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어 그러니까 그게······.”
“······그것도 몰라? 어휴-!”
마치 사자가 포효하듯이 외할아버지는 일그러진 표정과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외할아버지의 치아는 대부분이 금니에다가 윗니가 2갠가 3개가 빠져 있었다. 말 그대로 ‘이빨 빠진 사자’였다. 동갑내기 여사촌은 사자 그 자체인 외할아버지의 공포에 잡아 먹히고 말았다.
“자, ○○이 차례다. 좀 더 쉬운 걸 낼 테니 못 맞추기만 해 봐라.”
나는 기대 반 두려움 반이었다. 답을 맞히고 저 사자에게서 도망을 치느냐 아니면 여사촌과 마찬가지로 잡아먹히고 말 것이냐. 생사(?)의 기로에 놓인 것이다.
“오 곱하기 칠은 얼마야?”
“······사, 삼십오······.”
씨-익
‘이빨 빠진 사자’가 웃었다. 웃어도 사자는 사자라서 무서웠다. 웃을 때 금니와 빠진 윗니가 더 잘 보였다. 사자는 끓어오르는 가래를 뱉으러 화장실에 갔다.
나는 그때 잠깐 긴장과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큰 고비는 넘겼다 생각했다. 정말 운이 좋게도 내가 유일하게 잘 외웠던 게 5단이었다. 곱할 때마다 끝에 둘째 자리 숫자가 5 아니면 0 이이었으니까.
가래를 뱉고 온 사자가 기대에 찬 눈빛을 하고 제자리로 와서 앉았다. 입맛을 다시던 사자는 입을 크게 벌리고 말했다.
“자, 이번에는 조금 더 어려운 걸로 간다!”
“네? 또요? 끝난 거 아니었어요?”
“허허 끝나기는. 할아버지가 끝내야 끝난 거지. 문제 낼 테니까 잘 맞춰라.”
“······.”
잠깐의 텀만 있었을 뿐 나도 여사촌과 마찬가지로 사자에게 잡아먹혔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몰라도 할아버지의 ‘공포의 구구단’ 시간은 거의 매일 이루어졌다. 우리가 못 맞히고 우는 날이 많아지자 엄마와 큰 숙모는 이대로 두면 안 되겠다 싶었던지 한 가지 묘책을 내놓았다.
“너네 앞으로 유치원에 갈 거니까 가서 열심히 해.”
여사촌과 나에게 유치원은 할아버의 구구단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탈출구였다. 정확히 말하면 그곳은 유치원이라기보다는 미술학원이었다. 그냥 이름부터가 미술학원이었다. 거기서 미술을 중점적으로 보면서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하는 종합유치원? 종합학원?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 미술학원에 다니면서 진도를 어느 정도 빼자 드디어 구구단의 시간이 왔다. 우리는 구구단을 배우고 다 외웠는지 암기 테스트를 매일 했다.
아이들이 선생님 앞에 한 줄로 서서 한 명이 끝나면 그다음 아이가, 또 그다음 아이가 테스트를 했다. 몇 개 정도 틀리는 것은 넘어가주었지만 많이 틀릴 시 선생님의 짜증과 모욕감을 받으며 다시 재시험을 쳐야 했다.(이 시간만 되면 우는 아이가 꽤 많았다)
여사촌과 나는 서로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이 정도 가지고 무서워하다니! 후훗. 우리는 그것보다 더 했다고!’라는 말을 속으로 말하며 아이들을 보고 또 웃었다, 아니 비웃었다. 여사촌과 나는 가볍게 테스트를 통과했다. 그리고 집에 일찍 퇴근(?) 할 수 있었다. 시험에 통과하지 못한 아이들은 될 때까지 재시험을 치다가 선생님이 안 될 것 같다고 판단을 해야 집에 갈 수 있었다.
한 번은 미술학원에서 친해지게 된 친구가 자기 시험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해서 기다려준 적이 있었다. 그 친구는 결국 합격을 받지 못했다. 영혼까지 털린 친구는 화장실에서 진정될 때까지 있었다. 친구가 없는 사이에 미술학원 선생님이 말했다.
선생님이 짜증을 내고 있을 때 정말 드라마틱하게 그 아이의 부모님이 왔다. 그러자 선생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밝은 얼굴로 그 아이를 칭찬하며 부모님을 치켜세웠다. 친구가 화장실에서 나오자 선생님은 거짓말을 하며 친구에게 웃으며 상냥하게 대해주었다. 그리고는 우리를 째려보았다. 마치 말하면 가만 안 두겠다는 듯한 눈빛으로.
순간 내가 만화영화나 동화 속에 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항상 주인공을 못되게 괴롭히고 심술로 가득 차 있는 표정의 빌런들. 미술학원 여선생님의 외모와 그 당시 유행하던 화장, 그리고 짜증 난 표정이 한데 어우러져 마치 백설공주에 나오는 마녀의 모습과 흡사했다.
그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또 한 번의 충격이 찾아왔다. 늦은 저녁에 목이 말라 냉장고에 있는 물을 마시러 거실에 나오니 외할머니와 엄마가 서로 맞장구를 치며 언성 높은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냉장고 문을 열러 가까이 가니 큰 숙모의 험담, 뒷담이었다. 나는 또 동화 속에 와있었다. 주인공을 시기, 질투하는 악당들이 뒤에서 음모를 꾸미는 장면을 보고 있는 거라고.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나는 주인공을 도와주는 착한 사람이 될 거라 결심하고 그들에게 말했다.
“할머니, 엄마! 가족인데 왜 욕해. 가족끼리 사이좋게 지내는 거라 배웠어. 그러니까 욕하면 안 돼. 욕하지 마.”
나는 뭔가 대단한 걸 했다는 듯이 의기양양해져서 칭찬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시끄러워! 어른들 얘기하니까. 어디 버릇없이 함부로 얘기에 끼어들어! 절로 가! 알지도 못하면서. 아휴 이눔의 애새끼.”
‘어, 이상하다? 동화나 만화영화에서는 이렇지 않았는데······.’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어른들이 내 앞에서 화를 내지 않아도 무서움을 느꼈던 때가. 내 앞에서 아무 말 안 해도 내가 없으면 얼마든지 욕할 수 있다는 것을, 어른들이 어린이인 나도 얼마든지 미워하거나 싫어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https://youtu.be/-ohufgubzZs?si=2Xs39ZNcjAbqwxD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