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무척 궂은날이었어. 시커먼 하늘 아래 거대한 먹구름과 거센 바람이 장대비를 쏟으며 지상을 집어삼킬 듯 굴었지.날짐승, 들짐승 할 것 없이 숲의 모든 동물들은 집에 들어와 문을 꼭 닫고 하늘이 진정되기를 기다리고 있었어.
그때 숲의 떡갈나무집에 노크소리가 들려왔어.
집 안에서 따뜻한 생강차를 마시고 있던 비둘기 할머니는 처음에는 바람소리를 들은 줄 알았지.
하지만 한 번 더,
똑똑-
비둘기 할머니 댁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어.
"누구세요?"
놀란 비둘기 할머니가 숄을 어깨에 두르며 문을 열었어.
문 밖에 있던 건 비에 흠뻑 젖은 채 오들오들 떨고 있던 아직 어린 멧밭쥐였단다.
"아이구야, 아가. 이런 험한 날씨에 여긴 무슨 일이니?"
어린 멧밭쥐를 집안에 들인 비둘기 할머니가 얼른 따뜻한 찻잔을 아이의 손에 쥐여주었어. 어느새 포근한 숄에 폭 둘러싸인 어린 멧밭쥐가 손 안의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조심스럽게 물었어.
"할머니. 제게도 케이크를 하나 만들어주실 수 있나요?"
멧밭쥐의 물음에 비둘기 할머니가 얼른 고개를 끄덕였어.
"그럼, 물론이지. 좋아하는 걸 말해주렴. 금방 네게 딱 맞는 케이크를 구워주마."
하지만 비둘기 할머니의 물음에 어린 멧밭쥐는 울상이 되었어.
"비둘기 할머니. 저는 제가 뭘 좋아하는지 몰라요. 엄마도, 아빠도, 동생들도 모두 사과와 비스킷을 좋아해요. 멧밭쥐는 그것을 좋아하는 게 당연한 일이래요. 하지만 저는 사과도 비스킷도 좋아하지 않아요. 제가 이상한 멧밭쥐인 걸까요? 저도 사과와 비스킷을 좋아해야 하는 걸까요?"
어린 멧밭쥐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비둘기 할머니가 부엌으로 가 서랍장을 열었어. 서랍장 안에는 할머니가 숲 속 동물들의 케이크를 만들기 위해 모아 온 온갖 종류의 재료들이 정리되어 있었지.
비둘기 할머니의 손짓에 쪼르르 곁으로 온 멧밭쥐의 눈이 휘둥그레졌어.
"이게 다 뭔가요?"
"내가 모아 온 보물들이지. 하지만 이 보물들에는 비밀이 하나 있단다."
"비밀이요?"
"그래. 그건 바로 모두의 보물이 다르다는 거야."
어린 멧밭쥐의 까만 눈이 궁금증으로 반짝였어.
"보렴. 이 도토리는 다람쥐 씨에게는 보물이지만 곰 아저씨한테는 길에 떨어진 못 먹을 나무 열매에 불과해. 이 이끼는 달팽이들에게는 만찬이지만 고양이 가족에게는 축축하고 미끄러운 것일 뿐이지."
비둘기 할머니가 땅콩을 하나 까 어린 멧밭쥐에 입에 쏙 넣어주며 말했어.
"그러니 우리 한 번 같이 네 보물을 찾아볼까?"
<작업노트>
관심은 애정의 척도가 된다. 때로는 그 방법이 틀릴 수도, 혹은 과해 독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적어도 애정이 없는 곳에는 관심도 없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관심을 피곤하게 여기면서도, 그것에 지독한 갈증을 느낀다.
하지만 <특별 주문 케이크> 속의 관심은 케이크처럼 포근하고 달콤하다. 주인공으로 나오는 비둘기 할머니는 주변 이웃들을 위해 특별 주문 케이크를 굽는다. 그녀는 단순히 주문자의 요구를 충족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케이크를 받을 이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어떤 상황에 있는지를 세심하게 관찰해 그들이 진정 행복해할 결과물을 구워낸다. 어쩌면 케이크를 받은 이들이 기뻐하는 이유는 맛있는 케이크 때문만이 아닌, 누군가에게 받은 온화한 관심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온화한 관심은 상대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또한 상대를 있는 그대로 포용한다. 수줍음 많은 소년도, 종족을 뛰어넘은 결합도. 한부모 가정과 작은 말썽꾸러기들, 아픈 이와 승부에 진 이들. 그리고 자기 자신까지도. 이야기 속에서는 모두 비둘기 할머니의 따스한 관심과 특별 맞춤 케이크를 받아 마땅한 멋진 주인공들이 된다.
—
아래 링크로 들어가면 '같은 주제'로 작업한 < #노들리에 > 소속 작가님들의 작품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