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지향점이 같지 않다면
이제는 갈라서야겠지요.
브런치에는 구독 기능이 있다. 바쁜 현대 사회 속, 나의 글을 읽어주는 구독자가 생긴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 얼마나 멋진 일이란 말인가! 초반에는 구독자가 한 명 늘고 줄어드는 것에 안달하며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다.
- 왜 구독을 취소하셨지?
- 오늘 발행한 글이 거슬렸나?
- 내 글이 별로인가?
끝없이 쏟아지는 질문에 대답해 줄 사람은 떠난 뒤였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지향하는 바가 달라졌으니
각자 갈 길을 간 것뿐이다.
2019년에 술을 끊었다.
술을 끊었다고 말하면 대부분 (특히 한국 사람들) 화들짝 놀라며 우려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그 좋은 술을 왜 안 마시는지 궁금한 거다. 기어코 합당한 이유를 들어야겠다며 끈질기게 심문을 하는데, 명상을 시작하며 술을 끊었다 하면 더더욱 이상한 눈길을 보낸다.
의심의 눈초리도 불편하고 이야기를 길게 끌고 싶지 않아 몸이 안 좋아 그렇게 되었다고 말하면 쉽게 납득을 한다. 작가 사노 요코가 말했던가. 마음이 아파서 신경정신과에 다닌다고 말하면 배가 불러서 그렇다느니, 나약해서 그렇다느니 온갖 이유를 들먹이며 딴지를 건다고. 그러다 어느 날 암에 걸렸다고 하니 사람들이 지나치게 친절해졌다고 한다. 당시 몸이 안 좋기는 했으나 중병에 걸린 건 아니었고 몸보다는 정신 건강 쪽이 더 심각한 상태였지만 '제가 내면이 피폐해서요.'라고 말했더라면 의지가 없어서 그런 거라며 일장 연설을 들었을 것이다. 진실해지는 것이 이리도 어려운 일이 되어서야.
어쨌든 술을 끊자 자연스레 술친구도 정리가 되었다. 술을 왜 안 마시냐며 모종의 압박을 주던 친구들과는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는다. 당시에는 섭섭하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더할 나위 없이 자연스러운 이별이었다.
앞으로 살아가며 삶은 계속해서 변화할 테고, 그 길목마다 이별과 만남이 있을 것이다. 오래된 구독자가 떠나가고 새로운 인연이 나의 글을 읽어주는 것처럼 만물이 결국엔 돌고 도는 것이다.
그러니 창밖에 계절이 변하는 것을 아쉬워하기보다는 지금 내리는 비를, 세상을 흔드는 바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자.
말은 이렇게 하지만 요 며칠 매듭짓지 못한 지난날의 사건이 떠올라서 울그락불그락한 시간을 보냈다. 내 안에 쌓인 묵은 감정들이 오르락내리락하며 하나 둘, 올라오는 과정이리라.
그대와 나의 지향점이 더 이상 같지 않다면,
헤어지는 수밖에요.
해묵은 감정은
시간이 데려가겠지요.
삐죽빼죽 미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다 보면
사라지고 또 사라져서
무(無)의 상태가 될 거예요.
그때가 오면
가벼운 마음으로
같은 곳을 바라보는 고운 사람을 만나
살아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