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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사원 Apr 17. 2018

[김 사원 #32] 밭 가는 소가 이런 심정일까요

주간 회의를 일찍 마치기가 아쉬웠는지 박 팀장의 시선이 김 사원에게 향했다.  

“김 사원, 이제 입사 두 달 됐는데 소감 한번 말해 봐"

“어.. 음.. 아직 정신이 없지만.."

입사 한 달도 아니고 두 달 소감을 물을 줄은 몰랐다. 김 사원이 우물거린다.

“아침에 출근하기 싫거나 그러진 않지? 그럴 때가 있어. 아침에 딱 눈을 떴는데 회사가 엄청 가기 싫을 때. 매일매일 도살장 끌려가는 소처럼 회사에 나오는 거지. 그거 정말 위험해. 매일같이 가는 회사가 괴로운 곳이 되면 안 되잖아. 여러분들에게는 회사가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박 팀장의 일장연설이 시작되었고, 김 사원의 머릿속에는 도살장 같았던 어느 회사가 떠올랐다. 결국 7개월 만에 그만두었던 곳. 그때는 아침에 눈을 뜨면 심장이 너무 빠르게 뛰고 있었다. 아무리 심호흡을 해도 심장이 진정되지 않았다. 일이 많다고, 체계가 없다고, 상사가 능력이 없다고만 생각했다. 한참 뒤에야 깨달았다. 아무리 참고 노력해도 심장을 진정시킬 수 없음을. 회사나 상사는 절대 바꿀 수 없음을. 퇴사를 한 뒤에야 심장이 제 속도를 찾았다.  


지금 회사에 입사 전, 새 회사로 이직하면 한동안은 설렘과 긴장 사이에서 보낼 거라고 어렴풋이 생각했다. 그 감정으로 두 달쯤은 아침에 눈이 반짝 떠지고, 별일 없다면 발걸음까지 가볍게 출근할 줄 알았다. 그러나 들뜬 기분과 새로운 다짐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 주차에 접어들자 예전처럼 아침에 눈뜨기가 힘들었고, 공휴일에 쉬면 날아갈 듯 기뻤다. 도살장까지는 아니고 밭 갈러 가는 소 기분이 이럴까 싶었다.



김 사원이 '그땐 그랬지'를 하는 동안 박 팀장의 일장연설 시간이 끝났다. 그나저나 입사 백일 소감은 미리 준비를 해놔야겠다. 그때쯤엔 갈아놓은 밭에 모종이라도 심어 있을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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