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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티에 May 27. 2016

한 살 반 우리 딸, 남자친구 생기다

딸 키우는 엄마의 고민


16개월 내 딸에게 벌써 "남친"이 생긴 듯하다. (이십대 중반까지 모태솔로였던 엄마와는 참 대조적이다.) 얼마 전 딸아이 단짝 친구 루이의 엄마인 셀린느가 내게 사진 한 장과 함께 문자를 보내왔다.


"둘이 정말 서로를 사랑하나봐요."


사진 속 우리 딸은 지긋이 눈을 감은 채 루이의 볼에 뽀뽀하는 듯한 제스쳐를 취하고 있었다. 둘은 참으로 행복해 보였다. 그동안 찍힌 이런 달달한 파파라치(?) 사진만 벌써 수십 장에 이른다. 물론 여러 사람의 증언까지 확보해 놓은 상태다.


둘은 분명히 아주 특별한 관계다. 딸아이는 오직 루이에게만 시키지도 않은 뽀뽀를 시도 때도 없이 한다. (엄마랑 아빠한텐 시킬 때만 해준다 ㅠ_ㅠ) 루이도 오직 딸아이에게만 미소를 짓고 자발적으로 뽀뽀를 한다. 셀린느는 얼마 전 루이가 목숨만큼 소중하게 여기는 자신의 쪽쪽이를 아무렇지 않게 딸아이와 나눠쓰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원래 루이는 엄마와 베이비시터를 포함한 주변의 그 누구도 절대 자신의 쪽쪽이를 만지지 못하게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주변에 매일 함께보는 친구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둘은 신기하게도 서로에게만 이렇듯 특별한 반응을 보인다.


난 이런 그들이 참으로 귀엽고 사랑스럽다. 신통방통하다. 지인 분들과 모인 자리에서 나는 딸과 남자친구의 사진을 보여주며 신나게 팔불출스러운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중 한 분도 나처럼 딸을 둔 엄마였다. 하지만 그 분은 딸의 남자친구라는 주제에 관해서 나처럼 온전히 쿨한(?) 태도만을 취하지는 못했다. 사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분의 딸은 오는 9월에 대입을 앞둔 만 17세의 어여쁜 처녀였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은 이렇게 싱글벙글하기만 한 나도 내 딸이 십대가 되어 진짜 연애라는 것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한다면 결코 쿨하기만한 태도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남녀 관계에 있어서 흔히 "쿨내 진동하는" 열린 마인드를 가졌다는 프랑스 사람들도 사실 정도만 덜했다 뿐이지 이런 걱정을 하는 것은 매한가지이다. 프랑스인인 내 남편도 나중에 딸이 커서 혹시라도 잘못된 남자를 만나게 되진 않을지, 또 딸에게 어떻게 남녀 관계에 관하여 현명하고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어야 하는지 조금은 걱정이 든다고 했다.  


요즘 인터넷을 뒤흔들고 있는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성차별이 비교적 덜하다는 서구 문화권에서 살아가는 부모들이 이럴진대, 요즘 한국에서 딸아이를 키우는 엄마 아빠들의 걱정은 오죽할까. 물론 한 정신병자의 범행에 불과한 사건을 왜 성차별 문제와 결부시키냐며  발끈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 4대 강력 범죄 피해자중 약 87%가 여성이다. 한국에서 강력 범죄가 일어날 때 열에 아홉은 그 피해자가 여자라는 것이다. 통계만 놓고 보았을 때도 분명히 대다수의 범죄에는 성차별이 존재한다.  


이번 강남역 사건을 제외하더라도 여성을 향한 범죄의 예는 요즘 셀 수 없이 많다. 이별 통보를 했단 이유로 폭력을 행사하고, 염산을 붓고, 심지어 살해까지 저지르는 이른바 "이별 범죄"는 매일 평균 54회 발생하고 있다고 다. 불특정 여성을 상대로 한 '묻지마'식 여성 혐오 범죄율도 매년 크게 상승하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안전을 위해 딸들에게 어떤 교육을 시켜야 할까? 한 한국인 지인분은 십대인 딸에게 피임을 비롯한 철저한 성교육을 시키면서 혹시라도 원치않는 임신 등의 사고가 생기면 그건 "네 몸을 올바로 간수하지 못한 너의 책임이 크다"라고 일러주고 있다고 했다. 딸에게 자신의 몸에 대한 책임감을 일깨워 스스로를 잘 보호하게 하려는 엄마의 애틋한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사실 그분의 말은 원칙적으로 잘못된 생각이다.



원치않는 임신이라는 사고가 생겼을 때, 그것은 남녀 모두의 부주의에 의한 것이다. 만약에 그것이 성폭행에 의한 것이라면 당연히 여자는 잘못이 없다. 물론 현실적으로 보았을 때 행동거지를 조심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나 역시 당연히 딸에게 "밤 열두 시 이후 할렘 우범 지역에 가도 괜찮아"라고 일러주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원칙적으로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는 분명히 말해주어야 한다. 무조건 "그런 옷은 입지마라, 늦게 다니지 말아라, 특정한 장소에 가지 말아라"라는 강요만 늘어놓는 것은 우리 스스로 여자의 자유와 행동반경을 제한하는 것 밖에 안된다. 정상적이고 건전한 사회란 여자가 그 어떤 옷을 입고 그 어떤 시간에 그 어떤  장소에 가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회이다.


모임에 같이 앉아있던 다른 지인분이 문득 자신의 프랑스인 남편이 고등학생 시절 처음으로 댄스파티에 갔던 이야기를 꺼냈다. 집을 떠나기 전 그녀의 시아버지는 들떠있는 아들의 턱시도 주머니에 콘돔을 넣어주며 말했다고 한다. 

"아들아, 난 네가 여자를 존중하고 책임감있게 행동할 것을 믿는단다." 



"우리는 안전을 위해 딸들을 어떻게 교육시켜야 할까?"


이 질문은 또 다른 질문을 낳아야만 한다.


우리는 모두의 안전을 위해 우리의 아들들을 어떻게 교육시켜야 할까?  


딸들이 안전한 세상은 딸들을 향한 교육만으로는 결코 이루어 질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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