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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스터 Feb 22. 2023

겨울이 오지 않는 호수

inspired by 그림책 <황금 거위>

    그 호수에는 겨울이 오지 않아. 사시사철 핀 꽃과 열매는 벌레와 새들을 지저귀게 했지. 

    숲의 모두는 그것이 호수에 사는 황금 거위 덕분이라고 생각했어. 

    고귀하게 태어나 신의 사랑을 받으니, 황금 거위가 머무는 이곳에 추위가 오지 않는 행운이 깃들었다 믿었지. 모두의 추앙을 받는 황금 거위의 콧대는 점점 더 높아졌어. 거만해진 황금 거위는 같은 호수에 머물던 하얀 오리들을 바보 취급 했지. 그들은 황금 거위와 다르게 모두에게 친절했거든. 


    물에 떠내려간 땃쥐의 꽃모자를 건져주기도 하고, 쏟아지는 비에 호숫물이 불어 만나지 못하게 된 토끼 가족이 다시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했어. 자신이 먹을 것까지 아낌없이 나눠주는 흰 오리들을 보며 황금 거위는 혀를 끌끌 찼어. 


    "바보 같은 것들. 제 몫도 챙기지 못하고 말이야. 저렇게 다 퍼준다고 누가 알아주기나 하겠어? 모두가 호구 취급이나 할 테지."


    황금 거위의 감정은 곧 주변으로 번져나갔어. 풀 위에서 지릉지릉 울던 방아깨비도, 물가로 와 목을 축이던 작은 새와 언젠가 오리에게 도움을 받았던 동물들까지도. 흰 오리들의 호의를 당연하게 여기며 그들을 함부로 대하기 시작했거든.


    그 이야기는 숲 속을 살금살금 퍼져나가 승냥이 떼에게까지 전해졌단다.

    그날 밤 승냥이들은 호숫가로 내려와 외딴곳에 떨어져 자고 있던 오리들의 목을 낚아챘어. 꽥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누구도 그들을 도와주지 않았지.


    그렇게 흰 오리들이 사라진 다음 날. 호수에 깃털처럼 새하얀 눈이 내리기 시작했단다.











<작업 노트>


    동화는 대부분 아름답다. 그리고 때때로 읽는 인간을 기만한다. 마법거울처럼 현실을 비틀어 보여주기 때문이다. 온전히 보여주지 않는 것은, 많은 경우 아예 보여주지 않는 것만 못하다.


    그림책 <황금 거위> 안에는 바보라 불리는 셋째 아들이 나온다. 첫째와 둘째는 선행을 베풀지 않아 불운을 겪는다. 셋째인 바보는 손윗 형제들과 달리 노인에게 친절을 베풀고, 덕분에 행운을 얻어 공주와 결혼해 행복하게 산다는 해피엔딩을 맞는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부족하더라도 남들에게 선행을 베풀면 언젠가 그 대가가 행운으로 돌아올 거라고 말하고 싶은 걸까. 우리네 현실이 정말 그렇게 정직한 원리로 작동할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행운과 불행이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는 이상, 그것들은 한 인간의 행적을 평가하는 척도가 되지 못한다. 오히려 그것은 우발적이며 무자비한 시험에 가깝다. 견딜 수 있는가, 쥘 수 있는가. 견디는 것도, 쥐는 것도 개인의 몫이며, 그 끝에 무엇이 남는가조차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과 판단에 달려있다. 일련의 과정에 윤리적 판단은 일절 관여하지 않으며 그만큼 무책임하다. 그렇게 운은 벼락같이 찾아와 한 삶을 멋대로 뒤흔들고 떠나버린다.


    그렇다면 무엇도 보장해주지 않는 선행은 도대체 왜 베풀어야 하는 걸까. 하나 확실한 것은, 누구도 저만 아는 첫째와 둘째만 사는 세상에서는 살고 싶어 하지 않을 거라는 것이다. 선의는 선의를 부른다. 물론 개중 누군가는 다른 이가 베푼 빵조각만 날름 먹고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상대의 선의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하여 뿌린 씨앗 열 중 하나가 발아하듯 되돌아온 선의가 모이고 모이면. 언젠가는 황금 거위 못지않게 기적 같은 장관에 이를 수 있게되지 않을까.











아래 링크로 들어가면 '같은 주제'로 작업한 < #노들리에 > 소속 작가님들의 작품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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