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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이 글 말이에요. 저도 잘 모르겠거든요.

by 달숲

쓰고 싶은 글과 실제로 쓴 글에는 간극이 존재한다. 평화롭게 들판을 달리는 기차처럼 평온하고 일정하게 생각이 이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생각은 예측불허한 나비의 움직임처럼 이곳에서 반짝 저기에서 번쩍. 그러다 이내 사라지고 만다. 그럼에도 쓰기는 하는데 말이다. 오늘따라 글의 맛이, 참 쓰다.


오늘도 분명 '그의 숨결에서 죽음의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라는 첫 줄로 괜찮은 단편 소설을 하나 뽑아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심지어는 점심을 먹으러 가는 분주한 발걸음 속에 희망이 새싹처럼 솟았는데 말이다. 식사를 마치자마자 몸뚱이는 축 늘어졌고, 바쁜 정신만 홀로 사라진 단어의 뒤꽁무니를 하염없이 쫓고 있었다. 안개가 내려앉은 머릿속을 애타게 헤매다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결국 내가 쓰게 되는 것은 늘 그렇듯 우울하고 무거운 먹구름 같은 글뿐이다. 오늘 떠오른 그 이야기, 다듬으면 분명 꽤 괜찮은 글이 되었을 텐데. 운이 좋으면 다시 또 나를 찾아오겠지. 아니면 잠재의식 속에서 멋진 스토리로 숙성되고 있는 중일지도 모르고. 이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으므로 최대한 좋게 생각한다. 인생은 곳곳에 뾰족한 송곳을 숨겨놓고 자비 없이 나를 찌를 테니. 그러니 생각이라도 둥글게 둥글게.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는가.


어쩌면 신이 있다면 말이다. 이미 필요한 모든 것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그것도 모르고 애먼 곳을 들쑤시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겹겹이 칠한 유화 작품처럼 생각이 생각을 덮고. 그렇게 겹겹이 쌓인 생각은 원래 고민이 뭐였는지도 잊게 할 만큼 엄청난 걱정 덩어리가 되어버려 한입에 나를 삼켜버린다. 1년 전만 해도 당시에 왜 힘겨웠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걱정은 파도가 휩쓸고 간 모래 위 글씨처럼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법이다. 그런데 오늘 걱정거리만큼은 8톤 트럭보다 무거운 법이어서 야단을 떨고야 만다. 그러니 인생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멀리 볼 필요도 없다. 전적으로 나 때문이다.


글처럼, 살고 싶은 인생과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삶에는 늘 간극이 존재했다. 벌어진 틈을 견디지 못하는 것 언제나 내 몫이었고,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어가고 싶어 무진 애를 쓰며 살아왔다. 곧 있으면 마흔. 여전히 불안하고 한 치 앞을 모르겠다. 사흘은 괜찮다가 나흘은 버림받은 강아지처럼 쓸쓸해지곤 한다. 구멍이 도무지 채워지지 않는 나날. 그것들을 꽉꽉 채우려 참 많이도 노력했다.


그러니까 지금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일까. 목적이 가득한 세상 속 나 역시 쓸모가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뭐 그런 이야기일까. 그렇다면 이 글도 단어 하나하나에 목적의식을 갖고 써야 하지 않을까. 이런 류의 생각이 무의식을 지배하고 있다. 하지만 애초에 하고 싶은 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쓰는 게 좋다. 즐겁다. 더듬더듬 어설프게나마 단어를 그러모아 문단을 만들고, 흐르는 강처럼 생각을 흘려보내는 걸 좋아할 뿐이다.


글처럼 인간의 존재 역시 쓸모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하는 것 아닐까. 필요와 용도에 따라 쓰여지는 인간이 아닌 자신의 즐거움을 좇는 인생을 저마다 살아가면 좋을 텐데. 무용하므로 자유롭고, 생긴 대로 사는 자연 그대로의 삶. 그런 삶은 꿈만 같아서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걸까.


그럼에도 이제는 뭐랄까. 목표를 내려놓고 살고 싶다. 뭐 엄청나게 거창한 것도 없었다만, 자잘한 목표가 재갈이 되고 올가미가 되어 나를 구속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꿈, 소망, 성취와 같은 것들은 기운을 주면서도 동시에 사람을 허탈하게 만들고 종국에는 무너뜨리기도 하니까. 그래서 그냥 하루하루 별 탈 없이 숨 쉬는 것에 감사하며 살고 싶다. 나는 본디 욕심이 많은 사람이어서, 이렇게 말해놓고는 내일 목표를 잔뜩 세울 것 같기는 하지만.


그나저나 이렇게 제멋대로인 글을 읽고 난 다음 저자의 의도를 간파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무진 치켜세우고 싶다. 일단 써놓긴 했지만 나로서도 무슨 말을 하고픈지 모르겠는 글이 되어버려 이 글을 어찌해야 하나 다소 고민스럽다. 처치 곤란의 글은 매번 생겨나는 법이다. 곤란하다고 써놓긴 했지만 내일이면 부끄러워할 이 글을 오늘의 내가 용감하게 발행할 것이다.


미숙한 생각을 호흡하는 나의 글,

이것이 나를 살린다.

활자가 되어 나를 다독여준다.


타자를 타닥타닥 치며 이미 충분한 위로를 받았다.


그러니 오십이 될 때까지,

환갑을 넘어 죽는 날까지.


인생이 나를 흔드는 지점마다

우직하게 앉아 글을 쓸 것이다.


어느 초라한 귀퉁이에서

누가 보든 말든 작은 들꽃이 어여삐 피어있는 것처럼.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을지언정. 있는 그대로의 생각을 이곳에서 진득하게 피워보련다. 어쩌면 오늘의 글이 지나가는 나그네의 마음을 두드릴지 그 누가 알겠는가.


그러니 오늘도 나는 쓰는 사람이 되어

쓸 수밖에 없는 나만의 글을 써 내려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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