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취미 중 하나는 인터넷에서 옛날 신문 읽기다. 2000년대 이전 주요 일간지의 지면이 그대로 데이터화되어 있을 뿐 아니라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강점기의 신문까지 볼 수 있다. 신문에 실린 기사와 심지어 광고문구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원하는 검색어로 검색도 할 수 있어서 이렇게 옛날 신문 사이를 신나게 돌아다니다보면 방송을 위한 아이디어도 얻을 수 있다.
곧 연말이란 생각을 하다가 불현듯 '세밑' 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세밑' '세모' 이런 단어를 전에는 많이 썼는데 요즘은 방송에서 거의 못 들어본 듯 하다. '세밑'이라는 검색어를 넣고 검색했더니 역시, 많은 신문기사가 뜬다. 그 중에 한 칼럼을 읽어내려 가기 시작했다. 1979년 12월 25일 <경향신문>에 실린 칼럼이다.
<세밑>
해마다 사람들은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해가 바뀌어 새달력에 익숙치 않아 영수증을 쓰거나 편지를 쓸 때 사람들은 무심코 묵은 햇수를 썼다가는 지우고 신년의 햇수를 써내리는 일말이다. 지난 10년동안 우리는 무심코 197---세자리 숫자에 길들여져 왔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10년 만에 1980의 당면한 숫자에 길들여져야만 한다. 처음에는 외기에도 진저리가 날 정도로 긴 주민등록번호도 자주 쓰다보면 적을 때마다 주머니속에서 주민등록증을 꺼내지 않아도 저절로 외어질 때가 있는 것을 보면 내년 2월쯤되면 아무리 무딘 사람도 1980년이라는 햇수에 익숙해지고 말 것이다.
옛말에 아홉수 넘기기가 그렇게도 힘이 든다는 말이 있듯이 올해는 아마도 70년대의 막바지인 아홉수라서 그런지 유난히도 사건이 많고, 화재도 많고, 위기도 많았던 해였던가 싶다. 그 모든 버리고 싶은 유산들이 벽에 붙은 마지막 잎새와 같은 달력 위에 간신히 매달려 있다. 며칠만 지나면 70년대의 달력은 맥없이 휴지통 속으로 굴러 떨어질 것이다.
처음엔 웃음이 났다. 2000년하고도 이미 23년이 지나버린 지금, 197에서 198로 넘어가는 일을 마치 동해 일출 보듯이 엄숙하게 받아들이는 태도가 재미있게 느껴진달까. 하지만 읽어내려 갈수록 이 칼럼은 심상치 않다는 느낌이 든다. '며칠만 지나면 70년대의 달력은 맥없이 휴지통 속으로 굴러 떨어질 것이다'. 새로운 몸과 마음으로 희망한 새해를 맞이하자는 칼럼인 줄 알았는데, 맥없이 휴지통 속으로 떨어지는 달력이라니. 이쯤에서 나는 이 칼럼을 쓴 것이 보통 사람은 아니라는 예감을 한다. 그리고 마저 읽어내려 갔다.
그리하여 우리는 신년의 새벽을 맞이하게 된다.
낯선지방에 가서 물을 갈아먹을 때면 으례 배탈이 나듯이 무작정 80년대의 첫해를 기쁨과 희망으로만 맞이할 것이 아니라 그나마 묵은 유산 중에서도 버릴 것은 버리고 추릴 것은 추려서 소중하게 간직하는 마지막 선택의 시간이 이제 1주일도 남아있지 않고 있다.
저무는 거리에 나가 보면 어디선가 딸랑딸랑 종이 울리고 있다. 가각(街角)을 돌아보면 뉘엿뉘엿 스러지는 석양의 빛을 모자창에 반사시키고 서있는 구세군이 자선남비 앞에 서서 종을 흔들고 있다. 해마다 듣는 세모의 종소리이지만 올해만큼은 각별한 의미를 지니고 가슴을 비수처럼 찔러 온다.
저녁 공원에 서있는 헐벗은 나무들이 거인의 긴그림자를 끌고 서있듯이 우리 역시 바쁜 걸음을 멈추고 서서 저 가슴을 울리는 종소리에 잠시 침묵하고 지난 10년의 세월을 되새겨보아야 할 것이다.
1979년 12월 25일. 성탄절과 연말의 들뜬 분위기는 아마도 있었겠지만, 그 해 12월 25일은 글쓴이의 표현처럼 '무언가 각별한 의미를 지니고 가슴을 비수처럼 찔러 오는' 시기였을 것 같다. 여기까지 읽으며 12월 밤거리의 흥청거림 속에서 무언가의 무게가 느껴지는 듯 했다. 지금은 역사책과 영화 속에서 마주하는, 그 이상한 시대의 한 복판에서, 어둑한 창밖을 바라보며 원고지에 이 글을 쓰고 있는 어두운 낯빛의 글쓴이가 보이는 것 같았다. 이 칼럼 쓴 사람이 누구일까? 나는 몹시 궁금해 진다. 그의 짧은 칼럼은 이렇게 끝난다.
회랑(回廊)에 가득했던 그많은 사람들은 이제 인사도 없이 헤어졌다. 서둘러 창가에 나가보면 거리를 돌아가는 마지막 소년의 등이 보인다. 안녕, 주먹나팔 불며 소리쳐도 들리지 않는 먼거리를 갈길이 바쁜 소년은 성큼성큼 사라지고 있다.
사랑하라.
저무는 거리에서 울려퍼지는 큰 소리는 우리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다.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모범운전사의 택시 속에 놓인 기도하는 소녀의 염원처럼 이제 비록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10년만의 외출에서 무사히 돌아가는 우리들의 귓가에 들려오는 한마디의 말.
사랑하라. 원수를 내 이웃처럼 사랑하라.
최인호. 작가.
흔히 사회적인 분위기나 사건에 대해 풍자를 섞어 꼬집는 스타일이 대부분인 신문 칼럼, 이번 칼럼도 마치 그 시대의 건전가요나 계몽 캠페인처럼 희망찬 새해를 독려하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이 칼럼을 읽어 내려가며 나는 1980년대를 눈앞에 둔 1979년 12월 25일의 바쁘고 어두운 거리에 순간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역설적이게도 최인호 작가는 차가운 겨울 밤공기처럼 메마른 시대에 '사랑하라. 원수를 내 이웃처럼 사랑하라.'라는 말을 던진다. 그 말은 '과연 이 말이 진정한 대답입니까?' 라고 묻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럼에도 사랑해야 한다'는 강한 신념처럼 들리기도 한다. 세번이나 반복해서 쓴 '사랑하라'라는 말이 가슴을 강하게 친다.
무려 43년 전에 쓰여진 최인호 작가의 이 칼럼이, 작가의 표현처럼, 유난히도 비수처럼 꽂힌다. 해를 나타내는 숫자 네 자리는 정신을 채 차릴 수 없이 빠르게 바뀌어만 가는데, 2023년에도 '원수를 내 이웃처럼 사랑하라'는 말은 여전히 신념인지, 질문인지, 알 수가 없다. 한때는 가득 찼던 수많은 사람들이, 인사도 없이 온데간데 모르고 헤어지고, 무엇이 바쁜지 소년은 등을 보이며 사라져 간다. 돌아온 탕아처럼 만신창이가 되어 집으로 향하는 나와 너에게, 서로를 보듬을 것은 오직 사랑 뿐이라는 것을 자신에게 되뇌이고 또 되뇌이는 듯한 최인호의 글. 최인호 작가가 상상해보지 못했을 2023이라는 배부른 숫자 앞에서 여전히 나는 '사랑하라'는 그의 말을 세 번 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