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이 끝나고도 내 밤은 달라지지 않았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울음 끝에 지쳐 잠들기를 수십 번 반복하고 나니, 어느덧 졸업식이 코앞이었다.
졸업식 날, 평소 한 번도 오신 적 없던 외할머니가 교문에 들어서셨다.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발걸음이었다.
삼촌들은 엄마를 포함해 본인들 졸업식엔 한 번도 안 오셨으면서 내 졸업식에는 오셨다며 한 마디씩 거들었지만, 내게는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굳이 이 날, 저런 말을 해야 했을까' 하는 서운함이 마음 한구석에 가시처럼 박혔다.
전날 밤에도 울다 잠든 탓에 사진 속 내 얼굴은 엉망으로 퉁퉁 부어 있었다. 그 낯선 내 모습이 보기 싫어 며칠 뒤 사진을 갈가리 찢어 버렸다.
식을 마치고 작은 외삼촌 가족과 함께 고깃집을 찾았다. 식당 안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부모님의 축하 속에 웃고 있는 또래들, 그리고 벌써 앞치마를 두르고 서빙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친구들.
같은 학교에서 똑같은 교복을 입고 같은 수업을 들었던 이들이, 교문을 나서자마자 각자 다른 삶의 조각들을 채워가는 모습은 내게 생경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다들 저렇게 즐겁게, 혹은 치열하게 사는구나. 나도 저 틈에 섞일 수 있을까?’
그리고 끝내 삼키지 못한 문장 하나가 가슴을 쳤다.
‘······엄마도 이 자리에 함께 있었다면.’
여러 감정이 뒤엉킨 식사가 끝나고 삼촌네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왔다. 문을 열자마자 쏟아지는 어둠과 적막.
그 순간의 무게가 나를 바닥으로 짓눌렀다. 거실을 둘러보니 싱크대에는 씻지 못한 그릇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할머니가 오시기 전에 얼른 치워 놓아야지.’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수세미에 세제를 묻혔다.
탕-! 탕탕!
고요했던 집안이 그릇들 부딪히는 소리로 채워졌다. 다른 기척이 전혀 없었기에 그 소리는 평소보다 더 크고 적나라하게 들렸다. 그 날카로운 소리들이 귓속에 차곡차곡 쌓이더니, 결국 둑이 터지듯 무언가가 울컥 쏟아져 나왔다.
“으··· 윽, 으으읍!”
어디를 나갔다 와도 이제 엄마는 없다. 밥을 먹을 때도, 설거지를 할 때도 엄마는 계시지 않는다. 이제는 정말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다는 사실이, 그제야 살을 파고드는 현실로 다가왔다.
현실 감각이 무디고 늦되었던 나는 그날에서야 엄마의 빈자리를 온몸으로 체감했다.
다른 이들이 부모님과 함께 삶의 순간순간을 메꿔갈 때, 나는 결코 채울 수 없는 구멍을 안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처절하게 깨달았다.
그날 흘린 눈물은 단순한 슬픔이 아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공포와 막막함, 그리고 지독한 그리움이 뒤섞인 비명이었다.
그렇게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실컷 울어보려던 찰나, 현관문이 열렸다.
“···왜 울어! 응? 울지 말어. 이럴 때일수록 더 굳세게 살아야지, 네 엄마가 너를······.”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인생은 참으로 얄궂다. 마음 놓고 슬퍼하는 것조차, 혼자 오롯이 우는 것조차 쉽게 허락하지 않는 게 내 인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