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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sso Jun 16. 2016

이런 사람

  15여 년 전에 남편과 둘이서 도쿄 여행을 간 적이 있다. 3박 4일의 짧은 일정으로 대강의 루트만 짜 놓고 마음 편히 다니는 여행이었다. 우리는 사진기도 가져가지 않아 디지털 기기의 천국 일본에서 그냥 즉석카메라를 살 만큼 헐렁한 부부여서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걷다가 눈에 띄는 곳에 들어가 식사를 하곤 했다.


  하루는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소나기가 내려서 근처 가게 처마 밑에서 비를 피했다. 마침 선술집 같은 분위기의 가게였고 우동이나 먹자 하고 들어갔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이가 아무도 없었는데, 무뚝뚝해 보이던 주인은 가게 밖에 세워져 있던 사진이 있는 메뉴판을 직접 들고 와 무표정한 얼굴로 주문을 받아주었다. 주문을 받으면서도 일본인 특유의 친절함은 찾아볼 수 없었고, 통하지 않는 일본말이라도 몇 마디 할 법하건만 한 마디 말도 없었다.


  잠시 후 나온 우동은 정말이지 내 인생의 음식이라 할 만큼 똑 떨어지는 깔끔한 맛이었는데(헐렁해도 미각만큼은 예민하다) 밥을 고봉밥으로 내어주셔서 남편과 둘이서 '한국인'이라 밥을 많이 먹는 줄 아시나.. 라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밥을 다 먹고 따뜻하게 몸을 데우고 나서도 비가 그칠 기미가 안 보여서 우리는 비를 맞으며 돌아가기로 하고 가게를 나섰다. 그런데 주인이 따라 나오더니 우산을 쓰윽 내밀었다. 역시나 한 마디 말도 없이.


  무뚝뚝한 얼굴의 이 아저씨가 지금도 가끔 생각나는데, 지금처럼 나이 들고 보니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이구나 싶다. 자신의 일을 철저히 하고 차분하고 필요 이상의 친절함을 표현하지는 않으면서 배려심이 몸에 밴 사람 말이다. 살짝 무뚝뚝한 것을 좋아하는 것은 개인 취향이라 치고도 살면서 만나 본 몇 안 되는 멋진 어른이었던 듯하다. 남편도 나도 이제 그 아저씨만큼의 나이로 들어서려고 한다. 어떤 어른이 되었나 혹은 되고 있나를 생각해보면... 그냥 아득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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