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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ULL Feb 18. 2023

이용자가 내 악담을 했다고 고백했다

  "제가 보건소에 다니는데요, 선생님 이야기를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무슨 이야긴지 모르겠지만 괜찮아요."

  "친절한 사서라고 이야기할게요."

  "네, 감사합니다."


  "제가 엄마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왔거든요. 악담을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 괜찮습니다."


  "이거 우리 엄마가 준 건데 밟으세요."

  "네?? (잘못 들었나?) 먹으라고 주신 거죠? 잘 먹겠습니다."

  "밟으셔도 돼요. 드시면 좋구요."


  "그거 저희 엄마가 준 건데 버리지 마시고 드셔보세요. 맛있어요."

  "네, 안 버려요. 먹을 겁니다."

  "저희 엄마, 아빠가 많이 좋아해요."

  "(이 과자를 좋아하신다는 건가?) 네, 잘 먹겠습니다."

  "예쁘세요."

  "네? 제가요? ...감사합니다."


  "또 놀러와도 되죠?"

  "네, 그럼요. (제가 놀아드릴 수는 없지만)"


  그뒤로도 그는 이런저런 이유로 데스크 주위를 배회하며 다른 이용자가 없을 때마다 말을 걸었다. 다른 이용자가 순서를 양보하면 할말이 있다며 그 뒤에 서서 고집스럽게 자리를 지켰다. 점심교대 시간이 지나 복귀했을 때 그는 도서관을 떠나고 없었다.




  그를 처음 알게 된 건 도서관에 출근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그는 당분간 도서관을 이용할 수 없을 것 같다며 탈퇴 처리를 해달라고 했다. 초점 없는 그의 눈은 물기로 반짝이고 있었고, 대화의 입력과 출력은 느렸다. 나는 그가 불의의 사고로 후천적으로 뇌손상을 입은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며 안타까움을 느꼈다.


  "저도 사서가 꿈이었는데."


  그는 이곳 대학의 문헌정보학과를 졸업했다고 했다. 우울증 초기에 뇌가 익는 것 같던 느낌이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는 말을 불쑥 꺼내고 싶은 욕구가 올라왔다. 하지만 주위에는 직원들이 있었고, 스스로는 뇌기능이 손상됐다고 느끼지만 겉보기에는 멀쩡한 내가 함부로 꺼낼 말은 아니었다.


  "저한테 하실 말씀 없으세요?"

  "...없습니다."


  나는 결국 그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가 뭐라고 위로의 말을 꺼낸단 말인가. 주변은 아무도 그를 의식하지 않았다. 오래 근무한 사람들에게 이런 이용자를 마주하는 건 특별한 일이 아닌 듯했다. 그는 다른 업무를 위해 빨리 보내야 하는 이용자 중 하나에 불가했다. 그리고 나의 침묵은  그를 불쾌하게 만들었고, 그렇게 나는 악담의 소재가 되었다.




  그를 다시 본 건 한달 후였다. 머리를 짧게 잘랐지만 초점 없는 눈 때문에 그를 곧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그의 손에는 새로운 회원증이 들려 있었다. 책 읽기를 포기한 것 같았던 그가 다시 나타난 것은 반가웠지만, 탈퇴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가입한 것은 조금 당황스러웠다.


  "회원가입을 새로 했는데요. 탈퇴처리됐다고 문자를 받았는데 문제 없죠?"

  "네, 탈퇴처리는 이전에 하신 거고 회원가입은 최근에 하신 거라 문제 없으세요."

  "네, 감사합니다."


  그가 책읽기를 포기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마치 그게 삶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선언처럼 느껴졌다. 그 다음 만남에서 그가 보건소에서 내 악담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그가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어쩌면 나는 그에게서 진짜 그가 아니라 나 자신을 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예쁘세요."


  아마 그는 자신이 꿈꾸던 사서의 자리에 있는 내가 부러웠던 게 아니었을까? 나는 그 마음이 예쁘다로 표현된 것 같다고 결론 내렸다. 예.쁘.다. 평범하고 흔한 단어가 내 안에서 새롭게 정의됐다. 나에게 그는 존재 자체로 문학이다. 언젠가 그에게 이 말을 할 수 있는 날이 올까? 그가 계속 내게 문학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진부해도 좋으니 그 문학이 해피엔딩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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