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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야 Jul 25. 2018

인랑 : 90년대 애니메이션의 실사화

영화 <인랑> 후기

*이 글은 약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상영 중인 영화에 대한 리뷰라 줄거리 설명 없이 가벼운 사담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화려한 캐스팅에 김지운 감독이라니 이 영화를 안 볼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굉장히 불친절하고 촌스럽다. 배경은 남북한이 통일준비 5개년 계획을 발표한 2029년이다. 원작에서는 60년대의 일본이라는 설정이기에 납득이 갔지만, 2029년에 저런 프로텍트 기어라니. 아이언맨이 값비싼 수트를 입고 미국 전역에서 사람들을 구하고 다니는 시대에 이게 무슨 시대 역행이란 말인가. 등장인물의 옷차림이나 거리 배경들도 도저히 미래라고는 볼 수 없다. 정말 90년대의 애니메이션을 그대로 가져왔다. (심지어 원작도 60년대라고 했는데!)


 - 배우 인터뷰에서 영화는 2013년에 제작하려고 했었고, 시대적 배경도 다양하게 생각해 보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약 5년 사이에 과학의 눈부신 발전이 있었던 것인지...? 빨리 다른 인터뷰들이 보고 싶다.     


통일준비를 선포한 후, 한국은 혼란에 빠진다. 이를 반대하는 세력인 ‘섹트’가 출현하고, 그들에 맞서는 경찰조직 특기대와 공안부의 대립이라는 설정이다. 배경에 대한 설명이 영화 초반에 장황하게 늘어진다. 그리고 등장하는 화염병들과 폭탄 테러... 영화 시작 시간에 집중하지 못하거나 조금 늦게 도착한 사람이라면 영화를 보는 내내 이해가 잘 되지 않을 것 같다.      



대체 인랑이 뭔데?

영화가 끝나자마자 친구에게 이 말부터 던졌다. 특기대 훈련소장 장진태(정우성)는 인랑을 이렇게 설명한다.      

우린 늑대의 탈을 쓴 인간이 아니라, 인간의 탈을 쓴 늑대다.      


이 멋진 대사는 제대로 설명되지 않아 그래서 그게 대체 뭔데, 라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늑대로 불린 인간병기’치고 주인공 임중경(강동원)은 굉장히 감정에 치우친 인물이다. 예전 임무에서 죄 없는 여고생들을 사살했던 충격을 안고 있어 그렇다지만 저 정도 감정적인 성격이면 이미 업무에서 배제되었어야 하는 수준이다. 물론 장진태가 계속해서 그를 변호하지만 글쎄. 프로텍트 기어를 입으면 누구도 인랑을 건드릴 수 없는데 굳이 임중경이 있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능력 있다는 건 알겠는데 마음이 너무나도 약한 것이 치명적인 단점 아닌가. 심지어 같은 사건을 겪은 한상우(김무열)는 공안부가 되었는데 임중경은 남아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지만 FM인간이라 특기대를 벗어날 수 없는 설정...?


영화의 마지막에 임중경은 이윤희에게 자신이 인랑이라는 것을 밝히고 공안부 사람들과 싸운다. 싸운다기 보다는 1대 다수로 그들을 죽이며 프로텍트 기어의 성능을 잘 보여준다. 저 정도 기능이면 영화 초반에 섹트를 죽이기 위해 하수구로 갔을 때도 인랑 한 명만 가도 될 것 같은데. 단체로 우루루 몰려갔던 것은 영화 초반에 기어의 성능을 자랑하기 위함일까. 


2029년에 저런 무거운 프로텍트 기어를 입고 총알을 맞을 때마다 들리는 깡통소리는 정말이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빨간망토 소녀와 늑대

영화 전반에 동화 ‘빨간 모자’ 이야기가 비유적으로 사용된다. 이윤희(한효주)는 자살폭탄 테러를 벌인 빨간 망토 소녀의 언니로 계획적으로 임중경에게 접근한다. 그녀는 살아남기 위해서 섹트가 되었다가 공안부에 협력했지만 그 어느 곳에도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동화 속에서 늑대는 빨간 모자에게 계획적으로 접근한다. 그러나 현실은 동화와 반대로 이루어진다. 다만 늑대소녀는 사랑하기 때문에 함께 도망가길 원하고, 빨간 모자는 지키기 위해 멀어지고 싶어 한다. 


원작에서는 ‘늑대’가 주인공의 트라우마, 심리 등을 반영하지만 영화에서는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설정으로만 등장한다. 마치 잔혹 동화를 들려주는 것처럼 이윤희는 스산한 나레이션을 시도한다. 사람의 탈을 쓴 늑대와 빨간 코트를 입은 여인은 비주얼적으로만 보여주었어도 충분하지 않았을까. 마지막 나레이션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오싹했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 반하고 끌리는 것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그도 그럴 것이 공안부의 계략으로 임준경의 약한 부분을 이윤희가 파고들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마치 처음부터 운명이었던 것처럼 시선을 교환하고, 손을 맞잡는다.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그때부터 소속에 혼란을 느끼기 시작한다. 당장 살아남고자 공안부를 택한 이윤희는 임준경에게 도망가자는 제안을 하기도 하고, 거절당하자 GPS를 켜서 자신의 위치를 드러내기도 한다. 임준경 역시 그녀가 적이라는 것을 인식하면서도 곁에 두고 마지막까지 윤희를 지킨다. 이 두 사람의 혼란스러운 감정이 영화 전체적인 분위기에 잘 녹아들어 있다. 다른 것은 모두 차치하고 두 사람의 로맨스 영화라고 생각하면 나름 낭만적이다.      


캐릭터 사담

이윤희는 공안부에서 인정한 전문가의 사격 솜씨를 지니고 있다. (비록 상대방이 비무장 상태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토리에서 그녀가 부각될 장면은 하나도 없다. 영화 내내 이윤희는 임준경의 도움을 받고, 그를 따라 다니며 철저히 보호받는 역할일 뿐이다. 윤희의 사격 솜씨를 보고 그녀가 반전을 일으키지 않을까 마지막까지 기대했는데 상상은 상상으로 남아 아쉬운 부분이 있다. 


섹트 소속 구미경(한예리)은 짧게 등장하지만 임팩트 있게 자신을 드러낸다. 드라마에서 보여줬던 성숙하고 차분한 이미지를 벗고 목소리 톤도 가볍게 바꾸어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 액션도 훌륭했고 욕망을 따라가는 모습이 설득력 있어 매력적이었다.


악역이었던 공안부 한상우는 전작 <은교>나 <기억의 밤>에서 보여준 연기에서 조금 더 진화한 모습을 보인다. 야망 넘치지만 능력은 부족한, 그래서 20% 찌질한 연기로는 독보적인 배우가 아닐까.      



너무 기대를 했던 모양이다. 영화를 보고 난 뒤, 당황스러움이 앞선 것은 사실이지만 시간을 두고 감상을 곱씹어보니 방대한 미래 설정과 캐릭터들을 모두 살리기엔 러닝타임 2시간 30분은 조금 짧았던 것 같다. 그렇다고 어느 것 하나 삭제할 수도 없고 장르는 여러 갈래로 나뉜다. SF는 맞는데 조금 구식이고 로맨스라기엔 열렬하진 않고 액션이라기엔 인간병기가 너무 막강해서 적들이 너무 쉽게 사라진다. 90년대 애니메이션의 실사판을 한 번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좋은 영화일지도. 



*사진출처 : 다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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