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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날덕 Apr 16. 2024

12. 12의 비밀

12/12 아니고 걍 12 말입니다

안녕하세요 무라카미 씨,

12번째 글을 쓰기까지 꼬박 한 달 하고도 2주가 더 걸렸네요. 맞습니다. 이 글이 열두 번째 글이기 때문입니다. 아마 잘 아시겠지만 12라는 수는 매우 독특하고도 놀라운 수입니다. 일 년은 열두 달이고, 하루는 두 번의 12시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헤라클레스는 열두 가지 노역을 완수해야 불멸자가 될 수 있었고, 곤륜산의 12선인, 아더왕을 보좌하는 열두 명의 원탁의 기사, 동양에는 12 지신, 서양에는 황도 12궁, 석가모니에겐 12 연가가, 예수에겐 12 사도가 있습니다.

왜 12일까요? 왜 10도 아니고 16도 아니고 12여야 했던 걸까요? 자연수에서 가장 작은 피타고라스 세 쌍({3,4,5}) 의 합이어서? 가장 작은 과잉수여서? 그것도 아니면 4 이하의 모든 자연수의 최소공배수여서? 정확한 건 아무도 모를 겁니다. 하지만 이쯤 되면 심상치 않다는 걸 느끼시겠죠? 그렇습니다. 수비학에 따르면 12는 완벽해야 하는 수입니다. 12는 3과 4의 곱인데 3은 신, 4는 인간을 의미합니다. 즉, 신과 인간의 조화, 이 세상 자체를 뜻하는 거죠. 세상을 담은 수라니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이 완벽한 수는 비단 신화와 전통, 사상과 수비학의 체계에서만 머물지 않습니다. 현대에도 이 12라는 수는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연필은 기본적으로 열두 개를 한 다스로 패키징 합니다. 12 게이지는 산탄총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구경입니다. 1피트는 12인치고, 1실링은 12펜스입니다. 유럽연합의 국기는 열두 개의 금색 별을 품고 있습니다. 색상환은 열두 색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렇게 12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속성, 아찔할 정도로 다채로운 콘텍스트, 그리고 무엇보다 그 자체가 상징하는 완벽함은 제게 무서운 경외를 품게 하기 충분했습니다. 그래서 지난 11번째 글을 쓰고 난 이후부터 12에 집착하게 되었죠. 운동화를 신을 때도 양쪽의 끈 구멍 열두 개를 써서 끈을 묶고, 밥도 열두 번씩 꼭꼭 씹어 먹고 있습니다. 한 달에 웨이트트레이닝도 열두 번 합니다.

이렇게 생활 속 곳곳에서 만나는 12를 지켜보다 깨닫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12는 언제나 거기에 있고(있어왔고), 우리는 이 수를 발견하고 있을 뿐입니다. 세상의 시작과 함께, 최초의 지적 생명체보다도 한참 전부터 12는 존재해 왔습니다. 꼭 12여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1일 수도, 2일 수도, 3이나 4, 6 또는 13이어도 상관없습니다. 발명된 것은 수가 아니라 인간의 인식이니까요. 12라고 쓰고 13으로 읽는들 무슨 문제겠습니까. 공통된 인식, 그리고 그 인식을 거래하는 통일된 양식으로서의 구문론과 프로토콜만 건재하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걸요. 결국 중요한 것은 의지일 뿐입니다. 12번째 글을 쓰겠다는 의지, 그리고 챈들러 방식.

..이라고 길게길게 주저리주저리 12번째 글이 늦어진 변명을 해 봅니다. 실은 걍 월요일 저녁마다 약속이 생겨 술을 퍼먹다 미루고 미뤄 여기까지 온 겁니다. 넵 반성하고 있슴다. 부디 13번째 글은 너무 늦지 않게 쓰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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