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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십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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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ULL Nov 22. 2023

정말 도서관에서 일하고 싶어?

  "상반기에 지원하면 좋겠네~"


  실업급여 수급을 위한 구직활동을 위해 경력증명서를 발급 받으러 몇 달 만에 직전까지 일했던 도서관에 방문했다. 내가 근무했던 자료실 담당 선생님은 그만둘 때 그랬던 것처럼 다시 지원해줬으면 좋겠다며 웃으셨다. 백수가 된 지 오 개월째.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활동에 집중하는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이도 저도 아닌 상태로 오 개월을 보냈다. 그러다보니 이럴 바엔 취업을 하는 게 낫지 않나라는 생각이 스물스물 올라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직전에 근무했던 도서관에 선뜻 지원하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하나뿐이다. 합격할까봐.




  처음에는 근무기간이 6개월로 제한된다는 점이 문제였다. 그래도 6개월 경력을 더 채워서 공공도서관 근무경력을 1년 채우는 게 좋지 않을까란 생각도 했다. 일과 공부를 병행할 수도 있겠지만 백수일 때도 안하는데 그게 가능할까란 회의감이 들었다. 그러던 중 지역대학 한 군데서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도서관에서 근무하기 전 10개월 간 근무했던 사업단과 유사한 업무를 하는 곳이었다. 공고된 근무기간이 짧고 집에서 제법 거리가 있음에도 지원한 건 급여조건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할 거였다면 애초에 퇴사를 해서는 안 됐다. 급여조건이 좋다고 하나 삼여 년 전 퇴사한 회사보다 급여가 낮았다. 계속 다녔다면 올랐을 급여를 감안하면 차이는 조금이라도 더 커졌겠지. 퇴사한 이후 최저임금을 받거나 그에 근사한 급여를 받으며 일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좋아보였을 뿐이다. 당연히 상대적으로 일도 이전 회사보다 수월하길 희망하고 있다.


  부모님을 생각하면 급여가 신경 쓰인다. 내가 지금만큼 철이 들었다면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너무 성급한 결정이라며 퇴사를 뜯어말렸던 회사 윗분들의 말이 맞았던 걸까. 그래도 퇴사는 여전히 후회되지 않는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도 않다. 이 사실이 늘 다행스럽다.




  급여가 적더라도 이왕이면 도서관에서 근무하고 싶다. 그러나 날 받아주는 도서관은 없었다. 더 정확히는 지원할 만한 도서관이 없다. 지난 달에는 집에서 한참 먼 곳에 있는 대학도서관에 지원했는데 서류전형에서 탈락했다. 대학행정 서류전형을 통과할 때마다 느끼고 있다. 도서관은 정말 나를 더럽게도 안 뽑아주는구나.


  사업단에 서류를 제출하면서 교통접근성이 크게 떨어지는 곳에 있는 다른 대학의 도서관에도 함께 지원했다. 일 년 반 전에 이곳에 지원했다가 서류전형에서 떨어졌다. 6개월의 공공도서관 경력이 생겼다고 해도 뽑힐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이렇게 경력자만 뽑으면 신입들은 어디서 경력을 쌓나!


  그럼 기존에 근무했던 도서관에 지원해서 6개월이라도 근무하면 되지 않냐고? 최소한 일 년 이상은 근무할 수 있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 이곳에서는 아무리 일을 잘해도 6개월 뒤에는 계약이 종료되고 시에서 운영하는 공공도서관 어디에도 지원할 수 없다. 6개월 근무로는 실업급여도 받을 수 없다. 내 경력은 그야말로 붕 뜨고 만다. 굳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겠다고 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정말 도서관에서 일하고 싶은 게 맞을까?




  사람들은 사서가 책상에 앉아 여유롭게 책을 보며 일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 속 사서에게 여유는 없다. 도서관에서 일하면서 나는 '이것이야말로 오롯이 내 시간을 회사에 쏟아붓는 것'이란 생각을 했다. 회사에서 일할 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업무시간에도 나는 때로 사람들과 메신저로 대화를 주고 받았고, 동료들과 가끔씩 모여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지금도 내가 회사에 찾아가면 친한 직원들이 업무시간에 나와 함께 떠들다가 들어가곤 한다. 화장실도 못 가고, 점심도 못 먹고 일할 정도로 바쁜 날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날도 있었다는 걸 도서관에서 일하면서 처음 깨달았다.


  도서관은 교대근무를 하기 때문에 개인 자리나 컴퓨터를 사용할 수 없다. 내 자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뀔 수 있다. 열람실 내에서는 가급적 정숙해야 하므로 업무 외 전화통화는 불가하다. 사적인 업무로 전화를 하려면 열람실을 벗어나야 한다. 하지만 열람실을 지켜야 하는 입장에서 사적 통화를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개인 컴퓨터가 아니므로 메신저 사용도 제한될 뿐만 아니라 수시로 찾아오는 이용자에 응대해야 하기 때문에 업무시간에 휴대폰을 사용하는 것도 쉽지 않다. 회사를 다닐 때 휴대폰을 방치하는 축에 속했는데 도서관에서는 업무시간에 아예 휴대폰을 만질 수도 없었다.


  '이게 내가 원하던 삶인가?'


  도서관의 좋은 점은 일이 잘못되더라도 누군가의 인생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오로지 그거 하나만 보고 도서관을 택했고,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이용자를 대면하는 업무는 화장실도 마음대로 갈 수 없는, 족쇄 달린 삶을 동반하고 있었다. 도서관뿐만 아니라 민원인을 응대하는 수많은 공무원, 서비스직 종사자들이 이런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들의 아픔이 떠올라 마음이 시리다.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는 것은 이런 고민에 대한 답이 되어줄 것이다.

  답은, 합격해야 얻을 수 있겠지. 아직 나는 면접시험 전.(설레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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