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숨소리 내시는 할아버지… 어떻게 안 돼요?"
평소보다 늦게 마감준비를 시작해 내적바쁨에 쫓기던 중에 아무도 없는 자료실에 다시 들어온 이용자가 불쑥 말을 건넸다.
"아프셔서 그런 건데 어쩔 수 없지 않을까요?"
검색대 컴퓨터를 끄며 무심하게 대답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정말 대수롭지 않은 질문이라 생각했다.
'그 분이 아프셔서 그런 걸 모르셔서 그러는구나~'
순진하게 그런 생각을 했다.
"어쩔 수 없지 않을까라고 하면 안 되죠. 한 사람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다 신경 쓰고 피해를 보고 있는데요!"
컴퓨터를 향해 있던 시선을 돌려 이용자를 정면으로 바라봤다.
아… 이 사람…. 그 분이 아프다는 걸 아는구나. 알면서도 이러는 거구나.
그렇다면 나도 태도를 달리 할 수밖에 없다.
우리 도서관에는 다양한 분들이 온다. 시험기간에는 근처 중고등학교 학생들로 붐비기도 하지만, 구도심 끝자락에 있는 도서관이다보니 노인 이용자가 많은 편이다. 젊은 사람 중에도 독특한 이용자들이 몇몇 있는데, 대표적으로 서가를 돌아다니며 혼자 중얼거려 다른 이용자들을 놀래키는 분, 도서관을 가로질러 달리기를 하는 분 등이 있다. 다행히 모두 주의를 주면 일시적이나마 행동을 멈출 수 있다.
걸을 때마다 쌔액- 쌔액- 소리를 내는 노인 이용자도 있다. 걷는 자세도 어색하신 걸 보면 마비 증세와 기흉이 함께 있으신 듯했다. 쌔액- 쌔액- 소리는 몇 미터 떨어진 거리에서도 들릴 만큼 큰 편이다. '정숙'을 요구하는 도서관에서 이 부분은 눈에 띌 수밖에 없다. 가끔 그 분이 데스크로 다가올 때면 점점 커지는 소리에 공포감이 들기도 한다. 이용자가 신경 쓰여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지병 때문에 소리가 나는 건데, 그걸로 도서관에 오시지 말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요."
"그 할아버지 한 사람 때문에 여러 사람이 불편을 계속 감수해야 되나요?"
"엄밀히 말하자면 책을 열람하기 위한 공간이라서요. 작은 소음 정도는 발생할 수 있어요. 소리가 신경 쓰이신다면 학습실을 이용하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 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너는 평생 안 늙고 건강할 것 같냐!'라는 말이 입밖으로 튀어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급하게 마무리 하고 내려왔더니 도서관 문을 잠그기 직전이었다. 안내실 직원이 문을 잠그려다가 화장실에 사람이 없는지 확인하는 목소리가 들려 기다렸다고 말했다. 마감이 늦으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 내일은 마감 준비를 더 서둘러야겠다고 다짐했다.
다수의 선택은 항상 정당한가. 다수의 편의를 위해 소수는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를 제재 받아야 하는가. 무리한 요구를 하는 이용자를 물리치고(?) 퇴근하면서도 마음은 여러 생각으로 개운치 않았다. '내일 출근하면 자료실 담당 선생님에게 보고해야겠다.' 공공기관에서 일한다는 건, 스스로 옳다고 생각한 일을 하고도 민원이 들어올지 모른다는 걱정을 해야 하는 서글픈 일이다.
도서관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온다. 다양한 생각과 다양한 취향, 다양한 사정을 갖고 있다. 누군가는 신문을 읽기 위해 자료실이 열리기도 전에 와서 기다리고, 누군가는 큰 화면으로 유튜브를 보기 위해 컴퓨터를 사용한다. 누군가는 중간고사를 준비하고, 누군가는 논문을 쓰고, 누군가는 취업 준비를 한다. 누군가는 아이와 놀아줄 책을 빌리고, 아이를 더 잘 키우기 위해 책을 빌린다. 누군가는 소설과 시를 읽고, 누군가는 시나리오 작가의 꿈을 꾼다. 누군가는 자기계발을 하고, 누군가는 재테크로 부자가 되고 싶다.
첫 출근 후 한 달이 지났을 때, 그때까지 쌔액- 쌔액- 소리를 내는 이용자에 대해 단 한 건의 민원도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에 적잖이 놀랐다. 그것은 도서관을 이용하는 수많은 이용자들이 제지 가능한 소음과 부득이한 사정을 구분하고, 배려하고 있다는 걸 의미했다. 새삼 우리 도서관 이용자들이 존경스러워졌다.
도서관에서 민주주의를 배운다. 그것은 도서관 근무를 결심하면서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값진 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