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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ULL Jan 20. 2023

작은 일을 하면 작은 일에 분노하게 된다

  7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이후 나는 급여가 계속 낮아지는 방향으로 일을 선택했다. 급여가 낮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부담해야 하는 책임의 무게가 줄어든다는 것을 뜻한다. 우울증 초기에 뇌가 익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고, 실제로도 스스로의 기능이 낮아지고 있다는 걸 체감했다. 지금은 많이 회복됐지만 여전히 약에 의존해야 하는 환자이다보니 내 선택의 방향성에는 항상 '어쩔 수 없음'이 내포되어 있다.


  책임감은 물론 업무 난이도가 낮은 일을 택한 것에 대해 불만은 없다. 다만 눈에 띄는 현상 같은 게 있는데, 난이도가 낮은 일을 선택할수록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내 기준에서는 별 거 아닌 일에 더 쉽게 화를 내고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나이가 어리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 어떤 조건과도 무관하게 유난하게 과민하게 구는 사람이 어느 분야에나 존재한다. 평균적으로 볼 때는 직종 전체의 분위기, 특정 직종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들이 있다. 다른 곳에서는 별 것 아닌 일이 도서관이라는 특수한 공간이기 때문에 큰 일로 여겨지기도 하고, 경험의 차이도 무시할 수 없다.


  "이용자들의 민원에 잘 대응할 수 있겠어요?"

  "봉사활동을 하면서 겪은 바에 따르면 도서관에서 마주하는 민원상황은 대학에서 겪는 것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정도가 약한 편이에요. 대학에서는 칼 들고 찾아오겠다는 학부모님도 있었거든요. 실제 찾아오지는 않았지만요."

  "확실히 우리보다 심하네요."


  누구나 자신의 일이 가장 힘들다. 자신이 겪어본 적 없는 일은 상상하기 힘들고, 그것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이것보다 더 힘든 일들이 많다는 내 말에 "그걸 제가 왜 알아야 되죠?"라고 말하던 Z세대 신입직원이 있었다. 다른 사람이 힘든 건 '알빠노'다.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이 그들에겐 가장 큰 시련이다.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이 성격적으로 뒤틀어져 있다는 건 사회적 편견일지 모른다.




  7년간 다녔던 회사에서 가장 큰 고민은 급여, 업무강도, 불합리한 평가제도 및 직원 처우개선, 희망하는 수준에 맞는 경력직 직원을 신규 채용하기가 어려운 현실 등이었다. 이 외에도 사내정치관계 및 경영진과 관련한 이슈들에 대한 이야기가 우리의 주요 이야기거리였다. 개인적으로 개인의 발전, 앞으로의 계획 등에 대한 이야기. 물론 (나는 안 봐서 대화에 거의 참여하진 않았지만) TV 프로그램이나 연예인들에 대한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작년에 내가 겪은 건 감정쓰레기통, 이간질 같은 비정상적인 인간관계. 친소관계와 무관하게 자신과 타인의 업무량을 끊임없이 저울질하고, 다른 사람의 일에는 조금도 관여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의리 없는 관계, 주어진 일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불만을 쌓아가는 태도, 윗사람을 내쫓겠다는 불가능한 암투, 타인의 말을 듣고 이해하려는 생각없이 자신의 생각 안에 갇혀 상대를 비하하고 화를 내는 소통방식. 또 그 안에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적절하게 살아남는 법. 지금 와서 평가하자면 20퍼센트의 긍정과 80퍼센트의 부정인 경험이었다. 일희일비하는 신입직원들과 함께 한 시간.


  불과 3주밖에 안 됐지만, 도서관 야간 연장 계약직이란 내 눈에는 무언가 잘못되어도 세상에 아무런 해도 끼칠 일 없는 무해의 공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소한 것들이 중요해진다. 우리가 지켜내야 하는 것들이 그런 사소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도서관 이용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런 사소한 것들이 도서관 이용의 쾌적함을 만든다는 점에서 사서의 중요한 의미일지도 모른다. 세심해진 사람들이 작은 일에 분노하지만 않아준다면 딱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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