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짝
아욱, 상추, 쑥갓의 씨를 뿌리고 일주일쯤 지나자 싹이 나기 시작했다. 날씨가 포근하니 금세 자리를 잡았다. 어디에 무슨 씨를 뿌렸는지 생각이 안 났는데 싹을 보니 동쪽 끝 부추 옆에 아기 아욱이, 서쪽 끝 당귀 옆에 아기 상추가 고개를 내밀었다. 가운데만 텅 비었으니 쑥갓이 주춤대고 있는 거였다. 조금 늦게 싹이 나는 경우는 있어도 아예 전멸인 경우는 없어서 며칠 더 기다려봤는데 감감무소식이다. 오늘 아침 쑥갓씨를 다시 뿌리기로 결정했다. 쑥갓씨가 이미 오픈한 씨앗봉투가 있고 아예 새 씨앗봉투도 있어서 어떤 것을 뿌릴까 잠시 고민하다 유효기간이 있어서 살펴보았다. 지난번에 뿌린 씨앗의 제조년월일은 2023년 1월인데 보증기간은 2년이었다. 그런데 왜 싹이 안 났을까? 하며 새것을 보니 그것은 2020년 1월에 만들었다고 찍혀있었다. 이건 뭔가 하다가 싹을 틔우지 않은 그 봉투 안에 든 씨앗을 다시 뿌리고 불을 듬뿍 주었다. 나겠지. 쑥갓이 넘쳐서 걱정이지 안 나서 걱정하기는 첨이다.
옆고랑에는 여러 종류의 쌈거리 모종을 심었다. 들깻잎 모종을 사지 않아서 눈에 불을 켜고 밭을 뒤진 결과 애기 깻잎이 두 포기 자라고 있길래 한 삽 푹 떠서 쌈거리 자리에 옮겨 심었다. 아마도 5월이 되면 마당밭 여기저기서 깨싹이 날 거다. 매년 깨는 심지 않아도 알아서 잘 났다. 그러면 또 한 삽 떠서 자리를 잡아 주면 된다. 얼추 마당밭이 자리를 잡아간다.
고추, 가지, 토마토도 아직 조금 자랐지만 아래쪽 잎들과 옆으로 새로 나고 있는 순들을 잘라주었다. 아직은 열매를 맺거나 가지를 넓힐 때가 아니라 위로 키를 키우며 자랄 때여서 자주 살펴보며 순을 쳐 주어야 한다.
우리집 샤인머스캣은 이제 싹이 나고 있다. 포도알이 달릴 때까지 우선 크도록 그냥 둔다. 포도는 첨부터 알이 송송이 맺힌 모양으로 시작된다. 그러다 꽃이 피고 자가수정을 하고 난 후의 알이 진짜 포도다. 내가 포도밭에 일을 하고 다니고부터(이제 겨우 3일이지만) 남편은 나보고 샤인머스켓도 알아서 하란다. 아니다. 나는 우리집 포도에 대해서는 잔소리만 할 거다.
우리집 작은 마당밭을 점점 풍성하게 해 줄 애기들을 돌보고 그 사이 훌쩍 자란 부추를 뜯어 저녁반찬을 만들었다. 이제 본업을 하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