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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날덕 Feb 03. 2024

3. 곰에게 튀긴 빵이라니

쇤브룬 동물원의 사자 -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쇤브룬 동물원은 왕실공원 안에 있다. 본래는 합스부르크가의 왕족과 귀족이 즐기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창설이 1752년이니까 마리 앙투아네트도 소녀시절에 이곳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냈을지 모른다.

안녕하세요 무라카미 씨! 그러고 보니 저도 쇤부른 동물원에 간 적이 있습니다.


2007년이니까 대학교 2학년 때네요. 친구와 여름방학을 맞아 유럽으로 여행을 갔습니다. 어리고 무계획했던 터라 - 그건 지금도 크게 다른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 유럽 이 도시 저 도시를 내키는 대로 돌다 빈에 도착했습니다. 빈에서 뭘 하겠다는 계획도 특별히 없었습니다. 당시 논리/과학철학에 미쳐 있던 저는 논리실증주의의 본산인 빈 대학을 보고 비엔나 커피를 마시겠다는 게 유일한 목표였죠. 그렇게 빈에서 며칠 지내다 보니 계획해 둔 행선지도 없고 해서 남들 다 간다는 쇤브룬 궁전을 가보기로 했던 겁니다.


과연 제가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역에서 내려 쇤브룬 궁전을 가던 길 바닥에 떨어져 있던 이름모를 열매들이 생각납니다. 서양식으로 예쁘게 꾸며져 있던 정원들도, 텔레토비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던 잔디 깔린 언덕도 떠오르네요. 하지만 궁전의 정원이란 스물 한 살짜리 남자애들에겐 딱히 흥미로운 공간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뭐 없나 둘러보다 보니 오호라, 동물원이 있네요. 그렇게 타당하고 정합적인 논리의 귀결로써 쇤브룬 동물원에 들어가게 된 겁니다.


햇살 좋은 상쾌한 날이었지만 동물원은 의외로 한산했습니다. 아마 평일이어서 그랬던 게 아닐까요. 동물들도 적당히 나른하게 한 때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판다 우리에서는 희고 검은 거대한 털뭉치가 구석에 놓여 있는 걸 보게 되었구요, 코알라 우리에서는 유칼립투스 나무에 오동통한 뒷태가 몽실몽실 열려 있는 걸 구경할 수 있었죠. 레서판다도, 치타도, 북극곰도 저마다의 자리에서 멍하니 쉬고(근무하고?) 있었습니다.


희고 검은 털뭉치


딱히 뭘 봐야겠다는 생각 없이 두리번거리며 돌아다니던 저희는 곰 우리 앞에 다다랐습니다. 곰보다 더 또렷하게 기억나는 건 곰 우리 앞에서 팔던 튀김빵이었습니다. 배가 고팠거든요. 한 달간의 유럽 여행 예산이 비행기 포함 300만원이었던 덕분에 여행 내내 굶주리며 다녔던지라, 저렴한 가격에 팔고 있는 튀김빵을 보자 눈이 뒤집히고 말았습니다. 갓 튀겨 나온 뜨거운 빵과 솔솔 풍겨오는 기름 냄새는 정말 아찔했습니다. 한 입 베어물자 파삭한 식감과 함께 짭쪼롬한 맛이 입안을 감쌌죠. 그렇게 허겁지겁 빵을 다 먹고 났는데 말입니다, 이상하게도 아무도 그 빵을 먹지 않고 있는 거에요. 흐음 이상하다 왜 아무도 먹고 있지 않... 어 이거 먹는 게 아닌가? 설마 연못 앞 잉어밥같은 건가??

쯔쯔 한심한 녀석들 같으니 - 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오랑우탄


여행에서 돌아온 이후에도 둘이 이야기해봤지만 마땅한 결론은 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겠죠. 곰에게 튀긴 빵이라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동물원의 VIP로 수많은 팬들을 거느리고 철저한 관리를 받으시는 분들일텐데, 저런 소금 뿌린 밀가루 튀김 따위로 혈중 콜레스테롤을 올리게 만들 리가 없겠죠. 근데 그럼 그걸 먹은 우린...


그나저나 쇤브룬 동물원의 실내 펭귄관 안에는 천장을 빙 둘러 빼곡하게 다양한 펭귄의 교미 방법을 자세히도 정리해 두었더군요. 펭귄 입장에선 자기 집 벽화로 포르노그라피가 가득한 셈인데, 도대체 누구의 아이디어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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