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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ULL Jul 05. 2023

망상시리즈:침 뱉지마

  "투!"

  10초 뒤 다시

  "투!"

  맞은편에 선 채로 신문을 펼친 80대 이용자는 10초 단위로 손가락에 침을 뱉어 신문지를 넘긴다. 벌써 30분째다. 신문 한 부를 모두 넘기고 나면 들릴듯 말듯 작은 소리로 대상을 알 수 없는 욕지거리를 읖조린다. 반복되는 소리는 온몸의 불쾌한 감각을 고조시킨다.

  "투!"

  침이 얼굴에 뱉어진 기분이다. 불쾌함을 견딜 수 없어 피하듯 밖으로 나온다. 아마 내일부터는 연속간행물 자료실에 절대 앉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알 수 없다. 좋은 자리는 일찌감치 도착한 사람들의 차지였다. 텀블러에 물을 채우는 잠깐 사이에도 사람들은 창가의 좋은 자리를 금방 파고들었다. 도서관 문이 열리기 전에 기다려본 들 소용없다. 본인들만 아는 뒷문으로 잠입하는 단골이용자들에게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이다.




  "투!"

  10초 뒤 다시

  "투!"

  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입안이 버석버석 마른 듯 입을 크게 벌리고 입 안에서 혀를 이리저리 움직여본다. 입맛이 묘하게 쓰다.

  "투!"

  20초. 이용자는 이제 식은땀을 흘린다. 뱃속이 불편하지만 아직 신문을 다 읽지 못했다. 도서관에서 구독하는 모든 신문을 열람하는 것이 그의 오전 루틴이다. 신문을 모두 열람하고 나면 오전이 끝나고, 그때쯤 그는 도서관을 나와 집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왔다. 여름에 도서관만한 곳이 없기에 그는 별일 없는 날이면 매번 도서관을 찾았다. 신문사의 기사라는 게 대부분 비슷해서 첫 번째 신문을 읽고나면 두 번째부터는 제목만 읽고 그냥 넘겼다.

  "투!"

  30초. 니미럴 놈의 새끼들. 아픈 배 때문에 허리가 꺾였지만, 그는 책상에 놓인 왼쪽 팔에 힘을 주고 버텨본다. 여느 날처럼 신문을 읽고 있는데, 조금 전에 직원이 와서 한소리하고 갔다. 다같이 보는 신문이니 침을 묻히지 말라는 것이다. 다른 이용자가 신고를 했다나 뭐라나. 신문 넘기고 책장 넘길 때 침 안 바르고 불편해서 어떻게 본단 말인가? 어처구니가 없어 따졌더니 직원은 금세 미안하다며 고개 숙여 사과했다. 신고했을 만한 놈들은 뻔하다. 오랫동안 도서관에 다니다보면 자주 보는 얼굴들은 눈에 익는다. 저 새낀가? 아님 저 새끼? 그는 눈을 모로 뜨고 테이블에 앉아 책에 얼굴을 쳐박고 있는 놈들을 휘휘 둘러봤다.




  쿵!

  "사람이 쓰러졌어요!"라는 외침과 동시에 데스크에 있던 직원이 뛰어왔다. 직원은 재빨리 119에 신고해 도서관에서 노인이 쓰러졌다며 구조요청한다. 쓰러진 노인의 입에서는 나온 거품이 입가를 따라 느리게 흐른다. 노인의 얼굴은 고통으로 잔뜩 일그러져 있다. 왼손에는 쓰러지는 순간 붙잡은 듯한 신문 한장이 꼬깃해진 채 쥐여져 있다. 신문이 펄럭이며 노인의 얼굴을 가린다. 입가의 침이 신문지에 번진다.


  며칠 뒤 지역신문에 도서관에서 쓰러진 노인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사망했다는 뉴스가 짤막하게 떴다. 쓰러지면서 머리를 돌바닥에 크게 부딪혔고 이로 인한 뇌출혈이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했다. 유아동 및 노인들도 자주 이용하는 공간인 만큼 도서관 바닥재도 신경 써야 한다는 기자의 견해도 덧붙어 있다.


  신문을 가지런히 접어 원래 위치에 놓았다.

  조용하다. 고요하다.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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