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고래는 눈이 내리는 바닷속에 살고 있었어. 하늘하늘 내리는 새하얀 눈송이가 연분홍색 산호초 위에 수북이 쌓이는 것은 보기에 퍽 아름다웠지.
하지만 고래에게는 그 벅찬 감정을 나눌 친구가 없었어.
수면에 비치는 자신의 그림자. 하늘에 떠다니는 거대한 구름. 때로 뱃고동 소리를 내며 물살을 헤치고 지나가는 거선. 꽃잎처럼 무리지어 흩날리는 정어리떼.
고래와 어울려줄 만한 것은 그런 것들 뿐이었거든.
이 드넓은 바닷속에 고래는 혼자였어.
처음부터 그랬기 때문에 괴롭지는 않았어.
그저 막연하게 생각했을 뿐이야.
혹시라도. 아주 혹시라도.
닿지 못할 까마득하게 먼 곳에 나와 비슷한 존재가 있다면. 그리고 그 존재가 일으키는 물살을 느끼고, 그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우리는 서로를 안아줄 수 있을 거라고.
<작업 노트>
여느 과학자들은 말한다. 인간이 이토록 뛰어난 문명과 발달된 문화를 갖게 된 것에는 소통의 힘이 컸다고. 그것은 꽤나 일리 있는 이야기다. 저 바위 그늘에 피는 노란색 꽃은 복통에 좋아. 붉은 낙엽이 지는 숲에는 위험한 짐승이 사니 조심해야 해. 그렇게 인간은 정보를 나누고 간접 경험을 쌓으며 시간을 농축하고 응축해 무서운 속도로 발전했을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인간보다 소통을 잘하는 동물은 없지 않을까.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오해한다.
언어란 것은 참으로 얄궂다. 내 입에서 나온 사랑의 단어와 그대의 입에서 나온 사랑의 단어가 서로 다른 의미를 내포한다. 나의 파랑은 당신의 초록이고, 당신은 내 사과에 담긴 진심을 보지 못한다. 나의 것을 최대한 정제해 내놓지만 상대는 그 안에서 그들의 것을 본다.
그처럼 우리는 모두 각기 다른 헤르츠로 노래 부르는 고래 같다.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외롭고, 그렇기에 모두를 이을 수 있는 유일한 단어는 외로움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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