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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장이 Jun 28. 2019

나 정말로 잘 살 수 있을까, 여기에서?

서울살이의 시작

캐리어 하나를 들고 서울에 올라와 가장 먼저 간 곳은 부동산이었다. 일 시작이 당장 다음 주였으므로 내 몸을 둘 곳이 우선적으로 필요했다. 운 좋게도 세 곳을 둘러보고 내 조건에 맞는 집을 구할 수 있었다. 고민할 여유가 없었다. 일정 금액을 입금해야 계약이 완료된다는 말에 누가 채갈까 atm으로 달려갔다. 빠져나간 통장 잔액을 보며 내뱉은 숨이 안도일까, 불안이 짙은 한숨일까, 나는 아직도 알 수 없다. 사실 서울은 내게 살고 싶은 도시는 아니었다.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걸음이 빨랐고, 꺼지지 않는 밤의 불빛들은 눈에 담기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구름이 지붕 위에 내려와 있는 제주의 하늘과 달리 서울의 하늘은 높게 솟은 빌딩 탓인지 아득히도 높아 보였다. 도배와 등 교체를 끝내고 삼일 만에 입주한 집은 몸을 누일 매트리스 하나 없었다. 바닥을 쓸어낸 손에는 먼지가 묻어나 주변 마트에서 급하게 물티슈와 청소 용품을 사 왔다. 막상 청소를 시작하자니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막막했다. 이 집에서 살 수 있을까, 내 손 닿은 물건 하나 없는 이 곳을 내 집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되긴 할까, 덜컥 겁이 나서 캐리어에 머리를 대고 누워버렸다. 사람이 없어도 엄마가 끓여 놓은 김치찌개 냄새가 가득한 집이 그리웠다. 창문을 열어놓으면 올라오는 푸릇한 풀 냄새가 그리웠다. 창 밖으로 웅웅대며 날아가는 비행기의 구름 가르는 풍경이 그립다. 해가 오늘 여남은 생명을 태우며 물들이는 붉은 하늘이 미치게 보고 싶다. 나 정말로 잘 살 수 있을까, 여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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