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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날덕 Feb 14. 2024

8. 유명인과 같은 이름은 불편해

타임머신 - <밤의 거미원숭이>


오늘은 미즈마루 화백의 이 그림으로 시작합니다.  출처: 타임머신 - <밤의 거미원숭이>, p35


안녕하세요 무라카미 씨! 무심코 앉아 무라카미 씨의 초단편소설 모음집 <밤의 거미원숭이>를 보던 중이었습니다. 몇 번이고 읽어도 즐거워 - 하는 기분으로 페이지를 후르륵 후르륵 넘기고 있는데, 문득 저 삽화가 눈에 확 뜨이지 뭡니까. 사실 저는 안자이 미즈마루 화백의 팬으로, 그가 그린 일러스트를 보고 있자면 늘 콜라를 마신 듯 상쾌했는데 이번엔 뭔가 달랐습니다. 콜라에 넣어둔 땅콩이 목에 걸린 듯한 기분이었달까요. 


도대체 뭐지 하면서 그림을 다시 본 순간, 무릎을 탁 쳤습니다. 아하, 철자로구나! 존 행콕 타워의 존이 JOHN이 아니라 JHON으로 쓰여 있었던 겁니다. 아마 미즈마루 화백은 분명 JH까지 쓰고 앗 실수인가 싶었다가 에이 뭐 어때 이건 글이 아니라 그림이라고! 하면서 쿨하게 마음을 다해 대충 그리고는 초밥에 맥주를 마시러 가신 게 아닐까 - 뭐 그런 생각을 하면서 페이지를 넘기려고 했습니다. 

넘기려고

했는데

그런데도 뭔가 걸리는 게 있더군요. 


존 행콕 타워, 존 행콕 타워..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더란 말입니다. 심지어 가본 것도 같...까지 생각하자 떠올랐습니다. 몇 년 전, 시카고에 갔을 때 존 행콕 타워 전망대 바에 올라가 야경을 봤던 기억이요. 그때 갔던 거기구나 싶었죠. 그런데 그러고 보니 저 건물 이름 아래 소재지도 이상하단 말입니다. BOSTON, MASS라니, 메사추세츠 보스턴이라는 거잖아요. 제가 갔던 거기는 시카고였는데 말입니다. 


JOHN이 JHON이 된 것쯤이야 뭐 간단한 실수겠거니 싶었습니다만, 소재지마저 잘못되었다는 건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미즈마루 화백이라면 분명히 정리 안 된 본인 책상을 훑어보다 대충 이거다 싶은 오브제 중 하나를 골라서 그렸을 겁니다. 뭐 애초에 코타쯔를 타임머신이라고 들고 가는 수도 수리공 이야기에 넣을 삽화니까요. 그렇다면 저 스노우볼은 정말 미즈마루 화백의 눈앞에 있었을 테고, 다시 말해 저 존 행콕 타워는 보스턴에 실재할 게 분명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미국에는 존 행콕 "타워"(이후 타워)와 존 행콕 "센터"(이후 센터)가 있()던 것이었습니다. 센터는 일리노이 시카고에, 타워는 메사추세츠 보스턴에 있()더군요. 둘 모두 해당 지역의 마천루이자 독특한 외관으로 유명했고, 존 행콕이라는 미국의 보험업체가 입주하면서 이름을 붙인 거였습니다. 심지어 이젠 두 건물 모두에서 존 행콕이 나와, 건물명에서 존 행콕이라는 이름을 떼게 된 것도 같네요.


일단 사진부터 한번 보시죠.


보스턴의 존 행콕 타워(John Hancock Tower)입니다. 이렇게 보니 저 스노우볼이 극사실주의적이군요.


이쪽이 시카고의 존 행콕 센터(John Hancock Center)입니다. 제가 가본 곳은 여기였던 겁니다.


사진으로 보면 완전히 다른 건물이란 걸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타워는 미끈한 유리벽에 쭉 떨어진 옆구리 세로 라인이 90년대 캘빈 클라인의 청바지 광고를 떠올리게 합니다. 이에 반해 센터는 투박하고 거친 외벽에, X자의 외골조가 전면에 노출된 구조입니다. 게다가 저 옥상에 세워진 두 개의 첨탑은 이 빌딩의 아방가르드 한 면모를 더더욱 강화시키는군요. 일단 내구도 하나는 확실해 보입니다. 그래서일까요, 타워는 2019년 영화 고질라에서 고질라와 킹 기도라의 싸움에 등이 터진 적이 있습니다만 센터는 어디에서도 부서지는 모습이 나온 적이 없습니다. 타워의 경우 실제로 설계상 결함으로 인해 강풍에 외벽 유리가 떨어질 수 있어,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이면 경찰이 주변 도로를 막았다고 합니다. 타워 고층 거주자들의 경우에는 바람에 건물이 흔들려 멀미까지 겪었다고 하는군요. 거 렌트비가 얼만데 멀미가 웬 말이오


아무튼 이 두 건물을 직접 본 사람들이라면 헷갈리지 않겠지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두 건물을 착각한다고 합니다. 일단 지명도에서 센터가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죠. 그래서 구글에 존 행콕 타워를 검색하더라도 검색 결과로는 존 행콕 센터 관련 문서가 주르르륵 나옵니다. 심지어 어떤 사이트에서는 타워 세부 사항 페이지에 센터 설명을 달아둔 곳도 있네요. 마치 김정민을 네이버에서 검색하면 가수 김정민부터 나오는 것처럼 말입니다. 역시 유명인과 이름이 같다는 건 불편한 일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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