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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상희 Dec 19. 2023

판공성사

메리 크리스마스

판공성사(判功聖事, Confessio annua)는 한국 가톨릭 교회에만 존재하는 특이한 연례성사로, 매년 12월 25일 주님 성탄 대축일 전의 대림 시기와 파스카 성삼일 전의 사순 시기에 일괄적으로 진행되는 고해성사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목욕재계'와도 같은 것인데 가톨릭 최대 대축일을 준비하는 시기에 자신의 죄를 모아서 한꺼번에 고해하고 참회하면서 전례력으로 대축일을 기쁘게 맞이하는 준비 활동에 해당한다.-나무위키-


내 생각으로는 아마도 한국 사람들이 고해성사를 하는 것이 어색하고 부끄러워 성사를 잘 안 보니까 일 년엔 두 번이라도 꼭 고해성사를 보라고 정해놓은 것으로 생각된다. 성당에 다니면서 무엇보다도 가장 부담이 되는 것은 고해성사였다. 혼자서 머릿속 생각으로 1대 1로 예수님 하고 이야기하면 좋겠구만, 신부님한테 내 죄를 말해야 하니 보통 부담이 되는 게 아니다. 이런 부담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꼭 필요한 부담이라고 말한다.  성장성숙이 되는 부담이라는 거다. 신부님이 나의 이야기를 듣고 무슨 생각을 하시려나 고민하지 말아야 한다. 인간적 의식이 아닌 하느님과의 자비용서에 대한 본질을 생각해야 한다. 지난 부활절 신부님께서는 고해성사에 대해 특강을 하셔서 알게 된 것이 많다. 


성당 우스갯소리로 성당 다니는 사람들이 제일 많이 지은 죄는 '성당에 빠진 죄'와 '이밖에 알지 못한 죄'라고 한다. 고해성사를 자신의 죄를 고하고 이밖에 알지 못하는 죄도 용서를 구하는데, 대충 말로 자신의 죄를 퉁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자신의 잘못을 알고 있지만 숨기고 고해는 것은 고해 자체가 원천 무효다. 알면서도 알리지 않으니 하느님의 은총(용서)을 받을 없는 거다. 하느님은 감시의 눈이 아닌 용서의 눈으로 바라보고 계시는데 죄의 용서를 구하면서 대충 잘못했는지 생각이 안 나지만-용서해 주세요 하는 것과 같은 거다. 


성사표를 받고 그때부터 내 생활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뭐 딱히 잘못하고 산 것 같지는 않지만 성사는 봐야 하니 고민이 길어진다. 성사를 볼 때는 첫째, 죄를 구체적으로 고백해야 한다. 두 번째, 내 죄를 고백해야 한다. 시어머니나 남편이 잘못한 걸 고하면 안 된다. 당연해 보이지만 많이 하는 실수라고 한다. 아마, 죄를 지은 자신에 대한 변명이 길어지면서 다른 사람의 잘못을 늘어놓는 실수를 하는 거 같다. 세 번째, 질문을 하면 안 된다. 땅을 살까 말까, 주식을 팔까 말까, 집값이 오를까 내릴까, 아까 내 아내가 무슨 고백을 하던가 뭐 그런 질문을 하시는 분들도 있는가 보다. 


고해소에 들어가려 긴 줄을 서서 기도를 하며 차례를 기다렸다. 혹시 기억이 안 나면 안 되니까 내가 지은 죄를 꼼꼼히 적었다.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며칠 생각해 보니 지은 죄가 없지 않았다. 지난번에 특강도 들었겠다 제대로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의지를 다졌는데 고해소에 들어가자마자 난관에 봉착했다. 


고해한 지 ---- 되었습니다.


성호를 긋고 이 말을 해야 하는데 도대체 단어가 생각이 안 났다. 머릿속으로는 예수님 돌아가셨을 때라고 해야 하나-아니 돌아가셨다가 살아나신 그거, 아니 그걸 기념하는 그거, 그때가 뭐였지 뭐라고 하는 거였지 하며 머리를 굴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내가 신부님이었다면 빨리 말햐, 뭐 하는 겨-했을 것이다. 한참을 말도 못 하고 있다가 겨우 "고해한 지 육 개월쯤 되었습니다."하고 말했다. 


깨끗한 마음으로 올 성탄을 맞이할 수 있어서 참 좋다. 다음 성사 때는 정말 제대로 해보리라.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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