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부메랑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인기 Jul 17. 2023

쉽게 읽는 중국의 정치 계파 이야기

중국 공산당 계파의 변화 2023년 상반기 기준

* 사진 : 중국 국가대극원


중국은 공산당 한 개의 당이 국가 전체를 통치하는 나라이지만 중국 공산당은 세 개의 계파로 나누어진다. 당이 한 개인데 그곳에서도 파벌싸움이 일어나는 점을 보면 세 사람 이상이 모이는 곳에는 언제나 편 가름은 있는 것 같다.     


2013년 3월 중국 국가주석으로 취임한 시진핑 주석 집권 중반기까지 세 개의 계파는 태자당, 상하이방, 공산주의 청년단(이하 공청단)이었다.(과거형)  


먼저, 태자당중국 공산당 원로들의 자녀들이다. 수십 년 동안 크고 작은 태자당 인물들이 정치에 입문하고 권력을 장악하고 또, 몰락하였는데, 현시점에서 가장 대표적인 태자당 출신을 꼽자면 시진핑이라 할 수 있다.


두 번째, 상하이방은 1993년 장쩌민(강택민)이 중국 국가주석으로 승격된 이후 중앙정계에 진출한 인물들이다. 8,90년 중국 개혁과 개방정책이 실시되면서 중국은 장쑤성, 저장성, 상하이시 주변 해안도시들의 경제가 급격히 발전하였다. 장쩌민 자신이 상하이 시장과 당 서기장을 거쳤고 중앙정계 진출, 주석이 된 이후 상하이 출신 인력들을 대거 중국 중앙정계로 끌어들였다. 즉, 자기의 세력을 만든 것이다. 이들이 실제로 현재까지 중국 경제발전에 큰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인물은 장쩌민, 주룽지, 우방궈 등이 있다. 시진핑도 저장성 서기와 상하이시 서기를 거쳐 중앙정계에 입문했기 때문에 시진핑은 태자당이자 상하이방에 걸쳐있다고 할 수 있다.      


세 번째, 공산주의 청년단(이하 공청단)은 중국 공산당이 운영하는 열혈 청년조직이라고 보면 된다.   

   

중국은 56개의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국가이고

티베트(시짱 자치구), 내몽고 자치구, 신장 위그루족 자치구, 닝샤 회족 자치구, 광시 좡족 자치구 등 각 지역별 소수민족 자치구가 있는 만큼 분쟁이나 독립운동도 일어나는데,      


1988년 티베트에서 분쟁이 일어났을 때 당에서는 후진타오를 티베트 당서기로 임명하여 분쟁을 진압시키게 되고 이로 인해 후진타오는 당에서 인정받아 후에 중앙정계로 입성, 중국 국가주석까지 오르게 된다. 공청단 출신으로 유명한 사람은 전임 국가주석인 후진타오, 후진타오 시절 총리인 원자바오, 시진핑 집권 후 지난 10년간 총리였던 리커창 등이 있다. 리커창은 2023년 3월 임기를 마치고 은퇴했다.     

 

여기까지가 1990년대부터 현 중국 주석인 시진핑 집권 초중기까지의 중국 공산당의 주요 계파였는데,   

   

시진핑 집권 중반을 지나며 또 다른 세력인 시지아쥔(習家軍, 이하 시자쥔)이 등장했다. 시자쥔을 굳이 번역하자면 ‘시 씨 집안의 개인 군대’인 셈이다. 즉, 시진핑의 개인 세력으로, 초기에는 시진핑이 속해있는 태자당 내에서 시진핑이 주로 근무한 푸젠성, 저장성, 상하이시, 칭화대학교 출신들을 대거 발탁했지만 현재 집권 3기, 즉 종신 집권 체제를 마련하면서는 비 태자당 인력들도 대거 발탁한 듯 보인다. 2023년 3월 리창 총리가 선임되면서 말 그대로 시진핑의 사람들이 대부분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상하이방 구심점 역할을 하던 장쩌민이 퇴임하고 공청단 출신인 후진타오도 퇴임하면서 상하이방과 공청단 출신이 쇠퇴하고 시진핑 개인의 세력 중심으로 뭉친 것이다. 여기까지가 2023년 현시점에서의 중국 공산당 계파 관련 이야기인데, 이 정도 알면 어디 가서 중국 공산당 계파와 권력의 흐름에 대해 대략적인 것은 알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공청단은 공산당 자체의 운영기관이기 때문에 “한 사람의 권력자”가 물러나더라로 조직의 힘으로 존속하고 시기가 지나고 다시 회생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는데,      


중국 정치에서 태자당, 상하이방, 시자쥔 등 인물 중심으로 구심점이 되는 조직은 그 인물들이 퇴임 후 한 세대가 지나면 구심점을 잃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2006년 초 1년간의 북경생활을 마친 후 한국에 들어왔을 때,   

  

당시 중국은 경제성장률이 최고조로 달하는 절정기가 아직 오지 않았고   

서남아, 중동, 유럽과 아프리카까지 육로로 연결이 되는 점,

성장하는 상하이와 홍콩의 금융시장,

대서양이 잘린 세계지도를 보았을 때 중국이 정중앙에 크게 있던 점을 보고

(참고로 어떤 세계지도는 지도의 양쪽 끝에 태평양이 잘려 있다.)      


그 당시 생각으로는 10년 후 중국이 미국을 대체하고

상하이가 뉴욕을 대체한 세계의 수도로서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단언하였는데, (실제로 신입사원 때에도 직장 동료들에게 그렇게 떠들고 다녔다고 휴가 때 중국을 자주 들락날락했다.)  

    

독립전쟁을 통하여 자유를 쟁취했으며

전쟁에서 승리한 후 왕이 되어달라는 사람들의 요청을 자제하는 대신 초대 대통령이 되었고

재선까지는 수락하되 3 연임은 거절한 조지 워싱턴,      

현재 대통령 중심제의 대표가 되었던 점(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성공적으로 대통령 중심제 국가를 안착시킨 덕분에 현재 세계의 다른 나라들도 대통령 중심제의 국가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일인)에서

      

두 나라는 가는 길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며 한 자 적어보았다.



참고로 오랜만에 글을 쓴 기념으로

아주 아주 오래 전에 적었던 중국 대표요리 이야기를 링크 한다.   


https://brunch.co.kr/@inkichung79/5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