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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날덕 Feb 28. 2024

10. 칵테일에 랍스터를 꽂는 건 선 넘지

하늘 위의 블러디 메리 - <무라카미 라디오>


국제선 비행기를 타면 식사 전에 '음료수는 뭘 드시겠어요?'하고 묻는다. 그럴 때 당신은 무엇을 마시는지? 나는 대체로 블러디 메리를 주문한다. 블러디 메리는 당신도 아실 것이다. 톨 글라스에 얼음을 넣고, 보드카와 토마토 주스를 섞어서 거기에 한 방울 리 앤드 헤린 소스를 떨어뜨린 후에 레몬을 가볍게 짜 넣는다.


안녕하세요 무라카미 씨! 지난번에 이어서 오늘도 칵테일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사실 어렸을 때 무라카미 씨의 이 글을 읽고는 나중에 국제선을 타면 꼭 블러디 메리를 주문해 봐야지, 하고 결심했었습니다. 그러고는 난생처음 탄 파리행 비행기에서 블러디 메리를 시키려고 했습니다만 - 이걸 시켜도 되는지 전혀 모르겠더군요. 스튜어디스 분들께서 메뉴판을 들고 다니시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제게 음료를 권한 건 프랑스인 남성 스튜어디스셨는데, 화이트 와인을 달라고 했더니 "아우좌유?" 라고 하시는 게 아니겠어요? 이게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아서 Pardon?이라고 세 번쯤 되물으니 옆에 있던 친구가 조용히 알려주더군요. "하우 올드 아 유?"라고요. 역시 프랑스인의 영어 발음이란 알아듣기 쉽지 않았습니다. 뭐 한국인의 영어 발음도 알아듣기 쉽진 않겠지만요.



아무튼 실제로 블러디 메리를 비행기에서 마셔 본 건 좀 더 뒤의 일이었습니다. 시애틀로 출장 가는 비행기에서 블러디 메리를 주문해 보았지요. 이번에는 그새 팍삭 삭은지라 제게 나이도 묻지 않았고, 다행히 대한항공을 탄 덕분에 한국어로 부탁드릴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보드카에 토마토 주스를 탄 음료가 블러디 메리랍시고 등장했던 것이었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블러디 메리의 핵심은 타바스코 소스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저로서는 그걸 차마 블러디 메리라고 부를 수는 없더군요. 그냥 술맛 나는 토마토 주스일 뿐이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비행기에서 블러디 메리를 주문해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대한항공에서 내어주는 블러디 메리의 표준 레시피대로 만들어진 거라면 확실히 무라카미 씨가 좋아할 것 같진 않네요. 하지만 그날 서빙해 주신 승무원분께서 피로와 격무에 시달리신 나머지 타바스코를 넣는 것을 깜빡하셨을 수도 있으니, 혹시 대한항공을 이용하시면서 맛있는 블러디 메리를 드신 적이 있다면 제게 제보 부탁드립니다. 다음 출장 때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문득 궁금해진 게 있었습니다. 위의 인용구에 적혀 있는 대로, 무라카미 씨는 타바스코 소스가 아닌 "리 앤드 헤린" 소스를 언급했단 말입니다. 리 앤드 헤린이 뭐지? 타바스코 소스의 브랜드인가? 싶어 구글링을 해 보았습니다만 어디에도 "리 앤드 헤린(Lee and Herrin)" 소스라는 건 없더군요. 대신 리 앤드 헤링(Lee and Herring)이라는 영국 스탠드업 코미디 듀오만 검색될 뿐이었습니다.


바로 이분들이 리 씨와 헤링 씨입니다. 블러디 메리에 들어가기엔 좀 크신 편입니다.출처: https://www.theguardian.com/stage/2008/nov/18/co


뭔가 이상하다 싶어 검색어를 조금 바꿔 lea and 라고 구글에 입력하자, 바로 Lea and Perrins sauce라는 검색어가 자동으로 완성되더군요. 아 이거였구나, 리 앤드 헤린이 아니라 페린이었구나. 아마 역자께서 피로와 격무에 시달리신 나머지 ぺ를 へ로 잘못 보신 게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덕분에 저 같은 사람은 저 덩치 큰 두 남자분이 블러디 메리에 들어가는 상상을 하게 되었단 말이죠. 어떻게 넣느냐 -는 데에는 상당히 다양한 옵션이 있겠습니다만 딱히 유쾌한 이야기는 아닐 것 같으므로 패스하겠습니다.



이 리 앤드 페린이라는 브랜드는 우스터 소스를 최초로 만든 존 휠리 리(John Wheeley Lea)와 윌리엄 헨리 페린스(William Henry Perrins)의 이름을 딴 거라고 합니다. 네, 그 돈까스에 찍어 먹는 그 소스 그거죠. 실제로 우스터 소스(Worcester sauce)는 타마린드를 비롯해 상당히 잡다한 재료를 때려 넣고 숙성시켜 만드는 소스로, 이 두 약사가 만든 오리지널 레시피의 경우 기업 기밀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하네요. 여기에는 심지어 앤초비도 들어간다고 하니 이 오리지널 레시피의 맛이 궁금하긴 합니다. 잠깐, 그러고 보니 여기도 남자 둘이네요..?



그렇습니다. 리 앤드 페린스입니다. The Original & Genuine이라니 이 친구들도 원조 참 좋아하는군요.


아무튼 다시 블러디 메리로 돌아와 보면, 이 우스터 소스가 블러디 메리에 들어가는지 저는 전혀 몰랐었습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토마토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그 미묘한 감칠맛msg이 바로 우스터 소스였겠구나 싶습니다. IBA의 공식 레시피에는 우스터 소스 2 대시가 기본이고, 오히려 타바스코는 기호에 맞게 첨가라고 되어 있더군요. 제 기호에는 타바스코를 왕창 넣어서 칼칼하게 한 뒤 샐러리를 우적우적 씹으면서 마시는 게 딱입니다만, 역시 무라카미 씨가 좋아하실 것 같진 않네요.



그나저나 이 블러디 메리는 이름부터 흥미진진해서인지 상당한 별종들을 발견할 수 있더군요. 나무위키에 '궁극의 블러디 메리'가 언급된 것이 있어 구글에 the ultimate bloody mary를 검색해 보았더니 온갖 괴상한 작품들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뭐, 말마따나 저거 한 잔 마시면 궁극적으로 배가 차긴 하겠습니다만, 아니 그래도 게랑 랍스터는 좀 선 넘는 거 아닙니까...


다시 생각해 보니 어쩌면 맛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어차피 굴에도 레몬즙이랑 타바스코 뿌려 먹지 않겠습니까. 그게 그거죠 뭐. 출처 - The Blind Pelican Seafood


그나저나 위의 사진을 보니 배도 고파지고 술도 땡기네요. 이놈의 헬리코박터 제균치료만 끝나면 생굴에 블러디 메리를 먹고야 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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