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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사원 Aug 20. 2018

[김 사원 #36] 과장님, 싸구려 훈계는 이제 그만요

한 과장이 오늘도 훈계를 시작했다. 회식 때마다 후배 하나를 붙잡고 살풀이 같은 잔소리를 늘어놓는 사람이었다. 오늘은 김 사원이 붙잡혔다.

'김 사원은 칼퇴하고 집에 가서 뭐하냐. 요즘 환급되는 학원도 많다더라. 그런데 가서 공부하면 돈도 안 들고 좋지 않냐. 아니면 악기를 하나 배워 봐라. 나 젊을 때는 기타도 배우고 드럼도 배우고 했다. 김 사원은 술도 안 먹는데 무슨 재미로 사냐. 내가 그 나이 때는 회사 동기들이랑 밤새 술 먹고 출근하고 그랬다. 여기같이 널널한데만 있으면 경력 망친다. 빡세기로 유명한 회사들도 겪어봐야 한다. 다닐 땐 힘들어도 실력은 쑥쑥는다. 김 사원은 다른 팀 사람들이랑 왜 교류가 없냐. 두루두루 사귀어두면 그게 다 회사 생활의 낙이 된다.'


평소라면 슬쩍 자리를 피했을 텐데 오늘은 대꾸를 했다.  

'과장님은 요즘 칼퇴하고 무슨 공부하세요? 이 나이에 더 배워서 뭐하냐고요? 몇 년만 버티다 이 일 안 하실 거라고요? 기타는 계속 치세요? 아 기타 어디다 두었는지도 잊으셨구나. 요즘은 왜 밤새 술 안 드세요? 젊을 때 많이 마셔서 간이 맛이 가셨다고요. 참, 과장님 빡세기로 유명한 그 회사 출신이라면서요? 실력 많이 느셨겠네요. 그런데 왜 이 회사 다니세요? 무슨 한숨을 그렇게 쉬세요. 과장님은 다른 팀 누구랑 친하세요? 아.. 그런데 그분들 옛날에 다 퇴사하셨잖아요.'


한 과장이 화장실을 간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 사원은 한 과장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그래도 과장님은 좋은 시절 보내셨네요. 지금보다 회사 매출이 잘 나오던 시절, 성과가 있으니 동료들과 으쌰 으쌰 할 수 있던 시절, 조기 퇴근이니 축하금이니 하며 직원 복지를 챙기던 시절, 연봉이 매년 오르던 시절, 2년제 대학을 나와도 당당하게 취직하던 시절...


회사생활의 낙을 모른다며, 낭만 없는 젊음이라며 함부로 비하하지 마세요. 그럴 시간에 과장님 자신이나 돌아보세요. 과장님 연봉을 떼서 제 연봉을 올려주실 게 아니라면 싸구려 훈계는 그만하세요. 제 시절의 생존전략은 제가 더 잘 알아요.


그리고 저, 다른 팀 사람과 점심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술도 한 잔씩 해요. 지난주에도 회사 사람들이랑 맛집 가서 잘 먹고 마셨는걸요. 친한 동료들과 보낸 사적인 자리를 과장님한테 뭐하러 얘기하겠어요.


과장님, 기왕 회식 온 거 고기나 맛있게 씹고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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