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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장이 Sep 07. 2018

제주에 사는 것

제주 토박이의 기록의 시작

  나는 제주에 산다.


 제주에 사는 것은 도시보다 여유로운 차로에서 한라산을 보며 출근하고, 고단했던 날에는 한치잡이가 등을 띄우는 밤바다를 바라보며 맥주 한 캔으로 위로받을 수 있는 행복한 일이다.

그와 동시에 여행을 가려면 항공권 가격부터 걱정해야 하고, 콘서트나 축제와 같은 문화생활에 제약을 받으며 수평선 너머의 도시의 불빛을 동경하기도 하는 조금은 불편한 일이다.


 다른이들이 쉼을 위해 찾아오는 제주는 내게는 일상이며 세계이고 때로는 달려야 하는 곳이다. 설레이는 발걸음들을 나르는 비행기는 활주로에서 일하는 아버지의 어깨를 누르는 가장의 무게였으며, 인스타그램에 해쉬태그를 달고 올라오는 예쁜 골목들은 내게 학교나 아르바이트 업장 등의 목적지로 가기 위한 길일 뿐이었다. 그래서 길에서 흔히 마주치는 외지인들의 반짝거리는 눈빛과 버스 디자인에도 감탄하는 리액션 하나하나가 신기해보였다. 또 그들이 말하는 제주는 반짝반짝 빛나고 아름다웠다. 반대로 비행기를 타고 떠난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동경어린 눈빛과 함께 "제주도 좋은데 왜 다른 지역으로 놀러와요?"와 같은 질문들이 조금 불편하기도 했고..


지금까지 투덜거렸지만, 그래도 난 내가 나고 자란 제주를 좋아한다. 다만 외지인들의 시선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제주를 사랑한다.


유년 시절을 보낸 사라봉 동네를 떠올리면 짠 바닷내음, 제주항의 아침을 깨우는 뱃고동 소리, 사라봉에 오르면 한치잡이 배들을 비추는 산지등대의 불빛, 옆집 슈퍼할망의 구수한 사투리..


고등학교 때 비교적 시내로 이사온 뒤로 창문을 열면 올라오는 잔디의 푸릇한 내음과 구름 위로 날아오르는 비행기,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집 앞 카페의 꺼지지 않는 불빛의 기억들은 나를 편안하게 만드는 것들이다.


 '제주 담다,제주 닮다(배중열)'를 읽으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시간이 느릿하게 가는 제주에서 돌담 사이에 피어난 야생화 하나, 검질매는 할망, 낮게 내려앉은 구름들은 여유를 좇아 제주로 내려온 저자에게 소중하고 특별한 일상이다. 저자는 천천히 흘러가는 제주의 시간을 오롯이 느끼고 손 끝의 제주의 색을 담은 그림으로 기록하고 있었다. 제주의 풍경을 담아낸 그림들을 바라보고 있다보면 내 기억 속 풍경들도 함께 겹쳐져서 두둥실 떠올랐다. 바쁜 일상 속에서 내가 잊고 있었던 것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상기할 수 있었다.


 제주에 대한 글을 쓰는 시간은 내게 잊고 있었던 것들을 찾는 여행이 될 것이다. 나의 시선 그대로 내가 좋아하는 풍경들과 동네들을 기록하고, 때로는 제주의 바람이 실어온 아름다운 색들을 짧은 시로 담아내보려 한다. 이러한 소소한 기록들이 제주를 찾는 누군가에게는 제주를 좀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는 길잡이가 되길 바라고, 커피 한 잔과 함께 읽을 책을 찾는 누군가에게는 쉬어갈 수 있는 글이었으면 좋겠다.


#내가 사랑하는 일상적 풍경들

퇴근길, 좌회전 신호 대기 중에 노을이 예뻐서


내 방 창문에서 바라 본 노을진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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