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공동체 우수모델의 뿌리, 풀무학교(홍성 3편)
풀무학교를 알아가는 인터뷰
그동안의 사회적경제 답사기는 현장을 찾아가고 각종 자료를 스터디하여 작성했었다면 이번 글은 풀무학교 출신의 창업생의 인터뷰로 풀무학교를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도록 구성했다. 이 인터뷰가 풀무학교의 모든 것을 알려줄 수는 없지만 풀무학교가 어떤 곳인지 풀무학교의 교육을 받은 한 창업생의 이야기로부터 이해를 넓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안녕하세요 풀무학교와 홍동을 소개해주시고 인터뷰까지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간단하게 본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풀무학교 56회 수업생이며 2021년 1월 창업한 조성빈이라고 합니다. 현재는 전북대학교 농대에서 원예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풀무학교는 '끝'이라는 의미인 졸업보다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창업'을 사용합니다. 또 '수업생'은 학교 밖에서도 계속 수업하고, 배운다는 의미의 단어입니다) 인터뷰에 앞서 저는 수많은 풀무학교 창업생 중 한 명으로 저의 답변이 풀무학교를 전체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말씀드려요
[네 감안하고 인터뷰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창업생으로써 풀무학교의 특징과 철학을 설명 부탁드릴게요]
풀무학교는 농업과 무교회주의, 공동체 이 세 가지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때문에 학교에서 지낼 때의 일상과 교육과정도 깊게 들여다보면 다 저 3가지와 관련이 있어요.
언제든 참과 옮음 무어든 밝게 : 이로 우리 삶의 규범을 삼음
조선의 상징인 농촌을 둘러메임 : 이로 우리 삶의 의무를 삼음
<새날의 표어> 밝맑 이찬갑
저는 이 글이 풀무학교의 특징을 잘 나타낸다고 생각해요. 풀무학교는 자연의 섭리에 따르고, 농촌에서 농업을 하고, 더불어 사는 평민을 기르는 학교예요. 저도 아는 범위 내에서 농업, 공동체, 무교회주의 이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해볼게요.
농업
모든 산업의 근본이자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행위라고 생각하며 3년 동안 농업과 관련된 다양한 경험을 해요. 농사짓고, 농사에 대해 배우는 수업시간이 있으며 수업 외에도 당번활동을 통해 농업을 합니다. 또 직접 키운 먹거리는 학교 식당으로 올려서 식탁까지 올리는 경험을 해요. 뿐만 아니라 유기농업을 바탕으로 배우기 때문에 생태농업을 중심으로 배워요.(때문에 요즘 떠오르는 스마트팜과는 거리가 매우 멀고, 스마트팜을 가르치지 않고 손으로 하는 노동을 가르치는 것도 풀무학교의 교육철학인 것 같아요) 손으로 무언갈 하는 행위, 농부가 일 년 동안 거치는 과정을 조금이라도 느끼기 위해 농사철에 맞는 활동도 많이 해요. 대표적으로는 농사가 갈무리되는 10월쯤 학교 축제인 ‘풀무제’를 진행해요.
무교회주의
무교회주의는 간단히 말하면 교회가 없어도, 어디에서든 섬기면 그것이 예배이고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곧 예배다 라는 건데요.. 일본 우치무라 간조 선생님이 이 사상의 시초예요. 풀무학교는 매일 아침, 그리고 일요일 오전이 되면 강당이 예배당으로 변합니다. 목사님이 따로 계시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순서대로 예배를 준비해와서 날마다 아침예배를 드려요. 읽어야 하는 성경 부분만 정해져 있고 부를 찬송이나 기도는 그날 예배 당번이 준비해요. 또 일요일 오전에는 ‘일요집회’라고 해서 마을 주민들과(대부분 풀무학교 수업생이세요) 희망하는 학생들, 선생님들이 예배를 드려요. 이 예배는 1시간 정도 진행되는데 보통 풀무학교 선생님, 마을 주민 분들이 앞에 나오셔서 말씀하시고 학생들은 비교적 간단(?)하게 참여합니다.
공동체
풀무학교는 3년 내내 전교생 생활관 생활을 합니다. 사실 농업과 무교회주의는 풀무학교를 다니면서 본인이 배우려는 의지가 있어야 무언가 깨닫고 배우는 듯한 느낌이 있지만 공동체 생활은 입학하는 순간부터 피부로 와닿기 때문에 아마 풀무학교 학생들이 가장 많이 체감하는 특징이에요. 3년간 한 방에 3명씩(1,2,3학년 한 명씩) 살며 나와 다른 사람과 사는 방법을 배워요. 학교에 문제가 생기면 선생님들이 해결하거나 징계위원회 같은 것이 열리지 않고 전교생이 모여서 회의를 해요. 어떤 안건이냐에 따라서 진행방식이나 기간이 달라지고 한 안건으로 두 달까지 해본 적도 있어요.
[무교회주의가 인상적인데요 풀무학교는 기독교학교라고 볼 수 있나요? 그리고 기독교 신앙이 없는 사람은 다닐 수 없나요?]
전혀 상관없습니다 기독교를 강요하지도 않고 실제로 다른 종교나 종교가 없는 친구들도 입학하여 함께 공부합니다
[성빈님께서 풀무학교에 입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졌어요]
저는 원래 경기도 안양에 살았는데요. 초등학교 3학년 때 홍성으로 이사 왔어요. 부모님이 귀농, 귀촌에 관심이 많으셨고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풀무학교를 알고 계셨어요. 엄마는 젊었을 때 홍동에 와서 풀무학교를 구경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풀무학교를 오랫동안 맡으신 홍순명 선생님이 젊은 자신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시는 모습을 보고 나중에 자녀를 낳으면 풀무학교에 보내야겠다고 생각하셨대요. 하지만 저는 초등학교, 중학교를 홍동에서 나오면서도 풀무학교엔 관심이 없었어요. 학교설명회까지 가고 난 뒤에는 절대 안 가겠다고 했어요. 일반적인 교육과정을 가진 학교는 아녔으니까요. 그런데 문득 10대의 마지막 3년을 대입을 위해 보내기보다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접수 마지막 날 막차로 지원해서 다니게 되었습니다.
[풀무학교의 입학 과정은 어떻게 되나요?]
매년 모집시기가 있고 지원 시 학생은 자필로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고 특이한 점은 학부모도 자녀 소개서를 작성해서 내야 해요 서류를 통과하면 면접(3명씩 면접을 봤었어요)과 글쓰기(주제는 면접 당일 안내) 시험이 있고 지역특별전형도 있어요
[학교인원, 선생님 수, 교육비(숙박, 식비 포함) 등을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한 학년당 학생수는 28명 정도 되고 교사 수는 20명 정도세요 교과목은 기본과목에 추가로 농업 수업이 있습니다, 기숙사비는 일반 기숙사 학교랑 비슷한 수준 같아요
[풀무학교 학생들의 생활이 궁금합니다(일반적인 학교와 비교하여 차이점 등)]
다양한 경험을 주체적으로 쌓아갈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생각해요. 풀무학교는 입학설명회 때부터 ‘이곳은 대학 보내는 학교가 아니다’라고 강조해요. 그래서 어쩌면 입학을 두려워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3년을 다닌 결과, 나름 솔직하게 얘기하면 정말 대학을 위해서 해주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풀무학교 다니면서 ‘대학’, ‘수능’, ‘입시’ 이런 단어들을 들어본 적이 없고 선생님들은 더더욱 입시 관련 이야기를 하지 않으세요. 제가 느끼기에 다녀보진 않았지만 일반적인 학교는 대학 진학이라는 방향이 정해져 있고 어떤 과를 갈 것인지 고민하고 공부해야 한다면 풀무학교는 풀무학교를 창업하면 무엇을 하며 살 것인지 고민해요. 그리고 입시 스트레스나 공부 압박이 없으니까 진짜 본인들이 원하는 활동을 할 수 있어요. 저도 3학년 1학기 전까지는 대학 진학에 전혀 뜻이 없었어요. 하지만 농업에 대한 공부를 더 하고 싶었기에 진학했어요. 이처럼 본인이 원하는 것,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이 뭔지 알아가고 탐색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해요. 그래서 풀무학교는 다재다능하고 모든 걸 잘하는 모범생 스타일의 학생보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 하나를 특출 나게 잘하는 학생들이 더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서로를 소중히 여기며 서로의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것 같아요. 제 친구는 고등학생 때 학교랑 잘 맞지 않아서 방황도 하고 담배도 피우는 등 일반적인 학교였다면 불량학생으로 낙인찍힐 만한 행동을 많이 했어요. 하지만 학교 구성원 중 아무도 그 친구를 쓸모없고, 불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이런 작은 생활 속 교훈이 나와 상대를 소중히 여기고, 내가 살아갈 수 있게 각자의 자리에서 힘쓰는 모든 것에 감사할 줄 알게 돼요. 저는 이것이 풀무학교의 교훈인 ‘더불어 사는 평민’이라고 생각해요.
[학교생활 에피소드가 많으실 것 같은데 몇 가지만 들려주세요]
학교생활 에피소드는 정말 많아서 몇 가지만 이야기하기 힘든데
저는 풀무학교를 창업하고 풀무학교에서 가르치려 하는 다양한 배움 외에 가장 크게 얻은 것이 친구들이라고 생각해요. 같은 기수끼리는 3년을, 위아래 언니 동생들과는 적어도 1년 내내 얼굴 보고 사니까 풀무학교에 다닐 때는 가족보다 더 돈독한 사이였어요.
풀무학교 친구들은 서로가 다 다르다는 것을 알고, 그 다양함을 인정할 줄 알아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저는 친구들과 다투거나 사이가 멀어진 적이 없어요. 그걸 많이 느꼈던 때가 특히 회의가 끝나고 난 뒤인데요. 저는 회의 때 발언을 많이 하는 편이었는데 친구들 중엔 저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어요. 그러면 회의 때 제가 한 발언을 듣고 회의가 끝나고 저를 찾아오거나 그날 밤에 손편지가 와요. 제가 한 발언에 대해서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쭉 쓰거나 말을 해줘요. 그러면 그 주제로 몇 분, 며칠을 이야기하기도 해요. 하지만 결론은 늘 “아 넌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그럴 수도 있지”에요. 상대를 이기거나 자신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길 바래서 하는 논쟁이 아니라 나와 같이 살아가는 누군가의 생각이 궁금해서 대화를 하는 거예요. 하지만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그 친구를 배척하거나 사이가 나빠진다거나 하지 않아요. 3년 동안 이런 과정을 수도 없이 겪었기에 친구들과 서로를 정말 잘 알아요. 그리고 그 친구들도 풀무학교에서 함께 교육받았기 때문에 거의 하고자 하는 일, 지향점이 비슷비슷해요. 그 자체만으로도 창업하고 살아가는 데 힘이 나요.
단순히 재밌었던 순간들은 여름에 산책로로 산딸기 따러 갔던 것, 한여름에 새벽 4시에 일어나 농사일했던 것, 손 모내기하는 날에 모내기가 끝날 즈음 친구들이랑 논에서 물놀이하듯이 놀았던 것 등 그런 일상들도 즐겁고 소중했던 것 같아요
[학교 내에 공동체가 여러 개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운영되는지 궁금해요]
풀무학교는 이사회, 학우회, 학부모회, 교사회, 수업생 회로 이루어져 있어요. 그러나 풀무학교의 실질적인 생활이 굴러가기 위해 움직이는 공동체는 학우회와 교사회예요. (물론 다른 세 부서도 힘쓰시지만 학생 입장에서는 가장 크게 와닿는 것이 학우회랑 교사회예요)
학우회는 학생 전체를 뜻하는데요. 풀무학교 공동체를 운영하는 방식은 대부분 회의로 이뤄져요. 매주 목요일마다 회의가 있는데 첫째 주는 학급회, 둘째 주는 학우회, 셋째 주는 생활관 회의, 넷째 주는 전교회의예요. 학급회는 학급끼리, 학우회는 학생들끼리, 생활관 회의는 생활관에 대한 안건으로 학생들끼리, 전교회는 선생님들을 포함하여 전체 학교 구성원이 참석해요. (학우회에 선생님이 들어오면 학생들한테 혼나요~)
그리고 회의보다 작은 단위인 ‘월요모임’이라는 것이 있는데요. 이건 월요일마다 학우 회장단과 학생들이 모여서 전체 회의에 올릴만한 안건을 미리 논의하거나 더 자세하고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예요. 학우회를 이끄는 학우 회장단에게 더 사소하고 구체적인 건의를 낼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해요.
학우회를 이끄는 학우 회장단과 생활관 생활을 이끄는 학생 장단을 선출하는 방식도 풀무학교 공동체 운영에서 꽤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보는데요. 선거 기간이 되면 후보 추천을 받은 뒤 정식 후보로 등록하면 정당을 만들어서 공약을 내고 매일 저녁 당모임을 열어야 해요. 당모임은 유권자와 후보가 공약이나 현재 학교의 문제점, 후보에게 바라는 점을 이야기하는 자리인데요. 당모임 기간을 마친 뒤 최종 공약을 발표하고 지지자 연설, 후보자 연설, 질의응답 과정, 투표를 통해서 선출해요. 이 일련의 과정이 약 2~3주 소요돼요. 이렇게 선출된 학우 회장단과 학생 장단이 회의를 진행하고 그때그때 발생하는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 고민해요. 해결방법을 고민한다기보다 해결하기 위해 어떤 회의나 이야기 자리를 열어야 할지 고민하는 거예요. 이 점이 풀무학교 공동체 운영 정신의 첫 번째라고 생각해요. 누군가 해결해주길 바라거나 학우 회장단이나 학생 장단한테 맡겨버리는 게 아니라 다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는 것을 우선으로 해요.
[창업한 학생들은 어떤 진로를 선택하나요?]
일반학교 졸업생들과 마찬가지로 너무 다양해요
농업을 부모님께 물려받아서 하거나 홍동마을에 남아서 평민 마을학교라는 곳을 통해 공부하는 경우도 있고요 빵이 좋아서 친구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빵집에 들어가 일을 배우는 친구, 제주 성이시돌 취업한 친구(같이 보기 : 지역개발의 우수모델 제주 성이시돌 목장 (brunch.co.kr)), 저처럼 대학에 진학해서 학업을 이어가는 친구도 있어요
정말 다양하지만 중요한 건 자신이 스스로 진로를 선택하고 맞다고 하는 길을 대부분 찾아가는 것 같아요
참고로 홍동에 남아 있는 친구 집은 베이스캠프처럼 창업생들이 모여서 시간을 보내는 아지트가 되고요 개교기념행사가 홈커밍데이라서 또 다 같이 모여 서로 살아가는 소식들을 전하는 계기가 돼요
[마지막 질문이 이예요 성빈님의 앞으로의 꿈이 궁금해요]
저는 풀무학교에서 보냈던 3년의 시간을 통해 제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지를 알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보통은 대학 진학을 위해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정작 자신이 어떤 진로를 원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그에 비하면 저는 빠르게 진로 부분의 방향성을 정하고 전공을 선택하고 대학생활을 하고 있어서 공부도 재미있고 조금은 더 여유롭게 대학시절을 보낼 수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앞으로 직업적으로는 수목원이나 식물원, 생태원 입사 등을 통해 자연과 생태와 관련한 일을 하고 싶어요 그래서 공부도 재미있고 앞으로가 스스로도 기대가 돼요 삶적으로는 자연 속에서 자급자족하면서 자연과 더불어 살고 싶어요 위대한 평민으로 말이죠!
성빈님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하고 책과 자료로만 보던 풀무학교가 어떤 곳인지 더 잘 알게 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앞으로의 성빈님의 꿈을 응원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풀무학교와 홍동 가이드와 인터뷰에 응해주신 조성빈 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풀무학교의 교육이란
인터뷰를 마치고 난 뒤 입시를 위한 교육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 살아갈 것인지 스스로 정답을 찾게 하는 교육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10대 시기에 그런 고민을 충분히 하고 성인이 된다면 그리고 그러한 경험을 한 사회 구성원이 많아진다면 우리 사회는 더 건강해지고 밝아지지 않을까? 홍성 홍동의 이야기는 단순히 학교 하나가 지역을 변화시키고 지역공동체를 이루게 했다기보다 풀무학교 교육이 그렇게 만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교육을 하고 받은 이들이 모여 이뤄낸 공동체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