예쁜데, 자그마한 연두색 꽃은 앙증맞네요. 집에 오는 길에는 반달보다 조금 큰 달도 봤어요. 달을 보면 왠지 마음이 편안해요. 무사히 하루를 보내고 이제 발 닦고 자면 되겠다 같은 마음이랄까요. 물속깊이님도 편안한 밤 보내세요.


2022년 푸른 달 12일. 마롱 드림 ♣♣


매거진의 이전글 우정편지] 마롱님께 물속깊이로부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