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월요일, 화요일. 내리 삼일을 샤인머스캣 포도 농장으로 출근을 했다. 5시에 일어나서 옷을 챙기고 점심 도시락을 싸서 출발하면 딱 7시에 일하기 좋게 도착했다. 첫날은 그런대로 어렵지 않은 일이었고, 날씨도 비가 와서 하우스 안이지만 덥지도 않았고, 지인과 함께 마주 서서 일을 하니 수다도 떨고 좋았다.
둘째 날은 주소만 들고 샤인머스캣 하우스를 찾는 일부터 난관이었다. 이래저래 처음 배정받은 곳이 아닌 곳에 가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첫날 포도나무보다 훨씬 큰 나무들이었다. 발판을 하고도 고개를 빠짝 쳐들고 순을 따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하루에 한 번쯤 하늘을 보는 것은 좋지만 7시부터 5시까지 계속 하늘을 보는 것은 고욕이다. 몇 시간이 지나자 어질어질하고 토할 것 같았다. 내가 요령이 없는 거라며 가지를 살짝 잡아서 순을 자르고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으라는데 살짝 잡는다고 잡았는데 가지하나를 부러뜨리고 나서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설픈 일꾼 때문에 농사를 망쳐 놓을 수는 없으니 내가 고생하기로 했다. 집에 와서 8시 30분이 채 되지 않아 곯아떨어졌다.
삼일째, 퉁퉁 부은 얼굴을 보니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가시지 않는 두통에 주섬주섬 약을 먹으며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일을 벌이고, 여기저기 알바비 모아서 스페인 여행 간다고 자랑하고 다짐하고... 일하러 가기 싫었다.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니 일을 해야지. 이번 농장에서는 알솎기에 투입이 되었다. 포도알이 많이 달렸다고 좋은 것이 아니고, 포도알이 자리를 잘 잡고 자랄 수 있게 필요 없는 부분을 잘라주는 일이다. 열네 명이 두 명씩 짝을 지어 서로 바라보며 솎는 거였다. 전날 직접 알솎는 곳에 가서 한 시간쯤 특강을 들었지만, 초보는 티가 나는 법. 매서운 눈초리의 농장주인이 다가와서 일을 잘 못한다고 욕을 한 바가지 늘어놓았다. 남의 농사 망칠까 봐 조심조심하면 포도알 작아진다고 난리. 과감하게 싹둑싹둑 자르면 포도알 모자란다고 난리. 오랜만에 시원하게 종일 욕을 먹으니 머리가 어질어질 두통이 심해졌다. 이러하게 이렇게 하면 되는 거야. 별거아녀. 하는데 그 이렇게가 포도송이마다 어찌나 다른지 도통 모르겠는 거다. 나의 아둔함이여.
나는 뭐든 열심히 하는 사람이고, 습득력도 빨라서 가르쳐만 준다면 금세 배울 거라는 교만. 포도송이 앞에서 무참히 짓밟혔다. 어쩌다가 여기까지 흘러왔슈-하는 옆자리 아주머니의 말에 그냥 웃기만 할 뿐이었다. 잠시 소란해져서 보니 아기 도마뱀이 나타났다. 중학생이었으면 소리 지르고 난리를 쳤을 텐데, 욕을 들입다 먹고 던 나는 그냥 사진 한 장 찍었다.
집에 와서도 두통 때문에 고생을 하다가 8시도 되기 전에 잠이 들었다. 아침에 컨디션이 나아지지 않더니 기어이 구토까지 하게 되어 병원에 갔다. 일반적인 두통이 아니라 목근육이 긴장을 하거나 목디스크가 있어도 두통이 온다고 했다. 물리치료를 받고 집에 오는데 어찌나 한심한지.... 포도나무 전용 가위까지 이만 원이나 주고 샀는데 어떻게 하나 싶다. 일손이 부족해서 큰일이라는 이야기를 삼일 내내 들었고, 일 시작하기 전에 힘든데 정말 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 얼마나 우렁차게 할 수 있다고 외쳤던가. 토요일 일에 배정 되어 있는데 아픈걸 더 뻥 튀겨서 이야기해야 하나. 적어도 일주일은 쉬라고 했는데 어떻게 하나 우울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단톡에 공지가 떴다. 이번 토요일 명단이 바뀌었단다. 다행인지 내 이름이 빠져있었다. 짤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