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 6. 19
털털털 마을버스 이야기로 시작할까요. 저는 어제,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를 다시 봤어요. 좀 묵혔다가 보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그리 됐습니다. 물속깊이님의 “딱 그렇게 생긴 마을버스를 타고 경기도에서 서울로, 떠났다 돌아오기를 반복했었거든요.”에 끌렸을 지도요.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사람들은 자기와 상관있는 것에 먼저 끌리나 봐요. 노랑을 좋아하는 저는 마을버스 색깔이 흡족했고, 미정이가 집에서 나와 마을버스가 저쪽에서 오는 것을 힐끔 보고 뛰어가는 장면에서 저게 뛰어가서 탈 수 있는 거리인가, 궁금했거든요. 새우깡 한 봉지 챙겨서 드라마 보기 전에는 다시 보면 뭘 만날까 했는데, 막상 드라마 볼 때는 내 삶을 드라마로 만든다면 그래서 객관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뭐, 얼른 도리도리를 힘차게 했지만요.
어제 사진으로 보내드린 꽃 이름은 ‘좀작살나무’입니다. 꽃 생김새와 이름이 따로 논다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모습이 보일락 말락. 꽃은 예년보다 빨리 피었어요. 이제 시작이니 한동안 공원 입구를 은은하게 장식하겠지만, 꽃이 작아서 아는 사람 눈에만 보인답니다. 저는 어느 늦가을에 창덕궁 후원에서 좀작살나무를 처음 만났어요. 늦가을 숲에는 잎을 떨군 나무와 빨강 노랑 자주 낙엽이 대세인데 포도송이 미니어처 같은 반짝반짝 보라 열매가 있더라구요. 똑 따서 브로치로 쓰고 싶었는데, 이름을 알고 나서는 나무 몰래 웃었답니다. 좀작살나무는 꽃과 열매 중 어느 것이 더 예쁘냐고 묻는다면 열매라고 할게요. 꽃과 열매 중 열매가 더 예쁜 것에는 ‘남천’도 있지요. 남천도 빨강 열매가 한겨울 눈과 함께하면 그림이니까요.
얼마 전에는 영화 보면서 늙나 보다고 혼잣말했습니다. 그날은 ‘Finding You’를 봤는데 지난번에 본 영화 ‘나의 특별한 사랑 이야기’와 ‘토스카나’와 비슷한 점이 생각나서요. ‘나의 특별한 사랑 이야기’는 뉴욕이 배경이지만, 다른 둘은 저 푸른 초원 위로 여행 가고 싶을 만큼 자연이 아름다운 곳. 그래서인지 이야기가 쫀쫀하지 않아도 아, 풍경만 봐도 좋다 했어요. 세 영화는 우여곡절은 아니어도 돌고 돌아 결국은 내 짝을 만나는 공통점이 있는데 단짝을 만나기란 진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확인했어요. 지리산 천왕봉에서 일출을 보려면 삼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는 데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고 믿는 사람을 만나려면 몇 대가 덕을 쌓아야 할까요. 아니, 잠깐 뒤를 돌아볼 게요. 영화 속 커플들은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행복하게 해로할 것 같지만, 현실은 다르잖아요. 그렇게 만났더라도 두 사람의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고 행운도 한 스푼 정도 있어야 하고요. 누군 영화에서라도 잠깐이나마 반짝거리고 싶은데 재 뿌리는 것이냐고 타박 놓을 이야기를 했네요, 인정, 죄송합니다. 낭만을 채울지, 근거를 보완할지는 차차 궁리해보겠습니다. 아, 영화에는 유명 배우가 없었는데 그 때문인지 괴리감은 별로 없었어요.
안부를 묻지도 않고 이야기가 길었습니다. 안부는 예의지만, 상대방 컨디션을 모르는 채로 물을 때면 예의가 아닌 것도 같습니다.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할 때는 안녕한 것을 확인하는 느낌인데 안녕하지 않다면 그건 또 별로잖아요. 어쨌든 저는 물속깊이님이 안녕하다면 계속 안녕하기를 그렇지 않다면 곧 안녕해지기를 바랍니다. 지난번에 나사가 하나 빠진 것 같다고 하셨는데 지금은 괜찮으신가요. 나사 하나는, 어디에 방점을 맞춰야 할까요. 나사일까요. 하나일까요. 나사라면 또 사이즈 문제를 염두에 두어야 하고, 하나라도 별거 아니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때론 하나 덕분에 살고 하나 때문에 죽기도 하는데. 저는 걷다 쉬기를 반복하고 있어요. 운동, 글쓰기, 책읽기, 외출을 마음껏 하고 싶은데 그러다 보면 몸이 브레이크를 걸어서요. 코로나 확진 이후 개운하지 않은 건지 소식을 해서 그런지 노화인지 제가 보기에는 셋 모두 같지만, 몸이 쉬어라 하고 명을 내리면 거수경례하듯 명령을 받잡고 있어요. 좀 슬프지만, 걷기와 쉬기 사이 기간은 길어지고 회복하는 시간은 짧아져서 그걸 희망으로 삼는답니다.
내일모레는 하지 그리고 장마철. 비가 워낙 내리지 않아서 또는 비 오는 날에 외출할 일이 없어서 사울 레이터 빨강 우산은 아직 비닐도 벗기지 않았는데 7월에는 우산 때문이라도 약속을 만들어야겠어요. 엊그제 서점 리스본 북 콘서트는 잘 다녀오셨나요. 지난번 <감정 어휘> 북 콘서트처럼 좋았나요. 2층에 향기 좋았던 꽃은 여전한가요. 그날 작가님을 중심으로 오롱조롱 모인 분들도 생각나요. 만남은 만남만으로는 끝나지 않는 무언가가 있네요. 함께 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무엇들. 물속깊이님과 편지 쓰기도 마찬가지겠죠. 그러니, 저는, 또, 쓰겠습니다.
2022년 누리달 19일 마롱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