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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활모험가 Apr 21. 2017

한봄의 백패킹

-봄날의 풍경이 되다


추위에 쫓기고, 미세먼지에 쫓기고,

야외활동은 생각할 새도 없이 쫓기듯 종종대던

 도시의 나날이 계속됐다.

그러는 사이 봄은 느긋하게 우리 곁으로 스며들고 있었고, 어느 샌가 새싹으로, 벚꽃으로, 개나리로, 진달래로, 목련으로, 여러 표정으로 수줍은 인사를

건네기 시작했다.



겨우내 잔뜩 움츠렸던 어깨를 펴고, 다소 무거웠던 겉옷을 벗고, 추위에 대비한 동계 장비들을 내려놓고 나니, 종종대던 발걸음도 사뿐해졌다.

스르륵 우리 곁에 온 봄이 희미해지기 전에,

떠나야겠다.



굳이 멀리 떠날 필요도 없이,

여기저기에 보따리를 풀고 있는 봄의 풍경 속에

그저 풍덩 빠져들면 되는 것.

 

봄이 그려 놓은 그림 속에서 한가로이
유영하면 되는 것.
봄의 백패킹이란 그러했다.



겨울 백패킹에선 늘 빼지 못해 안달이었다. 무게를 줄이려고 빼고 또 빼 봐도, 줄일 수 없는 절대치가 정해져 있었기에 늘 낑낑대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 무게 덕에 내가 무사히 겨울 백패킹을 즐길 수 있는 것이기에, 겨울 시즌이 끝난 후 그들의 노고를 치하하며 잠시 작별을 고했다.


‘덕분에 즐거웠어. 다음 시즌에 만나자.’  


무거웠던 겨울 장비들(동계 침낭, 우모복, 핫팩 등)과의 작별은, 곧 3계절 장비들과의 재회를 뜻했다.


한껏 작아진 장비들의 부피에,

이제야 제대로 계절이 실감나기 시작했다.



타박타박, 겨우내 약해진 체력으로도 금방

오를 수 있는 얕은 산으로 향했다. 이미 져버린 성질 급한 꽃나무와 이제 피고 있는 느긋한 봄꽃나무,

그리고 온 산을 가득 채우고 있던 푸르름까지,

이 작은 산 여기저기 봄이 만개하고 있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아주 느긋하게 걸어 보았다.

모두의 다른 속도처럼, 우리는 우리의 속도로.   

얼마만의 향긋함인가. 얼마나 오랜만인가, 찌푸리지 않고 맘껏 공기를 마셔보는 것이.

봄은 정말 가까이에 있었다.

그것도 아주 활짝 피어서.

한낮엔 이마에 송글 땀이 맺힐 정도로 계절은 시간마다 조금씩 바뀌고 있었지만, 우린 아직 봄의 한 가운데에 있었다. 한여름, 한겨울, 이렇게 여름과 겨울은 계절의 한 가운데를 표현하는 것이 익숙한데,

봄과 가을은 이상하게 입에 익지 않았다.

왠지 생경하지만 참으로 예쁜 표현. 한봄, 한가을.



한봄 꽃나무 그늘 아래,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속에서 노닐어본다.






다음 날 아니 온 듯 자리를 정리하고

자박자박 내려오는 길,

어제 올라오는 길에 보았던 꽃봉오리가

화알짝 피어 있었다.



한봄 이 계절 속에, 이 풍경 속에,

잠시 머무를 수 있어 참 다행이다.






라이프스타일 포토그래퍼인 빅초이와 작가 블리는 단순한 삶을 지향하는 생활 모험가 부부입니다. 
일상과 여행, 삶의 다양한 순간을 남편 빅초이가 찍고, 부인 블리가 이야기를 씁니다.

*빅초이 인스타그램
*블리 인스타그램
*생활 모험가 부부의 라이프로그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소로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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